이정복 정치행정부장

제20대 국회의원 선거가 20여일 앞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선거분위기가 예전과 사뭇 다르다. 출마 후보들이 거리에서 명함을 돌리며 주민들에게 인사를 건네는 모습도 눈에 띄게 줄었고, 여야 정당에서 정책성 홍보문구가 적힌 플래카드도 찾아보기 어렵다. 아무리 우리 정치권에 대한 국민들의 무관심과 냉대가 극에 달했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앞으로 4년간 국가와 지역발전을 이끌 지역일꾼을 선출하는 선거인데 너무 평온하다는 생각이 든다.

필자가 며칠 전 선배와 술 한잔 하러 한 음식점을 찾은 적이 있다. 마침 TV에서 저녁 뉴스를 하고 있었다. 여야가 공천을 둘러싸고 내홍을 겪고 있다는 내용이 귀에 들어왔다. 옆에 앉아 있던 어느 60대 아저씨가 “술 맛 떨어지니 TV를 끄라”고 식당 주인에게 말했다. 그러자 주인이 얼른 다른 프로그램 채널로 돌렸다. 주인에게 물어봤다. “요즘 선거분위기 어때요” 주인은 “경기가 어려운 것은 어제오늘의 얘기는 아닌데 요즘처럼 어려운 적이 없어요. 예전에는 선거때면 그래도 친구들 아니면 선후배들이 모여 정치얘기도 나누곤 했는데 요즘엔 전혀 그런 분위기가 없다. 정치얘기 꺼네면 재수없다면서 얘기도 못 붙이게 한다.”고 넋두리를 했다.

또 필자는 최근 택시를 탄 적이 있다. 그때도 마침 라디오 뉴스에서 총선과 관련된 여야의 소식이 들렸다. 그 뉴스를 듣자 70대의 한 운전사는 “XXX 같은 놈들. 저런 것들 때문에 나라가 이 모양이지. 저런 것들은 아무도 뽑아주지 말아야 해. 서민들은 지금 한 겨울처럼 춥고 어려운데 허구헌날 쌈박질 만 해대고. 누가 잘났네. 누가 못났네 하면서. 제 밥그릇만 챙기고 있으니...” 혼자 중얼거리며 정치권에 대한 독설을 퍼부었다.

우리 정치권이 국민들에게 추앙 받았던 적은 없었지만 요즘처럼 정치인에 대한 혐오를 넘어 아예 무관심으로 돌아선 것도 흔한 일은 아니다. 오죽하면 이렇게 까지 우리 정치권이 조롱의 대상이 되었는지 참 딱하기까지 하다.

작년에 한국갤럽 여론조사 결과 우리나라 국민 10명 중 9명은 국회가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고 답했다. ‘국회가 역할을 잘 수행하고 있는가’에 대한 질문에 88%는 ‘잘못하고 있다’고 응답했다. ‘잘하고 있다’는 응답은 5%에 불과했다. 국회 불신의 가장 큰 이유로는 ‘여야 합의 안 됨·싸우기만 한다·소통 안 함 등’(21%)이 꼽혔다. ‘당리·파벌 정치’(11%), ‘자기 이익·비리 문제’(10%), ‘법안 처리 안 됨’(9%) 등도 부정 평가 이유로 지적됐다.

총선을 불과 한달여 앞두고 여야가 선거구 획정에 가까스로 합의하더니 이번엔 여야 모두 공천 후유증으로 하루가 잠잠할 날이 없다. 여당에서는 ‘친박이니 비박이니’ 시정잡배들처럼 편가르기를 하고 있고, 야당도 ‘친노니 비노니’ 하면서 연일 이전투구(泥田鬪狗)하고 있다. 마치 시골 장터에서 벌어지는 ‘닭 싸움(鬪鷄)’에서 어느 한쪽의 닭이 죽을 때까지 물어뜯는 모습을 연상케 한다.

이번 총선은 여야 모두 새로운 인물을 천거해 정치판을 바꾸겠다고 호언장담했다. 새누리당은 김무성 대표가 나서서 정치신인들의 등용을 위해 상향식 공천을 추진했고, 야당 역시 무능한 기성정치인들을 퇴출해 정당 쇄신을 꾀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여야 모두 공천이 마무리되는 시점에서 살펴보면 지난 총선 때 공천과정과 무엇이 바뀌었는지 도무지 알 수 없다.

새누리당과 더불어민주당 모두 현역의원의 일부를 공천에서 탈락시켰다고는 하지만 ‘전시성 공천’에 머무른 인상이 짙다. 대전 충청권의 경우를 살펴보자. 새누리당과 더민주 대부분의 현역 의원들이 공천을 받지 않았는가? 현역 의원들이 다 잘못됐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번 총선을 위해 지난 4년동안 물밑에서 이번 선거를 준비해온 정치신인들에게 경선 기회조차 주지 않고 공천에서 배제시켜야 했느냐는 것이다. 본선 경쟁력이 약하고 인지도가 현저히 떨어진다는 것이 여야 공천위의 입장이다.

참 한심하다. 당연히 지난 4년 각종 매스컴에서 매번 이름이 거론됐던 현역 국회의원에게 정치신인들이 인지도에서 상대가 될 수 있겠는가? 이는 지나가는 소도 웃을 일이다.

자기 당 출신들이 총선에서 승리할 수 인물을 천거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래도 지역의 정치신인들에게 문호를 적극 개방하고, 그들의 잠재적인 능력을 꼼꼼히 살피고 키워야 하는 것도 우리 정치권의 임무가 아닌가? 이번 선거가 흥행을 못하는 것도 지역에 매번 출마했던 소위 ‘그들만의 리그’ 선수들이 또다시 등장했다는데 식상함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이들이 그동안 지역을 위해 무엇을 했는지 또 무엇을 할 것인지 궁금한 지역주민들이 과연 몇이나 될지 자못 궁금이다. 선거때만 되면 잠시 얼굴을 내비치고 당선되면 나몰라라 하는 구태정치를 언제까지 반복할 것인지...

20대 총선은 충청권에서는 지역정당 없이 치러지는 선거가 됐다. 새누리당, 더민주, 국민의당, 정의당 등이 지역 표심을 얻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새누리당은 힘있는 여당 후보에게, 더민주는 야당 정통세력에게, 국민의당은 새로운 정치세력에게, 정의당은 서민을 대변하는 정당에게라는 명분으로 유권자들의 표심을 호소하고 있다. 그러나 유권자들은 이 구호 역시 식상하다. 선거때만 되면 늘 외쳤던 구호였기 때문이다. 이러한 구호를 내세우기 전에 지역 민심을 더욱 꼼꼼히 살피고 현안 문제가 무엇이고 어떻게 해결해나가야 하는지를 먼저 고민해야 하는 게 정치인들의 순리 일 것이다.

충청권의 이번 총선 분위기는 찍을 정당이 없다는 것이 대세(大勢)다. 지역을 대표할 만한 정당도 없을뿐더러 각 정당에서 내세우는 충청권 이슈도 전무하다. 매번 선거철만 되면 단골 공약으로 등장하는 침체된 지역경제 활성화, 도농(都農)간 격차 감소, 세종시 원안 추진 등 웬만한 지역민들이라면 한번쯤은 들어본 얘기다. 더 이상 이러한 애매모호한 공약으로 지역민들을 호도해서는 안 된다. 이러한 고리타분한 예전의 선거운동으로 유권자들의 환심을 사던 시대는 이제 지났다. 또 보수니 진보니 하는 당 색깔로 선거에 승리하던 시대도 끝났다.

지난 수년간 충청도민들은 보수정당과 진보정당, 또 지역정당에도 표를 던졌다. 하지만 충청도민들에게 남은 것은 배신감 뿐 이었다. 충청도민들을 ‘충청도 핫바지’로 여겼던 그 때 시절과는 달라도 많이 달라졌다.

요즘 충청도민들 사이에서는 정당보다는 진정 충청도를 위해 일할 인물을 선택해야 한다는 것이 주된 여론이다. 정치는 정당이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만큼 진정성 갖고 오직 국가와 지역주민들을 위해 봉사하는 그런 인물이 국회에 입성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제 총선도 막바지를 향해 가고 있다. 각 지역의 정당 대진표도 거의 확정됐다. 겉으론 정치에 관심이 없다고들 하지만 우리 지역을 4년간 발전시킬 적임자에 대해서는 관심있게 살펴보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정치에 불신을 갖게 한 원인제공자는 분명 정치인이다. 또 정치에 관심을 갖게 할 주체도 바로 정치인이다. 정치의 사전적 의미는“나라를 다스리는 일. 국가의 권력을 획득하고 유지하며 행사하는 활동으로, 국민들이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게 하고 상호 간의 이해를 조정하며, 사회 질서를 바로잡는 따위의 역할을 한다.”고 되어 있다. 국민들이 인간다운 삶을 편안하게 영위하게 하는 것이 바로 국회의원의 고유의 임무라는 것을 총선 출마후보들은 제발 명심하기 바란다. 그리고 국민들이 항상 지켜본다는 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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