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교육청 장학관 신경희

해마다 3월이 오면 새로 시작한다는 긴장과 누군가를 새로 맞는다는 설렘으로 살짝은 들뜬 마음이 된다. 대부분 1월에 새해 소원을 빌고 힘찬 출발을 다짐한다. 하지만 학교나 교육청은 3월이 그런 달이다. 학교마다 피돌기가 시작됐다. 여기저기 희망의 함성이 들려온다. 우리 교육청에서도 삼월의 첫 출근 날. 새로 부임한 직원인사도 있었고 월례 특강이 진행됐다.

특강은‘왜 수업혁신인가’란 주제로 펼쳐졌다. 서울에서 내려 온 강사는 구렁이 담 넘어가듯 유연하게 초점에 맞춰 곧잘 강의를 이어갔다. 시간이 꽉 차갈 무렵 강사는 영화‘역린’의 대사로 특강을 마무리 지었다. 2년여 전 그 영화를 보면서 심쿵했던 바로 그 장면이다. 정조는 신하들에게 중용 23장을 외울 수 있는지를 시험했다. 정조를 가까이서 모시며 왕의 서책을 관리하는 내관으로 학식이 뛰어났던 상책역의 배우 정재영이 중용 23장 구절을 읊는 장면이 그것이다.

‘작은 일도 무시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야 한다. 작은 일에도 최선을 다하면 정성스럽게 된다. 정성스럽게 되면 겉에 배어 나오고 겉에 배어 나오면 겉으로 드러나고 겉으로 드러나면 이내 밝아지고 밝아지면 남을 감동시키고 남을 감동시키면 이내 변하게 되고 변하면 생육된다. 그러니 오직 세상에서 지극히 정성을 다하는 사람만이 나와 세상을 변하게 할 수 있는 것이다.’

시대적 공감과 함께 관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 뜻 깊은 메시지로 지금도 널리 회자되고 있다. 까마득히 잊었다. 요즘 내가 그렇다. 어제 일도 아득할 때가 잦다.“왜 이러지. 아직 그럴 나이는 아닌데”중얼거리며 머쓱히 머리만 긁적이곤 한다. 그런데 얼얼한 메시지가 잊었던 그 감동과 울림의 기억을 되살려주었다. 순간 온 몸에 전율이 다시 흘렀다.

우리 교육청의 사업들은 학교혁신 기본계획에 연동돼서 확산 추진되고 있다. 변화와 혁신이란 용어는 좀 부담스럽고 어려운 대목이다. 허나, 중용 23장의 구절을 음미하면 할수록 나와 세상을 변하게 하는 것은 결코 거창한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게 해 준다. <내 안에서 나를 만드는 것들> 책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나를 일으켜 세우는 것’이라고 한다. 변화와 혁신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지금의 나를 돌아볼 일이다. 매너리즘에 빠져 있지는 않은지. 하는 일에 정성이 한참 부족한 것은 아닌지. 스스로를 감동시키고 있는 삶인지. 나 자신도 감동하지 못하는 삶에서 어찌 남을 감동시킬 수 있을 건지. 바람에 시들어 후줄근해진 현수막처럼 서 있지 말라. 정성과 성실이라는 단어가 주는 힘과 치열함을 회복하라 일침을 가한다.

새봄이다. 지난주에 가슴 적시는 봄비가 다소 격하게 다녀갔다. 덕분으로 얼마나 봄스럽던지. 우리 집 쪽 마당에서도 산수유가 노랗게 터지고. 몇 그루의 청매화가 연한 꽃잎을 선 보였다. 나뭇가지마다 물오르는 소리, 생명의 소리로 술렁인다. 스르르 가슴에 번지는 그리움을 감당하기가 어렵다.‘이 봄, 나는 내 몸 어딘가에 열꽃처럼 숨어 있을 이 지루한 서정이 싫다’던 어느 시인의 마음에 공감이 가는 시절이다. 한동안 사는 게 무력했다. 삶이 얼마나 깨지기 쉽고 참을 수 없는 고통을 담고 있는 것인지를 항상 의식하고 살 일이다. 슬럼프에 빠져 얼룩덜룩해진 내 모습을 새순처럼 꽃잎처럼 바꾸는 일만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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