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남도교육청 장학관 신경희

구정을 보내고 진짜 새해를 맞이한 지 열흘을 넘어서고 있다. 여전히 새벽부터 정신없이 달린다. 가끔 내가 왜 달리는지도 모른 채 그냥 달린다. 하루하루 숨 가쁜 일상, 잠시라도 공백이 생기면 불안하고 초조하다. 뭔가 자꾸 더 열심히 해야만 할 것 같은 압박감에 시달리며 한 번씩 돌아본다.‘무엇을 위해 달리는가,‘나는 지금 제대로 살고 있는가’그런 물음표를 던지면서.

며칠 전 책을 읽다가 만난 새 책을 읽고 있다. 책은 또 다른 책을 읽게 하는 힘이 있다. 최근 큰 인기를 끌고 있는 김정운의 <가끔은 격하게 외로워야 한다>가 그것이다. 관계에 부대끼며, 뜻 모를 용기를 스스로 세뇌하며, 어디로 가는지 모르고 앞만 보고 가는 사람들에게 그는 말하고 있다.“가끔은 격하게 외로워야 한다”고.

“그림을 공부하기로 한 것은 내 인생의 가장 훌륭한 결정이었다”고 저자는 주저 없이 말하고 있다. 주체적 삶이란 자기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공부할 때 비로소 가능해진다. 그런데 그 시간은 격한 외로움을 담보해야 한다. 외롭다고‘관계’로 도피하는 것처럼 어리석은 일은 없다. 모든 문제는 외로움을 피해 생겨난 어설픈 인간관계에서 시작된다는 사실을 외면하고 있지는 않은지. 외로움을 감내한다는 것, 그것이 바로 삶의 주인으로 사는 방법이다.”설파하고 있다. 이 책을 읽고 있으면 마치 심리치료를 받는 것처럼 마음이 편안해지면서 유쾌하기까지 한 매력이 숨어 있다.

누구한테 배운 바는 없지만 나도 가끔 그림을 그린다. 여중 다닐 때 미술반이었다는 것을 은근 자랑스럽게 생각하면서. 캔버스에 물감을 자우자재로 펼치다 보면 어설프지만 그럴싸한 그림이 된다.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완성되기까지의 몰입에서 오는 그 기쁨을 뭐라 표현할 수 없다. 사람이 가진 아름다운 정서 중에 하나가 그리움이라고 한다. 글과 그림, 그리움의 어원은 같다. 종이에 그리면 그림이 되고, 마음에 그리면 그리움이 되니까.

‘가끔’이라는 제목으로 끄적거리다 보니 언젠가 연수에서 강사에게 들은 얘기가 생각나 웃음이 난다. 어느 대학교수가 "나는 아내와의 결혼을 후회한다." 는 책을 썼다. 그래서 그의 아내가 물었다. "당신 정말 나하고 결혼한 걸 후회해요?" "응. 가끔." 이라고 그가 대답했다. 그랬더니 그의 아내는 "나는 만족하는데..." 하고는 돌아서면서 한 마디 툭 던지더란다. "가끔" 이라고.

점심식사를 마치고 차 한 잔 마시며 비밀노트(?)를 열었다. 날마다 조금씩 메모해 둔 문장들을 가끔 긴 호흡으로 읽는 시간이 행복하다. 지난해 9월 새로운 곳으로 부임한 첫날에 ‘교육자는 관찰, 관찰, 관찰하고... 상상하라. 스스로 확고해져라. 균형감각을 유지하라.

자기조절, 자기통제, 연습하라, 그렇게 적혀 있었다. 빨간 펜으로 밑줄을 다시 한 번 그었다. 한동안 슬럼프에 빠져 허우적거렸다. 소망이 우수수 떨어지는 날도 있었고, 한없이 초라해지는 그런 날들도 있었다.

모든 게 허무하고 만사 무기력해져 참 힘들었던 시간이었다. 긴 터널을 지나오면서 삶이 헛되고 터무니없어 보이게는 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무엇보다 나 자신을 지혜롭게 다스리며 살아야겠다는 다짐도 했다.

100세 인생이다. 인생의 의무와 역할이 끝나도 삶은 계속될 것이다. 인생보다 일상이 버겁다면, 내일보다 오늘이 두렵다면, 기꺼이 외로워질 시간이 필요하다는 작가의 말을 기억하면서. 가끔 내 인생이 잘 편집되고 있는지 살펴가며 살아야지. 어떻게 살 것인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이제껏 살아온 지나온 삶과 그 길 위에 내가 새기며 걸어왔을 무심한 발자국들. 이왕이면 좋은 발걸음으로 흔들리지 않고 걸어가야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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