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교육청 장학관 신경희

세월이 흐르면서 가슴속으로 겨울나무들이 걸어 들어왔다. 자연스레 겨울 숲의 깊이와 운치를 알게 됐다. 메마른 잎조차 벗은 나무 가지가 시린 하늘을 감싸 안은 모습은 가히 치명적인 아름다움이다. 겨울나무는 나조차 가릴 수 없는 빈한한 덧없음에 삶의 시야까지 열어준다. 겨울나무가 틔워 주는 시야는 삶의 진정함은 가졌을 때가 아니라, 그 모든 것을 놓았을 때라는 걸 보여준다. 애착하고 집착하는 그 모든 것들은 어느 날 생각해 보면 다만 다 흘러갈 뿐이다. 버리려 해서 버려지는 것도 아니고, 가지려 해서 갖게 되는 것도 아님을 세월 속에 터득하게 해준다. 그래서일까. 숲의 고수들은 나무를 만나는 가장 멋진 시기를 겨울로 꼽는다고 한다.

겨울 숲에 가면 벌거벗어 윤택한 침묵에 저절로 숭고해진다. 울퉁불퉁한 몸통의 무채색 껍질은 마치 의미심장한 메시지를 전하는 상형문자 같다. 나무도 나이를 먹는다. 나이 든 나무일수록 옹이가 있다. 옹이는 삶의 질곡을 넘을 적마다 남긴 흔적일 것이다. 어떤 곳은 굵게 또 어떤 곳은 깊게 새겨진 흔적들에서 단단하고 서늘한 기전체의 문장이 읽혀진다. 한 해 한 해 나이테를 늘려가며 깊은 뿌리와 큰 그늘을 만들어 간다. 험한 풍파를 거치면서 굳어지고 상처받으며 단단해진다. 겨울은 나무에게 시련을 극복하는 방법을 터득하는 시간이다.

겨울나무에게는 글 소재로 쓰고 싶어지게 하는 그 무엇이 있다. 때때 겨울나무 단상, 겨울나무 이야기, 나무처럼 살고 싶다 등의 주제로 졸고를 끄적거리기도 했다. 부족한 글이나마 쓰려면 소재에 대한 관심과 열정으로 오래 생각하고 고뇌해야 한다. 내면에서는 들끓는 열정으로 쓰고 싶은 욕구가 소리 없이 아우성친다. 하지만 어디서부터 어떻게 끄집어내야 하는가 하는 갈등과 고뇌로 안절부절 하게 된다. 소재가 무엇이 됐든, 물 흐르듯이 한 편의 시처럼 리듬감 있게 읽혀지는 그런 글을 쓰고 싶은 욕심을 거둘 수가 없다. 겨울나무처럼 군더더기 없는 담백한 수필 한 편을 완성해 보는 것이 나의 오래된 바램이다.

겨울나무 속에는 스스로의 의지와 끈질긴 생명력으로 겨울을 봄으로 만드는 위대한 힘이 숨어 있다. 죽은 마른 나뭇가지로 보였던 겨울나무들이 푸르른 사월 하늘아래서 잎을 틔우며 꽃피는 존재로 거듭난다. 모진 겨울을 보내면서도 역설적이게도 가장 연한 조직을 겨울 눈 속에 담고 미래를 준비한다. 각자의 방법은 다르지만 그 속엔 새 봄이 담겨 있다. 혹한을 견디어 내고 결국에는 무성한 잎과 꽃을 만들어 낸다. 삭풍이 부는 한겨울의 절망적 현실에도 희망의 봄은 마침내 등장하리라는 믿음을 가지고 살아간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고집과 경험이라는 것을 간판삼아 스스로 만든 세상에 갇혀 점점 딱딱해지고 있음을 경계하곤 한다. 나무는 시린 겨울에 준비해 가장 보드랍고 연한 새 조직을 세상에 내놓는다. 심지어 수백 년 묵은 나무까지도 매년 연둣빛 새싹을 올려내고 꽃을 피운다. 어려움 속에서도 희망을 키우는 것이다. 그런 겨울나무를 바라보면서 자연의 순환을 생각하고 삶과 인간의 미래를 바라볼 수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겨울나무는 때로 공허해야 한다는 것을, 겸손해야 한다는 것을, 진실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겨울 숲길을 걷다가 고고하게 서있는 한그루 나무와 마주한다. 나무로부터 전달되는 우주의 기운과 생명의 힘이 가슴을 벅차게 만든다. 그러니 나무란 존재에 어찌 빠져들지 않을 수 있겠는가. 더도 덜도 말고 겨울나무처럼 만이라고 하면 너무 큰 욕심일까. 흔들리는 마음 가라앉히고 고요히 눈을 감으니 어디선가 은은한 겨울나무 향기가 내게로 건너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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