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서천교육지원청 교육과장 신경희

높아진 하늘. 유리알처럼 투명한 햇살이 세상을 무균 처리하는 청명한 가을 한 낮이 너무 좋다. 파란 하늘에 잘디잔 흰 구름이 정말로 황홀하다. 거기다가 소슬한 바람은 찰 내음으로 그리움을 부추긴다. 산은 산대로 들은 들대로 풍성하고 아름답게 발맞춰서 찡하게 가을이 익어가고 있다.

아름답고 찡한 것이 어디 가을뿐일까. 지난 주 어느‘치매 엄마의 보따리’ 사연이 온라인을 달궜다. SNS에서 마주친 사진 앞에 가슴이 뭉클하고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부산지방경찰청 페이스북에 ‘치매를 앓는 엄마가 놓지 않았던 기억 하나’라는 제목으로 올라온 사진 때문이었다. 엉성하게 묶여진 허름한 보따리였다. 제목과 사진을 번갈아 보노라니 오래전에 읽은 신경숙의 소설 ‘엄마를 부탁해’가 오버랩 됐다.

부산지방경찰청은 “한 시간째 왔다 갔다, 할머니 좀 이상해요”라는 신고를 받고 출동한 부산 서부 아미파출소 경찰관들이 할머니에게 이것저것 여쭤보니 “우리 딸이 애를 낳고 병원에 있다”는 말씀뿐이라고 사건을 소개했다. 이어 그런데 정작 자신의 이름도, 딸의 이름도 기억하지 못하고 보따리만 하염없이 부둥켜안고 있었다. 경찰은 슬리퍼 차림인 할머니가 인근 주민일 것이라고 판단해 사진을 찍어 동네에 수소문한 끝에 할머니를 아는 이웃이 나타났다고 전했다.

경찰은 이웃의 안내로 딸이 입원한 병원으로 할머니를 모셨다. 할머니는 갓난아이와 함께 침대에 누운 딸에게 보따리 안에서 식어버린 미역국, 나물반찬, 흰 밥을 내어 놓으며 “어여 무라”(어서 먹어라)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어여 무라"라는 할머니 말에 병실은 눈물바다가 되었다고 한다. 잘 매여지지도 않은 허술한 보따리 안에는 다 까먹어도 잊을 수 없는 가슴 먹먹한 어머니의 사랑이 담겨 있었던 것이다.

나이 한 살씩 생애에 얹으면서 어머니라는 단어만큼 울림이 큰 단어가 또 있을까? 있는 듯 없는 듯 서 있어도 터지는 실밥처럼 마음이 투두둑 터지는 존재가 바로 어머니다. 허박한 치매 엄마의 보따리 사연에 나는 큰 숨 내몰아쉬며 심장을 박음질하느라 혼이 났다.

해안도로 목 백일홍 잎사귀에도 고운 빛깔의 가을이 내려앉았다. 처연한 아름다움으로 가을하늘을 이고 있는 목 백일홍에서 뭉클한 어머니를 다시 읽는다. 친정 엄마와 아래 위 집에 산지 벌써 이십여 년이 다 되어간다. 늘 가까이 있다는 이유로 그 소중함을 잊어버리는 일이 종종 있다. 지천명을 넘어 서고도 세상사 힘이 들 때는 언제라도 다시 어린아이로 돌아갈 수 있게 해주는 타임머신 같은 엄마가 늘 곁에 계시니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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