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시담당 국장 이상수

지난 87년 6월 항쟁으로 꽃핀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존폐의 위기에 서있다. ‘야만과 폭력’으로 점철했던 군부독재의 장기집권을 종식하고, 국민의 손으로 대통령을 선출하는 ‘직선제’를 쟁취했던 자랑스런 민주주의 역사가 처참히 짓밟히고 있다. 그것도 헌법을 수호해야 할 국가기관에 의해 버젓이 자행되고 있는 현실을 목도하면서 민주주의와 헌법적 가치가 근본부터 무너지고 있다는 위기의식을 절감하고 있다.

지난 6월 14일 발표된 검찰의 국정원 정치공작 사건 수사결과는 국가기관이 한통속이 된 봐주기식 수사의 전형이었다. 앞서 검찰은 원세훈 전 국정원장과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의 국정원법 위반과 선거법 위반 등의 혐의를 확인하고도 불구속 기소를 결정하였다. 그리고 더 가관인 것은 그 두 명 이외에 정치공작에 개입한 모든 국정원 직원을 기소유예로 처리하여 국가의 은혜로운 면죄부를 주었다.

지난 대선 때 자행된 국정원의 선거개입과 정치공작은 변명할 여지가 없는 국기문란이고 헌법파괴 행위이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국가기관이 선거에 개입하고 정치공작을 한 것이 만천하에 드러났음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 헌법과 민주주의 근간을 부정한 자들을 불기소 처분한 것도 모자라 그 수하에게는 모두 면죄부를 주는 것이 과연 상식적인 민주주의 국가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인지 반문하지 않을 수 없다.

뿐만아니라 검찰은 수사의 독립성과 공정성은 물론 수사의지 조차 포기했다. 권력기관이 조직적으로 개입된 증거가 확연함에도 원세훈 전 국정원장과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에 대한 불구속 기소는 검찰이 국정원 사태의 배후와 진상을 규명할 의지가 없음을 만천하에 공표한 것이다. 오히려 검찰은 적반하장으로 이러한 반국가 행위를 고발한 사람을 비밀유출이라며 기소했다. 권력기관의 잘못을 바로잡을 유일한 방법인 내부고발자에게 검찰이 재갈을 물린 셈이다.

국기문란과 헌법을 파괴한 국정원 사태는 국익을 위해 정파와 이념을 떠나 초당적으로 대응해야 할 사안이다. 따라서 국정원 사태가 정략적으로 흐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검찰의 수사의지가 없다는 것이 명약관화함에도 불구하고, 해당 검사의 운동권 이력을 들어 색깔론으로 몰아가려고 행태는 시대착오적인 구태에 다름 아니다. 또한 노무현 전 대통령의 NLL 발언에 대한 공개는 여야 합의 정신에 기초해서 풀어야 할 사안이다.

대한민국 민주주의 역사는 피와 눈물, 희생으로 일궈낸 역사이다. 87년 6월 항쟁으로 꽃핀 헌법과 민주주의 가치는 그 누구도 훼손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그러나 국정원은 정치공작 본산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검찰과 경찰과 같은 수사기관은 독립성을 포기하고 정치공작에 면죄부를 주었다. 범죄증거를 확보하고도 거짓 발표로 민심을 호도했다. 대선 결과에 영향을 끼치려는 심각한 범죄를 저지른 것이다. 청와대는 이러한 권력기관의 초법적 활동에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우리는 국정원 사태로 촉발된 작금의 사태가 ‘헌법과 민주주의 위기’라고 규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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