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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병 권 대전인재개발원 연수생

오월 신록이 온통 한밭벌에 푸른 주단을 깔듯 푸르디 푸르다. 가벼운 마음으로 여행길에 나섰다. 마치 소풍가는 아이마냥 설레이는 마음이다. 인천공항 가는 버스에서 바라 본 차창 밖의 풍경은 어느 멋진 여류화가의 수채화를 감상하는 것 같은 생각이 들 정도로 자연스럽다.

인천공항으로 가면서 차창 밖의 찬연한 풍경을 힐끗힐끗 보며 이런 저런 생각에 잠겼다. 마치 ‘생각하는 로댕’처럼 말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 도처에는 삶에 대한 인생을 정의하는 단어는 많다. 내가 정의하는 인생은 ‘흉내 내기’이다. 인생은 태어나서 생을 마감하는 사이에 많은 것들을 보고 모방을 반복해 온다.

음악을 배우는 이라면 대가(大家)의 공연을 반복적으로 보고 흉내를 낸다. 예를 들면 중국화가 ‘장다첸’은 고전명화를 수 없이 다시 그렸고 그 중 일부 모작이 대영박물관에 소장되는 영광(?)을 안기도 했다.

이번 미주(美洲)로 가는 해외연수는 맹물 같은 사대주의에 빠진 흉내 내기는 아니지만, 우리보다 더 개화된 선진국이기에 좀 배우고 혹 구경거리가 없는지 기대하면서 비행기에 올랐다. LA공항의 검색대를 통과하며 속절없이 위축되는 자화상을 본다. 그러면서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에이, 그 놈의 잉글리시…… ? 평소에 영어공부를 해둘 것을……!’

괜스레 소심한 마음을 눌러 짐짓 태연한 척하며 검색대를 통과하였다.

첫 여행지로는 미국 LA 유니버설 스튜디오를 시작으로 연수가 시작되었다. 우리가 머문 호텔은 비교적 깔끔했다. 밋밋한 아메리칸 스타일 아침은 시간이 지날 수 록 그럭저럭 적응이 되었다.

이어서 끝 없이 펼쳐진 캘리포니아 서부 대평원을 달렸다. 얼마나 달렸을까? 뿌연 사막사이로 들어낸 라플린 도시가 보였다. 그리고 일정별로 이어지는 라스베가스, 샌프란시스코, 밴쿠버로 이어지는 도시는 시차 부적응과 오랜 버스 탑승시간으로 피로는 더해 졌고 귀국 이후까지 이어졌다.

흉내 낼 거리를 찾아 눈과 귀를 열고 다니니, 우선 미국의 드넓은 평원이 압권이다. 그네들은 광활한 대지가 생산한 만물을 관리하기 어려운지 자연그대로 최대한 보존한다. 요세미티의 불타버린 나무들은 천 년이고 만 년이고 그 자리를 지킬 것이다.

‘흉내 내기’의 압권은 법을 무시한 무질서한 자들에 대한 미국 당국의 고액의 벌금이다. 미납자들에 대한 누진제도는 상상을 초월한 금액이 따라 붙는다. 안내고 못 버틸 정도로. 식당이나 농원에 딸린 상점에서 직원의 조용한 미소는 여행에 따른 피로를 조금이나마 덜어 준다.

저 유명한 영화 ‘그랜 토리노’에서 ‘월트 코왈스키(클린트 이스트우두 분)’는 집 현관에 성조기를 걸어놓는 보수주의자이며 백인 우월주의자이다. 본의 아니게 이웃집 베트남계 몽족 가족을 도와주며 인생에서 겪어보지 못한 따뜻한 가정을 느끼고 이웃과 소통한다. 이윽고 월트는 동양인에 대한 편견을 놓는다.

미국과 캐나다에는 백인들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전체 멕시코인의 30%가 미국으로 이주해 왔고, 밴쿠버 위성도시인 리치몬드 시에는 60%가 화교(華僑)라고 한다. 인종의 용광로 속에서 다양성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것은 건강한 국가와 사회를 만드는 디딤돌이 된다.

“우리나 그들이 먹고 입고 자는 삶이 어찌 다르리……?”

미국의 어느 시골 식당에서 아기를 옆에 앉히고 조용히 식사를 하는 젊은 부부를 보며 우리 모습을 곁눈질해 본다.

저 멀고 먼 땅 아메리카합중국 미국.
설레이던 미주여행을 마치고 이제 일상으로 돌아왔다. 내가 살고 있는 조국 대한민국과 대전을 생각해 본다. 손으로 만져질듯한 아름다운 산하 곳 곳에 정을 은밀하게 숨겨둔 이 나라의 미래를 생각한다.

문득 저 유명한 ‘25시’의 저자 독일 ‘게오르규’의 말이 생각이 난다. 그는 우리나라를 방문하여 ‘동방의 빛’이라며 찬미를 했었다.

“분명코, 우리나라도 머지않은 시기에 세계가 주목하는 봄날이 올 것이다! 아암 오고 말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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