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동 익 한국기업교육원 원장
국제라이온스협회 356-B지구 연수원 교수위원

[원칙주의자들이 많은데 왜 원칙이 지켜지지 않을까?]

‘후보 ooo는 원칙을 잘 지키는 사람! 믿을 수 있는 사람!’ 하며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원칙이라는 말을 많이 쓰고 있다. 특히 요즈음과 같이 편법이 난무하고 변칙이 판을 치는 세상에서는 원칙에 대한 갈망이 더욱 강하다. 원칙을 준수하며 잘 살고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는데 왜 원칙이 잘 지켜지지 않을까?

사례 1) 2011년 모 도(道)의 교육감이 도지사(道知事)의 결정에 갈등한 적이 있다. 도와의 무상급식비 분담 의견 조율에서 원래 ‘50대 50으로 무상급식비를 분담하자’는 약속을 도가 결국 파기(?)했기 때문이었는데 이 교육감은 갈등을 빚고 있는 현실과 관련해 “원칙이자 약속의 문제”라며 분명한 선을 그으며 불편한 심기를 표출했다.
이 교육감은 “도가 무상급식을 위해 도교육청을 설득하고 급식비를 50대 50으로 하자는 약속을 한 것이 바로 지난 해”라며 “이에 대한 약속 차원에서 도의회 의장도 자리를 함께 했었다”고 술회하면서 약속이 지켜지지 않은 것에 대해 “정치인과의 약속은 그야말로 무의미하다는 사실도 처음으로 알게 됐다”고 덧붙였다.

사례 2) 도의회가 실시한 市의 주민생활지원국에 대한 행정사무감사에서 사회복지 관련 민원이 폭주하는 가운데 공무원들의 민원인 응대태도에 대한 신랄한 비판이 가해졌다.
감사에서는 "10월 한 달 동안 시청 홈페이지 및 의회 홈페이지에 게재된 사회복지 관련 민원을 살펴보면, 그 첫 번째가 담당 공무원들의 불친절과 불량한 언행, 그리고 강압적이고 권위적인 태도가 문제"라고 지적했는데 시청의 담당자가 권위적인 말투, 법, 원칙, 규정 준수 등으로 상담이 불가능하도록 했다는 불만이 올라온 것이다.
이어 "두 번째는 공무원들이 정확한 사회복지 업무를 숙지하지 못하면서, 정보를 잘못 전달함으로써 수혜자가 피해를 보는 사례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사례 1, 2를 통해서 우리는 사회에 통용되고 있는 원칙이라는 의미가 제각기 해석되고 오용, 남용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원칙에 대한 정리]

원칙이라는 말은 사전에서 아래와 같이 정리하고 있다.
[원칙 [原則] (1) 많은 경우에 두루 적용되는 기본적인 규칙이나 법칙. (2) [논리] 다른 여러 명제가 도출되는 기본 명제]
논리, 수학에서 쓰는 원칙의 의미를 배제하고 일상생활에서 쓰는 원칙의 예는 ‘원리 원칙’, ‘원칙을 지키다’, ‘사정이 어떻든 우리는 원칙대로 할 수밖에 없다’, ‘이 방법은 원칙에 어긋나기는 하지만 편법으로 자주 쓰인다.’, ‘법안 통과 과정에서 원칙이 무시되었다는 점을 우리는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원칙주의 [原則主義] 기본적인 규칙이나 법칙대로 하려는 사상이나 태도‘, ’원칙론자 [原則論者] 기본적인 규칙이나 법칙대로 하려는 사람‘ 등의 사용 예를 들고 있다.

다시 정리하자면 우리가 사용하는 원칙이라는 의미는 ‘많은 경우에 해당되는 모든 사람이 제대로 지켜보자’ 라는 기준을 의미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 기준을 우리는 원칙, 규칙, 법칙, 규율......등으로 말하고 있다.
문제는 여기서부터 시작되는데 ‘많은 경우?’, ‘모든 사람?’이 다 같은 것이 아니라 것이다. 즉, 각기 처한 상황이 다르고 개인별로 처한 입장이 다르다는 것이다.
시대가 요구하는 인재(박동익의 리더십컬럼 3)에서도 언급했지만 나라별로, 인종별로 지역별로 또는 학연, 지연 등에 따라 그 기준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어렸을 때 들은 얘기로 아프리카의 어느 종족의 인사는 '상대방의 뺨을 세게 때리는 것'이 환영의 인사이고, 에스키모의 손님접대 중 최고의 접대는 '부인을 손님과 같이 자게 한다.'는 등 우리의 상식과 다른 무언가가 대단히 많다.

[자연 속에 존재하는 인간의 법칙]

이제 우리가 지켜야 할 원칙에 대해서 정리해보자.
스티븐 코비는 자신의 저서(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에서 원칙에 대해 ‘ 자연 속에 존재하는 우리가 지켜야 할 법칙’을 얘기하고 있는데 자연 속에 존재하고 인지되고 있는 만유인력의 법칙, 중력의 법칙, 수확의 원칙, 메아리의 원칙, 원심력...... 등 자연의 법칙을 우리 인간행동으로 접목한 법칙을 강조하고 있다.

수확의 원칙을 예를 들어 보자. 수확을 잘 하려면 농사를 제대로 지어야 하는데 적시에 파종해야 하고 제대로 양분을 주어야 하고, 잘 가꾸어야 하고, 적절한 때를 보아 수확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몸을 건강하게 하기 위해서, 좋은 성적을 내기 위해서, 올바른 자식을 키우기 위해서 등의 인간행동으로 접목해보면 모든 것이 수확의 원칙에 해당 된다.
메아리의 원칙을 예를 들어보자. 산에 올라 기분 좋은 마음으로 ‘야호’하면 맞은 편 산에서도 ‘야호’하고 소리를 내지 갑자기 ‘철수야‘, ’영희야‘로 바뀌지 않는다.
대인관계에서도 내가 상대방에게 어떻게 행동을 했느냐에 따라 상대방도 반응을 하게 되는데 상대방에게 달콤한 신뢰의 향기(칭찬, 격려, 배려, 인정 등)를 보내면 상대방도 신뢰의 향기를 흠향하며 더욱 매혹적인 신뢰의 향기를 보내지만, 반대로 고약한 냄새(꾸중, 질책, 비판, 무관심 등)를 풍기면 상대방은 냄새를 맡기는커녕 더욱 멀리 달아나려고 할 것이다. 인과응보의 법칙이다.

[행동은 내가 결정하지만 결과는 원칙이 지배한다]

자연 속에 존재하는 자연법칙을 우리 인간 행동에 접목하는 예는 수없이 많다.
그런데 우리는 일상생활을 하면서 이러한 것을 무시하고 있다. 그것은 바로 개개인이 처한 상황과 입장에 따라 주관적으로 판단하고 행동하기 때문이다. 이것을 우리는 사회적 가치라고 하는데 자신이 정한, 우리가 정한 사회적 가치와 위에서 얘기한 자연법칙 중에서 어느 것에 우선순위를 두고 행동을 결정하느냐에 따라 원칙에 대한 혼선이 오는 것이다.
명확히 할 것이 있다. 사회적 가치에 의해 자신의 행동을 결정하지만 결과는 자연법칙이 지배한다는 것이다. 쉬운 예를 들어보자.
자동차를 운전한다고 할 때 커브 길에서는 당연히 속도를 줄여서 서행을 해야 한다.
속도를 줄이는 것은 내가 하는 결정이지만 속도를 줄이지 않고 계속 빨리 달린다면 그 결과는 자명한 것이다.
씨를 뿌리지 않고 수확을 할 수 없으며, 제대로 가꾸지 않고 수확을 할 수 없다. 또한 영양을 제대로 공급해 주어야 잘 자랄 수 있을 것이고, 적기에 수확을 해야 썩은 곡식을 얻지 않을 것이다.
좋은 성적을 얻기 위해서 열심히 공부해야하는데 좋은 성적만을 생각해서 다른 변칙을 쓸 수는 없는 것이다.

[이제 원칙을 제대로 지키자]

항해할 때 위치를 가늠하기위해 바다위에는 일종의 기준의 역할을 하는 ‘부표’라는게 있다. 그런데 이 부표가 제 위치에 있지 않고 바닷물에 이리 저리 휩쓸려서 왔다 갔다 했다고 보자. 과연 이것이 부표로써의 기능을 하는 것인가.
마라톤을 하는데 결승선이 동쪽에 있다가 서쪽으로 옮겼다거나, 참가하는 선수나 심판의 판단에 따라 이리저리 옮겨 다닌다면 과연 그 결승선은 결승선으로써의 존재 의미가 있는 것일까?

우리가 지키자고 정해 놓은 것이라면 제대로 지킬 줄 알아야 한다.
훌륭한 리더는 늘 사심 없는 마음으로 일의 근본을 생각한다. 자기가 하는 일이 반드시 옳고 가치 있는 일이라는 확신을 갖기 때문에 여유가 있다. 급히 성과가 나타나기를 바라지도 않고 작은 이익을 두고 다투지도 않는다. 그러면서 이것이냐 저것이냐를 나누지 않고 이것도 저것도 모두 품어 안을 수 있는 대안을 항상 추구한다. 결국 자연에 순응하면서 자연법칙에 따르며 산다.
얼마 남지 않은 대통령선거에서 원칙중심의 삶을 지닌 후보가 꼭 당선되기를 기대한다.
그래야만 믿을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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