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동 익 한국기업교육원 원장
국제라이온스협회 356-B지구 연수원 교수위원

진정한 영웅은 위기 속에서 탄생한다.
리더의 탄생을 얘기할 때마다 나오는 얘기다. 그만큼 위기상황에서 놀라운 능력을 발휘하는 것이 여러 사람에게 큰 영향력을 끼치게 되는 것이다.
리더의 덕목으로 중요하게 부가되는 것이 위기대처능력, 위기관리능력이다.
만약 리더가 위기에 대해 위기라고 생각하지 못한다고 가정해보자. 정말 끔찍한 일이다.
몇 가지의 예를 통해 리더의 위기대처능력을 검증해보자.

[존 F. 케네디의 선택-소련의 쿠바 미사일 배치 실패]
1964년 10월 14일 세계 최강의 국가 미국을 발칵 뒤집어 놓은 사건이 일어났다.
미국의 정찰기가 쿠바에서 미사일기지가 건설되고 있는 현장을 포착한 것이다. 항공사진을 분석해보니 미사일이 설치되고 있으며 그 미사일은 미국의 안보를 위협하기에 충분한 핵탄두의 장착이 가능한 모델이었다. 그리고 쿠바의 뒤에는 소련이 있음이 감지되었다. 1960대 초기에는 미국과 소련을 정점으로 한 냉전의 위기가 최고조로 올랐던 시기이다. 당연히 바로 그 다음날 백악관에서는 중요 회의가 소집되었고 미국은 미국의 뒤뜰에 소련의 미사일 기지가 세워지는 것을 좌시하지 않았다. 미국의 군부는 무력 사용을 주장하였을 것이고 국민들도 당당한 미국의 모습을 기대했을 것이다.
대통령은 적극적인 대응 방안으로 해상봉쇄를 선택했다. 그리고 인류 역사상 가장 위험했던 순간에 시시각각 변하는 상황을 직접 주시하면서 소련을 경계하기 위한 일련의 계획(예를 들면 미국의 미사일을 소련의 주요 중심부에 목표지점으로 겨냥되고 있다고 유엔주재 대사를 통해 통보, 태평양 상공에서의 핵실험 등)을 진행시켰다. 결국 소련의 후루시초프로부터 온 장문의 편지는 미국이 쿠바 침공을 하지 않겠다고 약속하면 미사일을 해체하겠다는 내용이었다.
“핵무기를 가진 두 강대국 사이의 충돌로 빚어진 이 사건은 세계를 핵전쟁 직전까지 몰고 가서 인류의 종말을 초래할 수도 있었던 사건이었다.”라고 할 정도의 엄청난 사건이었지만 존 F. 케네디라는 위대한 지도자의 위기대처능력이 돋보인 대단한 사례로 결론지어진다.

[미국 제32대 대통령 F.D.루스벨트의 지도 아래 대공황(大恐慌) 극복-뉴딜정책]
1929년 10월 24일에 뉴욕 주식시장의 주가 대폭락을 계기로 시작된 경제 불황은 미국 을 나락으로 떨어뜨렸다. 후버 대통령의 필사적인 방지대책에도 불구하고 물가는 계속 폭락하고 파산자가 속출하였으며 실업자는 날로 늘어나 무려 1,300만 명에 이르렀다.
1932년의 대통령선거는 미국 역사상 가장 존경받는 루스벨트대통령을 이와 같은 심각한 불황속에서 선택하게 된다.
루스벨트는 경제사회의 재건, 빈궁과 불안에 떠는 국민의 구제 등을 목적으로 한 새로운 정책, 즉 ‘잊혀진 사람들을 위한 뉴딜(신정책)’을 약속함으로써 공화당의 후버를 누르고 대통령에 당선되었고, ‘백일의회(百日議會)’라고 불리는 특별의회를 소집하여 적극적인 불황대책을 중요 법안으로서 입법화하였다.(자세한 내용은 뉴딜정책을 참고)
대규모의 토목공사를 실시하여 많은 실업자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고, 1차 세계대전의 후유증을 없애기 위한 노력으로 금융공항으로부터 은행을 구출하였으며, 금본위제를 폐지하고 관리통화법을 도입하여 통화에 대한 정부규제력을 강화하는 등 (이외에도 많은 정책이 수립되고 실천되었다)
뉴딜정책은 정부가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자유주의 경제에 대한 수정을 함으로써 미국의 위기를 극복한 놀라운 획기적인 사례로 회자되고 있다.

[임진왜란 - 병자호란 - 한일병합]
1592년 왜군의 수장 토요토미 히데요시는 병선 400척을 이끌고 부산포 앞바다에 나타나면서 조선 침략의 시작을 알린다.
이로부터 10년 전 율곡 이이는 10만 양병설을 주장하며 남쪽의 왜와 북쪽의 여진을 경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 평화로운 시기에 무슨 전쟁준비를 해야 하느냐’는 반대의 주장에 양병설은 묵살되어 버린다.
전쟁발발 2년 전 아무래도 이상하다는 낌새를 느낀 조정에서는 왜국에 통신사(정사 황윤길, 부사 김성일, 서장관 허성)를 보내면서 ‘토오토미 히데요시가 도대체 어떤 놈인지’를 알아오게 한다. 100여 년 만에 일본에 파견됐던 통신사 일행은 선조 임금에게 복명하는 과정에서 정사 황윤길과 서장관 허성의 경우 “전하, 토요토미 히데요시는 야망이 큰 친구입니다. 일본 천하를 통일하였으며 무사들의 열기가 천지를 진동합니다. 가만히 두면 또 다른 반란의 여지가 있기 때문에 그 열기를 조선으로 향할 것이 분명합니다. 미리 대비하심이 옳은 줄로 아옵나이다.” 라고 보고를 했지만, 부사 김성일은 “전하, 토요토미 히데요시는 쥐새끼 같은 놈입니다. 그런 놈이 감히 무슨 야망이 있겠습니까? 심려하지 않으셔도 되는 줄 아옵니다.”
정사와 부사의 말이 엇갈리게 보고를 했습니다. 임금은 누구의 말을 들어야 할까요?
또 주위에 있던 신하들은 임금에게 어떤 건의를 해야 할까요?
결국 통신사 삼사(三使)의 상반된 보고, 특히 김성일의 잘못된 보고 때문에 조선은 왜의 침략에 제대로 대비를 하지 못했고 개전 초 왜군에 추풍낙엽처럼 밀리는 원인이 되었다는 게 거의 정설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는 실정이다.
이 시기에 우리나라를 구한 난세의 영웅 ‘이순신 장군’의 얘기도 있지만 한 나라를 책임진 임금의 위치에서 어떤 리더십이 필요했을까를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된다.
이어지는 병자호란, 열강들의 조선 침략에 이어 일본의 한일 합병에 이르는 수모는 위기상황에서 위기대처능력의 부재를 알리는 안타까움을 보여주고 있다.

이제 우리는 경제규모 세계 13위의 경제대국, 잘 사는 나라 순위 15위의 놀라운 나라로 발전하였다. 1960년대 초반 세계에서 가장 못 사는 나라 대한민국이 이처럼 성장한 것은 무슨 이유일까? 한국전쟁 직후 맥아더 원수는 “이 나라가 정상적으로 되려면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 한 최소 100년이 걸릴 것이다”라고 했던 가난한 나라 대한민국이었다.
1960년대부터 시작한 경제개발 5개년 계획, 새마을 운동, 고속도로 건설, 항만 도로의 건설, 철강, 석유화학 등 중화학공업의 육성, 각 지역의 공단 조성...... 등
북한의 위협으로부터 안전하지 않았던 나라, 못 사는 나라, 가난한 나라의 오명이 붙었던 나라가 세계를 리드하는 국가로 발전되어온 힘은 역대 어느 대통령의 돋보이는 리더십 때문이었다는 것은 다 아는 사실이다.

지금 세계의 경제 상황, 대한민국의 경제 상황은 무척 어렵고 우리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있지만 세계의 정치지도자도 많이 바뀌고 있다. 사회도 불안하기 그지없다.
북한도 자기식대로 존재를 드러내기 위해서 최후의 발악을 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고, 이란을 비롯한 이슬람교의 저항단체는 계속적인 테러를 자행하고 있다.
이러한 현실에서 새로운 지도자에게 요구되는 덕목은 무엇일까?
위치대처능력, 위기관리능력이 없는 리더를 선택한다는 것은 감히 상상을 할 수 없다.

저작권자 © 대전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