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제도 개혁은 사법권 독립부터

사법제도 개혁은 사법권의 독립에서 시작돼야
한대수 자치행정 부장


국회 사법제도개혁특위에서 올바른 양형판단과 대법관의 업무량 폭주로 인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사법전반에 관한 제도개혁을 논의 중이다. 올바른 사법제도의 개혁은 국민을 위한 선택이어야 하며 미래 지향적 이어야한다. 사법제도 개혁이 당리당략이나 정치 지향적으로 흘러서도 안되며 어느 집단의 이기주의에 기인해서도 안된다. 만약에 그렇게 되면 그것은 개혁이 아니다. 또한 사법부는 독립돼야하고 독립해야만 제대로 돌아간다. 제도의 미진한 부분을 바로잡기 위해 개혁하자는데 반대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개혁논의를 하다보면 이것저것 개정할 부분이 생기기 마련이다. 그래서 양적개혁도 필요하다. 그러나 국민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한 질적 개혁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되며 모든 것은 국민을 위해서 존재한다는 대전제를 잊지말아야한다. 아울러 사법제도 개혁은 사법권의 독립에서 시작돼야한다. 그것이 3권을 분립하는 이유이며 그래야 모든 국민이 법앞에 평등해진다.

당초에 사법제도개혁논의를 촉발한 것은 일부지방법원 법관들의 편향된 시각과 가치관에 의한 판결 때문이었다. 그런데 국회사법제도개혁특위 소위원회가 내놓은 개혁안을 보면 법관의 자질향상과 선정에 관한 부분은 법조일원화와 법관평정제도에 중점을 두고 있다. 더욱이 개정하는 법조일원화도 2020년에 시행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10년 후의 일을 벌써부터 개정해놓고 그 시행을 뒤로 미루고 있다. 선뜻 이해가 가지 않는다. 그러면서 상고심제도 개편문제를 포함시키고 오히려 법관수에 중점을 두고 있다. 이번소위의 개혁안은 당초에 사법제도개혁론을 촉발시킨 일선법관들의 가치관과 자질향상이라는 핵심문제를 비켜나서 개혁의 가지수만 늘리는 양적개혁에 치중한다는 비판이 벌써부터 나오고 있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개혁은 소뿔을 고치려다 소를 죽이는 것과 같은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사법권의 독립은 가장 중요한 헌법적 가치의 하나이다. 같은 사건이라고 해도 모두가 같은 사항이 아니므로 같은 판결이 나올 수는 없다. 똑같은 판결은 획일화이며 천편일률적이기에 오류가 따르기 마련이다. 그래서 재판은 헌법과 법률에 기초하여 법관의 도덕과 양심에 따라 판단하라는 권한을 부여한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 국회 사법제도 개혁위원회의 소위안은 양형기준법의 제정을 제안하고 있다.양형기준에 관한 법률을 만들고 그 기준은 국회의 동의를 받도록 하자는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것은 사법권의 독립성을 전면으로 침해할 소지가 있다. 법관의 양형이 때때로 제각각이어서 이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비판이 비등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이런 혼란스러운 양형을 방치하는 것은 사법의 정의를 훼손할 수 있기 때문에 이 점에 대해서는 대책을 세워야한다는데 찬성한다. 하지만 양형은 재판의 주요한 부분이므로 양형기준의 통일에 관한 부분은 법원 스스로에게 맡겨야지 입법부가 법률로 양형기준위원회를 설치하고 양형위원회의 양형기준에 대해서 국회의 동의를 받도록 하자는 것은 법원의 헌법상 고유권한인 재판권에 입법권이 직접 개입하는 것과 같아 문제가 있다. 이는 3권분립의 취지에도 어긋나며 국회가 사법권의 위에 서는 것으로 반대한다.

헌법이 선출직이 아닌 법관에게 재판권을 부여하는 것은 재판은 다수에 의하여 선출된 선출직의 다수결에 의한 가치판단보다 법관 개인의 가치관에 의한 가치판단이 더 중요하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사법권의 독립은 매우 중요하다. 법관은 정치권의 눈치나 언론의 눈치도 보지 말아야하고 오로지 헌법과 법률 그리고 도덕과 양심에 따라 판결해야한다. 어떠한 외압이나 여론몰이에 말려서도 안된다. 그래서 법조문이 있어도 도덕과 양심을 요구하고 있다. 그런데 국회의원들의 가치판단으로 재판의 양형을 좌우하려고 하는 것은 헌법의 기본원칙을 무시하는 매우 위험한 발상이다. 3권분립의 기본취지를 이해하고 사법의 근간을 훼손하는 일은 하지 말아야한다. 그것은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것이며 3권분립의 기본취지에도 위배된다.

대법관 증원에 대해서도 말이 많다. 대법관 증원은 최고법원인 대법원의 대표성과 상징성이 주는 신뢰성과 직결되는 문제이므로 매우 신중히 결정해야한다. 업무과중의 문제는 보좌기능의 보강으로 해결하는 것이 하나의 방법이다. 지방법원이나 고등법원의 하급심에서 양형기준이 어느 정도 정착되고 법원 스스로 자정하여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면서 마지막 3심인 대법원의 업무를 줄이는 방안도 고려해야한다. 업무량이 많다고 해서 대법관의 수를 늘려서 해결하는 것은 정당한 해법이 아니다. 일이 많다고 해서 20명으로 대법관의 숫자를 늘리는 것도 그래서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이는 대법관의 위엄성과 존엄성을 떨어뜨리는 악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적정한 인원으로 조정하되 20명으로 늘리는 것은 깊이 생각해볼 일이다. 동네반장도 일이 많다고 해서 무작정 증원하지는 않는다.

정치권이 사법제도 개혁을 역설하면서 먼저 거론한 것이 대법관 증원인데 이것은 정치권의 사법제도 개혁의 동기가 무엇인지 그것부터 먼저 살펴 봤어야한다. 사법제도 개혁론이 촉발된 계기는 같은 사건을 놓고 지방법원 법관들의 판결이 서로 다르게 나오면서 법의 잣대가 국민들에게 혼란스럽고 그래서 상급심의 심판청구가 늘어나는데서 시작됐다. 대법관 수를 증원한다고 해서 이 부분이 해결되겠는가. 그래서 정치권이 대법원을 손보려고 대법관 증원문제를 거론한다는 말을 듣게 되는 것이다. 우리와 사법제도가 유사하면서 인구와 국가규모가 훨씬 큰 일본 최고 재판소의 재판관수도 15인이라는 선진당 이회창 총재의 지적은 그래서 설득력을 얻고 있다. 사법제도 개혁은 잘못된 제도를 고치되 사법권의 독립성을 침해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빈대를 잡기위해 초가삼간을 태울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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