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3월이 오면 새로 시작한다는 긴장과 누군가를 새로 맞는다는 설렘으로 살짝은 들뜬 마음이 된다. 대부분 1월에 새해 소원을 빌고 힘찬 출발을 다짐한다. 하지만 학교나 교육청은 3월이 그런 달이다. 학교마다 피돌기가 시작됐다. 여기저기 희망의 함성이 들려온다. 우리 교육청에서도 삼월의 첫 출근 날. 새로 부임한 직원인사도 있었고 월례 특강이 진행됐다. 특강은‘왜 수업혁신인가’란 주제로 펼쳐졌다. 서울에서 내려 온 강사는 구렁이 담 넘어가듯 유연하게 초점에 맞춰 곧잘 강의를 이어갔다. 시간이 꽉 차갈 무렵 강사는 영화‘역린’의 대사로 특강을 마무리 지었다. 2년여 전 그 영화를 보면서 심쿵했던 바로 그 장면이다. 정조는 신하들에게 중용 23장을 외울 수 있는지를 시험했다. 정조를 가까이서 모시며 왕의
입춘 지나고 봄비 내리는 우수를 건너 정월 대보름이 지나갔다. 정작 대보름엔 날이 흐려 보름달을 보지 못했다. 그저 마음속에 걸어두었는데, 다음날 둥그렇게 떠올랐다. 달빛이 참 좋았다. 온 세상에 메밀꽃이 흐드러지게 핀 듯 온통 환했다. 둘 곳 없어 서성이던 맘 추스르며 소망도 빌었다. 월출하듯 떠오르는 얼굴이 있었다. 그 얼굴 그 마음에도 만월이 떠올랐을 거다. 2월은 3월을 준비하는 설렘으로 가득한 달이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학교의 2월이 그렇지가 못하다. 새 학년도를 기다리는 2월에 교사들은 새로운 학교생활을 준비하며 오히려 스트레스를 받는다. 최근 어느 일간지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새롭게 만나는 아이들부터 바뀐 교육정책 업무 등 부담이 커서 교사들이 불면증은 물론 악몽에까지 시달린다고 한다
구정을 보내고 진짜 새해를 맞이한 지 열흘을 넘어서고 있다. 여전히 새벽부터 정신없이 달린다. 가끔 내가 왜 달리는지도 모른 채 그냥 달린다. 하루하루 숨 가쁜 일상, 잠시라도 공백이 생기면 불안하고 초조하다. 뭔가 자꾸 더 열심히 해야만 할 것 같은 압박감에 시달리며 한 번씩 돌아본다.‘무엇을 위해 달리는가,‘나는 지금 제대로 살고 있는가’그런 물음표를 던지면서. 며칠 전 책을 읽다가 만난 새 책을 읽고 있다. 책은 또 다른 책을 읽게 하는 힘이 있다. 최근 큰 인기를 끌고 있는 김정운의 가 그것이다. 관계에 부대끼며, 뜻 모를 용기를 스스로 세뇌하며, 어디로 가는지 모르고 앞만 보고 가는 사람들에게 그는 말하고 있다.“가끔은 격하게 외로워야 한다”고. “그림을 공
세월이 흐르면서 가슴속으로 겨울나무들이 걸어 들어왔다. 자연스레 겨울 숲의 깊이와 운치를 알게 됐다. 메마른 잎조차 벗은 나무 가지가 시린 하늘을 감싸 안은 모습은 가히 치명적인 아름다움이다. 겨울나무는 나조차 가릴 수 없는 빈한한 덧없음에 삶의 시야까지 열어준다. 겨울나무가 틔워 주는 시야는 삶의 진정함은 가졌을 때가 아니라, 그 모든 것을 놓았을 때라는 걸 보여준다. 애착하고 집착하는 그 모든 것들은 어느 날 생각해 보면 다만 다 흘러갈 뿐이다. 버리려 해서 버려지는 것도 아니고, 가지려 해서 갖게 되는 것도 아님을 세월 속에 터득하게 해준다. 그래서일까. 숲의 고수들은 나무를 만나는 가장 멋진 시기를 겨울로 꼽는다고 한다. 겨울 숲에 가면 벌거벗어 윤택한 침묵에 저절로 숭고해진다. 울퉁불퉁한 몸
올겨울 날씨는 유난히 포근하다고 했다. 그런데 갑작스레 강력한 한파가 찾아 들었다. 원인은‘우랄블로킹’현상 때문이란다. 유럽과 아시아를 나누는 우랄산맥 동쪽에 커다란 고기압이 생기면서 북극 주변을 돌던 제트기류의 흐름이 막혀 심하게 굽이치게 되어 만들어진 탓이다. 대서양과 태평양에도 이런 블로킹이 만들어져 유럽과 미국 동부지역에도 한파가 몰아치고 있단다. 대한 추위도 그 몫을 톡톡히 했다. 우리 동네 서해안 지역은 20센티가 넘는 눈까지 내렸다. 바람도 칼끝처럼 날카롭다. 무엇보다 출퇴근이 어렵다. 요 며칠 차량이 뜸한 이른 새벽에 출발한 덕분으로 아침시간을 벌었다. 따끈한 차를 마시며 6층 사무실에서 내려다보니 온통 하얗다. 갑자기 강풍이 불어와 쌓여있던 눈송이를 한꺼번에 날렸다. 순간 시베리아 벌
붉은 원숭이해 신정 연휴를 보내고 첫 출근을 한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중순으로 접어들었다. 진심과 형식이 적절히 버무려진 새해 인사를 나누자마자 해외출장이 잡혀 있어 다녀왔다. 시차 적응도 되기 전에 떠나와 출근을 한 탓인지 오후가 되니 동공은 있는 대로 풀리고 머릿속은 멍하니 다시 생각이 많아지는 날이다. 누구나 공평하게 새로 받은 희망의 백지. 무엇이든 시작하면 잘 될 것 같던 새해 첫 날. 그 다짐들이 무색해져 간다. 새로 받은 백지 위에 무엇부터 적을 것인지. 무엇을 향해 달릴 것인지. 무엇을 얻기 위해 땀을 흘릴 것인지. 케롤드웩은 에서 마인드 세트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그가 말하는 마인드세트는 두 가지다. 자질이 이미 정해져 있다고 믿는 고착 마인드세트와 자질이라
30대 후반에 부부행복학교를 다닌 적이 있다. 매주 목요일에 몇 쌍의 부부가 만나 저녁식사를 하고 토론을 했다. 부부생활을 하소연하는 자리이기도 했다. 토론을 하다보면 새벽이 되기 일쑤였다. 지정해주는 책을 함께 읽고 독후감을 써서 발표하는 시간도 있었다. 그렇게 6개월여가 지나고 1박 2일 최종 워크숍이 있었다. 장소는 깊은 산속 한적한 기도원이었다. 무엇에 쓰일지 궁금한 도구들도 눈에 띄었다. 다듬이돌, 방망이, 군용 담요 등등. 어둠이 이슥해지면서 그 도구들은 적극적으로 활용됐다. 당시 50대 중년 부부의 상황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그는 엄한 아버지 밑에서 자란 탓으로 성인이 돼서도 가정이나 직장에서 늘 주눅이 들어 있던 사람이었다. 진행자는 방망이로 다듬이돌 위에 군용담요를 힘껏 두드리며 죽은
첫눈이 함박눈으로 왔다. 그날은 외부행사로 부안에서 내소사를 거쳐 올라오던 길이었다. 마음 준비도 안됐는데 순식간에 은빛세상이 돼버렸다. 첫눈이 그렇게 와서는 안 되는데. 가을이 미처 떠나기도 전에 겨울을 알리는 고지서처럼 첫눈은 그렇게 배달되었다. 그 날은 민주화의 큰 산이자 개혁정치의 큰 강이었던 김영삼 전 대통령의 마지막 배웅길이기도 했다. 버스 안 모니터에서는 영결식 중계방송이 음악처럼 흘렀다. 알싸하던 가을은 그렇게 흔적 없이 사라졌다. 거북이걸음 운전으로 어렵사리 퇴근을 했다. 약속은 없었지만 어디론가 가야 할 곳이 있어야만 될 것 같은 날. 누군가를 만나야만 할 것 같아 서성거렸다.‘첫눈이 오는 날 만날 약속을 할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 첫눈이 오는 날 만나고 싶은 사람 단 한 사람만
11월 13일에 금요일. 많은 일들이 잡혀 있었다. 서울출장, 수업혁신을 위한 배움 수업축제, 글을 씁네 하며 발을 들여 놓은 서림문학회 문학의 밤, 전시회, 지인의 자혼 피로연 등. 일 년에 딱 한 번 있는, 아니 누군가에겐 평생에 한 번인 행사도 있었다. 어느 것을 택해야 할지 난감했다. 결국 공직자로서 1박 2일 출장을 갈 수밖에 없었다. 당연히 다른 행사들은 접어야 했다. 안 좋은 일이 생긴다는 13일의 금요일. 공교롭게도 그 날은 최악의 동시다발 파리 테러가 발생했다. 비는 종일토록 주룩주룩 내렸다. 가을비 한 번에 내복 한 벌이라 했는데, 비 그친 후에도 기온은 내려가지 않았다. 만추의 햇살에 단풍 빛이 눈부시던 일요일. 미루고 미뤄둔 쪽 마당 대청소를 했다. 오후에서야 여유를 찾았다. 그
황금 빛 들판 다 사라지고 어느덧 11월이다. 나태주 시인이‘돌아가기엔 이미 와버렸고, 버리기엔 차마 아까운 시간’이라고 표현했던 달이다. 모두가 다 사라진 것은 아닌 달. 낮이 조금 더 짧아졌으나 빛 고운 추억들이 남아 있는 달이다. 12월을 남겨 두고는 있지만, 일이든 삶이든 놓친 것, 미진한 것들을 찬찬히 살펴서 갈무리해야 하는 달이다. 11월에는 외롭지 않은 사람도 괜히 마음이 스산해진다. 산그늘이 깔리듯 쓸쓸하다. 그래서인지 요즘 말도 헛으로 나온다. 엊그제는‘외독’하다고 말해 일행이 한바탕 웃었다. 얼마나 외롭고 고독하길래 말이 다 그러느냐고 한마디씩 건넸다. 길을 가다가 마주친 풀꽃 한 송이에 눈을 주고 돌아선 발걸음처럼 마음단추가 풀어질 때가 많다. 불현 듯‘나’라는 존재를 확인
오늘도 나는 계단을 선택했다. 부임 후, 어정쩡 정신없이 살다보니 일찍 출근을 해도 엘리베이터 타기에만 급급했었다. 그러던 어느 날부터인가 운동하는 흉내라도 좀 내야지 싶어 선택한 것이 6층 사무실까지 계단 오르기였다. 시작한지 3주째다. 오를 땐 숨이 차서 헉헉대며 계단을 선택한 걸 후회하기도 한다. 하지만 오르고 나면 그 선택에 절대 후회가 없다. “고생 했어 무릎아”마치 큰일이라도 해낸 듯 기분이 참 좋아진다. 몇 주 전엔, 전임 근무지에서 특강 의뢰가 왔다. 나이가 어렸을 땐 사람들 앞에 서서 얘기하고 강의하는 것을 서슴지 않았다. 헌데 나이 좀 들면서부터는 누구 앞에 선다는 것이 두렵고, 강의는 더더욱 꺼려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임 지 식구들을 보고 싶은 마음이 앞서 전후 살피지도 않고
지난주에는 이곳저곳으로 출장을 다니느라 며칠 사무실을 비웠다. 오랜만에 출근한 날. 밀렸던 결재와 자료들을 살피고 정리하느라 몹시 부산했다. 숨찬 시간들을 떠나보내고, 늦은 오후에서야 차 한 잔을 마시며 눈을 지그시 감았다. 그 때 불현듯 떠오르는 용어가 있었다. 출장길에 읽었던 책에서 우연히 만난 심리학 용어다. 아주 오래전에 설핏 만나 기억에서조차 가물가물해진 윤형방황(輪形彷徨)이 바로 그것이다. 사람은 눈을 가리면 길을 똑바로 걷지 못한다. 20미터 정도 걸으면 실제로는 4미터 정도의 간격이 생기고, 계속 걷게 되면 결국 큰 원을 그리며 돌게 된다. 이런 현상이 윤형방황(輪形彷徨)이다. 어떤 등산객이 알프스에서 길을 잃고 13일 만에 구출되었다. 구조된 후 인터뷰를 해 보니 그는 그곳을 빠져 나
한글날 연휴에 가을비가 내렸다. 제한급수까지 실시되고 있는 우리 지역에는 더할 수 없는 반가운 손님이었다. 기온도 내려갔다. 가을비 한 번에 내복 한 벌이라더니 찬바람 불며 쌀쌀하기까지 하다. 한층 깊어진 가을이 눈앞에 우두커니 서 있다. 대부분의 조직에서는 월례회의가 있고 곁들여 직장연수를 하곤 한다. 10월 1일은 일터를 옮기고 두 번째 맞는 월례회의였다. 그 날도 반가운 비가 내리고 바람이 불었다. 여느 때 같으면 비 내리는 출근길을 불만했겠지만 워낙 가뭄이 짙어 인근지역 모두 시범 제한 급수까지 시행한 터라 감지덕지 그저 고마울 따름이었다. 더 많이 내려 달라 기원했다. 은 바로 그 날 만난 시(詩)다. 시라고 하면 짓지는 못해도, 밥 먹듯이 읽어 온 시가 몇 대 분의 트럭은 될
살아가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사랑, 가족, 성취감, 뭐 그와 유사한 것들을 불러낼 수 있을 것이다. 요즘 나는‘긍정의 시선’에 꽂혀 있다. 그것이야말로 팍팍한 일상을 살아가는데 가장 중요한 원동력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가족을 사랑하고, 내 일을 사랑하며 최선을 다해 살아갈 수 있게 해주는 힘. 그것은 바로 긍정의 시선이다. 나는 어떠한 순간에도 따뜻한 시선을 놓지 않는‘요시모토 바나나’의 글을 좋아한다. 몇 년 전에 읽었던 그녀의 에 담긴 몇 편의 단편 소설들이 떠오른다. 생의 결정적인 순간을 맞닥뜨린 다섯 명의 여자가 막다른 골목에서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한 걸음을 내딛는 모습들이 담겨 있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모두가 속도와 효율성만을 강요
계절이 바뀔 때면 시간을 도둑맞은 듯한 씁씁함을 떨칠 수가 없다. 여름을 처분한다는 처서를 벌써 보내고 엊그제 추분이 지나갔다. 그런데도 한 낮 끝은 가지 못한 늦여름이 바글바글 끓는다. 여름이 가고 가을이 왔다는 걸 비로소 실감하게 된다는 추분까지 지났으니 분명 지금은 가을이다. 하늘 향한 그리움에 눈이 맑아지고. 사람 향한 그리움에 마음이 한층 깊어진다. 바다도 저 홀로 한층 깊어져 있다. 햇살이 매우 투명한 날은 기분까지 투명해진다. 일터를 옮긴지 한 달여가 되었어도 아직 얼빵하다. 여유시간을 내기란 어렵다. 청사에 들어오면 그 시간 안에 갇혀서 시간 밖을 꿈꾸지 못한다. 점심시간만이라도 시간 밖으로 탈출하는 노력을 아끼지 않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가을 물은 넘치지 않고 제일 맑고 달다
새로운 일터에서 보낸 지 십여 일이 됐다. 어찌어찌 지나갔다. 십여 년 전 대전으로 출퇴근하던 그 시절을 떠 올리며 이정도 쯤이야 했는데, 예전 같지 않고 그게 쉽질 않다. 집에서 멀어진 일터 덕분으로 동틀 때의 고요함. 초가을 새벽공기가 전해주는 상쾌함. 그동안 맛볼 수 없었던 호사를 누리고 있다. 덤으로 오가는 길에는 몰라보게 높아진 하늘. 하루하루 다른 빛으로 열리고 있는 풍경. 무성히 익어가는 게 있고 열렬히 짙어가는 것들이 있다. 계절은 적어도 지금 우리가 어디에 와 있는지를. 어디에 살고 있는지를 조금 많이 알게 해준다. 숨겨놓은 긴장이 가져다주는 멀미까지도 한동안 즐겨 보려 한다. 다른 때보다 일주일 여 빠르게 발표했던 인사 덕분으로 그동안 주변은 물론, 차곡차곡 마음 정리를 해 오긴 했었
출근길이 천근만근 무거울 때가 있다. 그런 날의 퇴근길은 더 말할 것도 없다. 더불어 인생도 무거워진다. 가끔 생각한다. 출근길 퇴근길이 매일 매일 다른 여행이라 생각한다면, 훨씬 덜 지치고 설렘과 행복으로 가득 차오를 텐데. 그런데 그게 어디 생각처럼 되느냐 말이지. 그래서 짧은 기간일지라도 힐링 할 수 있는 휴가가 필요하다. 그게 별거 아닌 것 같아도 때때 삶에 힘을 주니까 말이다. 30도가 훨씬 넘는 무더위가 이어지니 하루 빨리 어디론가 떠나지 않으면 안 될 같은 조바심이 일었다. 어느 날은 지친 영혼마저 바꾸고 싶어졌다. 이렇게 다른 영혼으로 건너가고 싶을 때 나는 무조건 여행을 떠나야 한다. 그런데 사정이 여의치 않아 그 시기가 조금 늦춰졌다. 조금만 참자. 그러면 시간이 내게 온다. 그렇게
며칠 전 퇴근하여 남편과 걷기를 했다. 장마철 무더위로 지쳐 있던 터라 그냥 눕고만 싶었다. 억지 춘향으로 끌려가다시피 했는데, 막상 걸으니까 좋았다. 모퉁이를 돌아 어느 지점에 이르니 노란 해바라기가 활짝 웃고 있었다.“아니 벌써 필 때가 됐나”혼잣말을 했는데“우리 학교 것도 벌써 피었다”며 남편은 즉시 대꾸를 했다. 꽃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새삼 황홀하다. 오른쪽으로 휜 나선과 왼쪽으로 휜 나선의 작은 꽃잎들이 얽히고 교차하면서도 절대 겹쳐지지 않는 순간들. 혼돈과 무질서 속에서 찬란한 아름다움이 그대로 읽혀졌다. 이글거리는 태양을 애타는 눈빛으로 바라보는 해바라기가 제 철을 만났다. 노란 해바라기 꽃은 태양신 아폴론을 사랑한 크리티의 불멸의 사랑을 떠올리게 한다. 도대체 그 사랑이 얼마나 뜨겁고 강
내가 근무하는 교육청은 규모가 작다. 관내 학교라야 고작 34교다. 여교장은 단지 7명뿐이다.‘남자교사 할당제’를 실시해야 한다는 말이 나올 만큼 여교사들이 많아지고 있다. 하지만 지역마다 여교장 수는 고작 20%정도이다. 그러고 보면 여성 관리직은 아직도 갈 길이 멀어 보인다. 최근, 김지철 충남교육감의‘교육발전 신 성장 동력은 여성’이라는 기고 글을 읽었다. 글의 취지에 완전 공감됐다. 불끈 힘도 솟았다. 여기서 여성 관리직 비율을 논하려는 것은 아닌데, 글 문을 여는 방향이 이상스레 흘러버렸다. 지난 주 어느 날. 여름방학도 다가오고 그동안 이모저모로 수고해 주신 관내 여교장님들과 간단한 점심자리를 하게 됐다. 너, 나 할 것 없이 바쁜 일상으로 오랜만에 갖는 자리였다. 생각해 보면, 가정생활,
어느새 칠월도 중순이다. 이미 여름은 절정이다. 사나운 태풍을 얹은 장맛비가 세차게 지나갔다. 이렇게 몇 차례 지나고 나면, 금빛 햇빛이 도처에 타오르겠지. 청포도는 잎사귀 뒤에서 익어가고, 숲이 서늘한 녹색 그늘들을 기를 때 칠월은 행복과 무심사이로 그렇게 흘러갈 것이다. 무에 그리 바빴는지 한동안 책 한권을 완독하질 못했다. 벌써 일 년이 다 돼간다. 타라 브랙의 책장을 열기 시작한지도. 처음 책을 건네받았을 때‘멈추고 살피고 보듬고 껴안다’라는 부제에 더 끌려 금방 읽어낼 줄 알았다. 짬짬이 읽어 보겠다는 깜찍한 욕심으로 사무실 책상에 놓아 둔 것까지는 좋았다. 그러나 언제나 이일 저 일에 밀려나기 일쑤였다. 차일피일 미루다가 엊그제서야 드디어 읽기를 마쳤다. 한 권의 책을 이토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