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투논단] 자녀 특혜 채용의 악질적인 고용 세습

2023-06-04     김태선
김헌태논설고문


요즘 선거관리위원회의 간부 자녀 특혜 채용 의혹 문제로 온 나라가 시끄럽다. 11명이 적발되어 4명을 경찰에 수사 의뢰했다고 한다. 감사원이 나서서 감사한다고 하니 헌법기관임을 들어 감사를 거부하는 사태도 빚고 있다. 대신에 권익위원회의 조사는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불법과 비리를 저질렀다면 당연히 조사가 아니라 수사 대상이다. 조사를 하자는 것은 그동안에 이번 사안 말고도 또 다른 사안이 복마전처럼 숨어 있는지를 살펴보고자 함이 분명하다. 공정한 선거관리를 표방하고 있는 선관위가 채용 비리를 저질렀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경악스러운 일이다. 누구보다 모범을 보이고 국민 앞에 가장 떳떳하고 당당해야 하는 기관이 아전인수격 조문을 들어 마치 치외법권 지대에 사는 양 감사를 거부하는 행태를 보면서 많은 국민이 공분을 금치 못하고 있다. 이런 무소불위의 권력을 누가 부여했다는 말인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이런 사태가 발생하면 당연히 물러나야 할 중앙선거관리위원장마저 책임을 질 줄 모르고 사퇴를 거부하고 있다. 이 또한 기괴하다. 선거관리위원들이 모여서 위원회 회의하고 나서 감사원의 직무감찰 대상 기관이 아니라는 이유를 들어 감사를 거부하는 것은 분명 뒤가 구리다는 방증이 아닐 수 없다. 그렇지 않다면 당당히 수용해야 한다. 기존에도 감사 선례가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민주노총 산하 업체에서 고용 세습을 해왔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경악한 적이 있다. 대기업 자동차회사에서 고용 세습으로 많은 젊은 인재들의 문호를 불공정하게 가로막고 특혜를 누려왔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국민적 공분을 불러일으켰다. 부부가 스펙을 허위로 만들어 자기 딸을 대학에 부정 입학시킨 죄로 감옥살이하고 아직도 재판받는 사회 지도층도 있다. 이른바 ‘부모찬스’로서 상대적인 피해 학생이 발생한 것은 당연하다. 악질적인 행각이 아닐 수 없다. 입시나 취업이나 모두가 정정당당하게 경쟁을 치러 우열을 가려야 한다. 이런 식의 불공정 경쟁은 건강한 사회발전의 암적 행위로서 척결해야 마땅한 것이다. 마찬가지로 선거관리위원회 고위직의 자녀라는 이유로 합격점을 주기 위해 면접 점수에 만점을 남발한 면접위원은 특혜 채용의 공동정범임을 직시해야 한다. ‘아빠찬스’로 채용된 이들은 부끄러워야 한다. 선관위의 자녀 특혜 채용의혹 문제는 그동안 관행처럼 악순환을 거듭해 온 것이 아닌지 살펴봐야 한다. 선관위가 감사를 거부하는 이유에도 관행이라는 점을 강조했기 때문이다. ‘아빠찬스’와 ‘부모찬스’로 우리 사회의 경쟁 구도를 무너뜨리는 세력들은 선량한 응시자들에게 피해를 준 가해 행위로서 이것이야말로 공공의 적이다. 사무총장과 차장이 그만둘 정도의 사안이라고 한다면 이는 보통 사안이 아님을 말해주고 있다.

그동안에도 대한민국은 ‘끗발 공화국’이라는 말로 기득권 세력들의 음성적인 행각이 비아냥거림을 받아왔다. 알게 모르게 보이지 않는 손들이 작동하는 사회 전반에 걸친 부조리에 힘없이 당하는 자들의 아픔을 담고 있다. 어찌 된 영문인지 구석구석에 이런 비리가 잠재해 인사청탁이 난무하고 인사 비리가 암암리에 저질러지는 것을 보게 된다. 인사원칙은 뒷전이고 정치권에 줄을 어떻게 잘 서고 기관장에 잘 보여야 하는지 교묘하게 머리 굴리는 공직자들이 승승장구하는 경우를 지방자치 시대에 너무나 많이 보게 된다. 심지어 인사를 위한 뒷돈 거래로 패가망신하고 옷을 벗는 단체장들마저 심심찮게 보아왔다. 아마도 광역단체건 기초단체건 간에 선거캠프 출신들이 줄줄이 요직에 낙하산으로 내려앉아 있는 것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기존에도 시장이 바뀌면서 ‘네 사람 내 사람’을 따지면서 이를 찾아내어 인사 불이익을 주던 광역자치단체도 있었다. 자치단체의 산하 공기업 단체장을 보면 선거 관련 논공행상의 전형을 쉽게 접할 수 있다. 자치단체의 선출직 기관장들의 눈치를 보는 공무원 사회의 풍토를 보면 앞으로도 무슨 일이 벌어질지 늘 개봉박두의 예고편을 보는 듯하다. 선관위의 간부 자녀 특혜 채용 의혹도 이런 끗발 관행이 불러온 참사 중의 참사라는 지적이 거세다.

선거관리위원회는 그야말로 선거를 공정하게 중립적으로 잘 관리하라는 기관이다. 이게 무슨 권력기관으로 알고 있다는 착각 중의 착각이다. 하기야 불법 선거를 고발하고 금배지도 날려버리는 기관이니까 무슨 사정기관인 양 착각할 수도 있기는 하다. 그렇다고 남의 불법을 정죄하고 자신의 죄는 관대하여지라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만큼 더 높은 도덕성과 청렴성이 요구되는 것이다. 누구보다도 공정 의식이 몸에 배고 철저해야 한다. 특히 선거관리위원회의 문제는 최종 책임자인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이 수장으로서 모든 책임을 짊어져야 하는 막중한 자리다. 대법관이라는 직책을 겸하고 있다면 더욱 그 책임 무겁다. 법을 다루면서 죄를 묻는 사람이 책임감이 없다면 이율배반의 모순이 아닐 수 없다.

헌법정신의 모든 기본은 치외법권을 말하고 있지 않다. 2019년에는 전 대법원장도 사법행정권 남용이란 이유로 감옥에 갔다. 대한민국이라는 나라 안에서 선거관리위원회만 헌법에 모든 행위를 용인한다는 조항이 들어있지도 않고 있을 수도 없다. 헌법을 들먹이는 선관위는 헌법을 다시 들여다보아야 한다. 헌법 제2장 국민의 권리와 의무 제11조 ‘①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누구든지 성별ㆍ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ㆍ경제적ㆍ사회적ㆍ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 ②사회적 특수계급의 제도는 인정되지 아니하며, 어떠한 형태로도 이를 창설할 수 없다.’ 이렇게 분명히 명시되어 있다. 사회적 특수계급이 선관위일 수 없는 것이다. 법 앞에 평등하므로 공직자의 책임이 수반되며 공적 기관으로서의 사명감이 막중하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이번 사태를 바라보면서 선관위의 감사원 감사거부 행위에 우려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헌법기관임을 들어 감사원 감사를 거부하고 있지만 이보다 앞서 처음부터 이런 행각을 자행하지 않았어야 한다. 감사원 감사의 사례도 이미 있다. 감사원은 지난 2016년 인사 업무부당 처리 공무원 징계 요구와 2019년 경력경쟁 채용 점수 과다 산정의 직무상 책임을 물어 징계를 요구한 적이 있다는 것이다. 황당한 면접 채점표와 함께 특혜채용 의혹이 드러나 만천하에 공개되었는데도 자체적으로 조사나 감사를 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그동안 선관위의 위원회 회의를 바라보면서 이런 무책임한 회의가 있나 싶을 정도의 후안무치 모습을 보았다. 책임회피의 수준이 도를 넘었다. 군에서도 사병이 문제를 일으키면 지휘관이 책임을 진다. 자식이 잘못하면 부모가 나서서 사과하며 용서를 빈다. 11명 중 4명만 수사를 의뢰하고 나머지는 어떻게 한다는 것인지도 납득할 수 없다. 누구 맘대로 이런 재단을 하고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지금 드러난 것이 빙산의 일각이라고 한다면 더욱 철저한 감사와 수사가 수반되어야 하는 문제다.

기득권에 안주하는 선관위의 모습을 보면서 선관위의 적폐가 뿌리 깊게 자리하고 있지 않나 하는 의구심마저 들고 있다. 중앙선관위원장을 비롯해 위원 모두가 사퇴하고 차제에 선관위를 새롭게 개혁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거세지고 있다. 관행을 이유로 감사를 거부하는 것은 헌법정신이 아니다. 구린내가 많다는 것에 불과하다. 눈 가리고 아웅하며 구렁이 담 넘어가려는 행태가 역겹기 그지없다. 헌법정신은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고 치외법권이나 사회적 특수계층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끗발 공화국’의 전형처럼 자녀 특혜 채용 의혹으로 고용 세습의 중심에 서 있는 선관위의 감사거부행위야말로 반면교사로 삼아 일벌백계로 다스려야 한다. 감사원의 감사를 거부한다면 대통령이 나서야 한다. 채용 기회를 박탈당한 수많은 젊은 인재들의 억울함과 대다수 성실한 선관위 종사자들의 명예를 위해서도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