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홍석 국립대전현충원 주무관

작열하는 태양 아래서, 연분홍 꽃을 아름드리 피우는 나무가 있다. 국립대전현충원 현충관 앞에는 손님을 맞이하듯 오래된 백일홍 나무 2그루가 웅장하게 서 있다. 백일홍은 백일동안 피는 꽃이라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지만 한 송이가 백일동안 계속 피어 있는 것이 아니라 한송씩 꽃이 피고 지고를 백일동안 반복한다.

백일홍은 어릴 때 껍질이 있지만 성장하면서 모두 벗어버리게 된다. 즉 껍질이 없기에 겉과 속이 같아서 청렴의 상징이 되었다. 옛날에 선비들이 서원과 서당 또는 집안 가운데 심고 나무를 보면서 관직에 나가서도 한결같이 개인의 영달을 멀리하고 청렴하게 살아가겠다고 다짐하곤 했다.

또한 절에도 백일홍이 심어져 있는데 스님들이 한마음으로 수양하여 세속의 번뇌망상을 모두 벗어버리고 해탈을 향한 깨달음을 얻기를 다짐하는 나무였다. 암자 한가운데 백일홍이 피어 있으면 분홍색 빛으로 마당 한가득 채우고도 남을 정도로 눈부시다. 백일동안 분홍빛으로 마당이 가득하다고 하여 만당홍이라고도 불렸다.

백일홍의 꽃말은 ‘멀리 떠난 벗을 그리워한다.’이다. 그래서인지 국립대전현충원의 곳곳에 피고 지는 백일홍을 보고 있노라면 암울했던 일제 강점기 잃어버린 국가를 그리워하면서 광복을 위해 온몸을 불살랐던 애국지사들의 끝없는 애국혼이 느껴진다. 수많은 고초 앞에서도 굽히지 않고 독립운동을 했던 분들의 붉은 열망이 꽃으로 피어나는 것 같다.

또한 청렴하면 떠오르는 것은 조선시대 백비가 있다. 백비는 아무 비문이 없는 비석을 일컫는다. 3대 청백리로 알려진 박수량 선생의 비석이 비문이 없는 백비이다. 백비가 된 이유는 선생이 돌아가신 후, 장례를 지낼 비용조차 없다는 소리에 명종은 “비문을 새기는 게 누가 될 수 있으니 비문 없이 비석을 세우라”고 했기 때문이다.

박수량 선생의 공직생활은 매우 궁핍했다. 30여년의 공직생활 동안 두루 주요 요직을 거쳤고 가는 곳마다 치적을 쌓아서 백성들의 칭송이 자자했다. 그렇게 꼿꼿하게 청렴함을 유지하였기에 허름한 집 한 채 없이 남의 집을 빌려서 살았다. 선생은 평소에 후손들에게 “임금의 후한 은총으로 판서 벼슬까지 올랐으니 그 영화는 과분하다. 그러니 내가 죽은 후 시호도 주청하지 말고 묘 앞에 비석도 세우지 말라.”고 말씀하셨다.

바쁜 오늘을 사는 우리들이지만 공직자부터 국민에 이르기까지 박수량 선생의 백비를 가슴에 품고 청렴을 실천한다면 대한민국의 밝은 미래가 백일홍처럼 피고 또 피어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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