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선 충남도의회 의장

최근 군인들의 밥상에 대한 사회적 논란이 일고 있다. 휴가 복귀 후 자가격리에 들어간 병사가 페이스북에 올린 식단이 논란의 시작이었다. 그가 올린 도시락은 형편이 없었다. 일회용 플라스틱 도시락에 밥과 오이무침, 닭볶음이 부실하게 담겨 있었다.

이 사진이 올라오자 인터넷 누리꾼들은 격분을 터뜨렸다. 군대 식사 교도소 수감자보다 못하다며 분개하는 이도 있었다. 혹자는 국방의 의무로 청춘을 희생하는데, 먹을 것까지 희생당하고 싶지 않다고 항변하기도 했다.

군대에 자녀를 보낸 부모들도 마음이 편치 않다. 애지중지 아껴온 아들을 군대에 보내는 것도 서러운 일인데, 식사까지 형편없다면 참으로 속상할 수밖에 없다. 밥을 둘러싸고 우리 사회가 이처럼 감정적인 반응을 보인 것은 어쩌면 당연한 현상일지 모른다.

밥은 개인의 생을 유지하는 중요한 방법이자, 사회에서 공동체의 범주를 결정하는 원초적 수단이기 때문이다. 사회의 가장 기초적인 단위를 식구로 명한 것은 밥이 주는 그 나름의 원리를 보여준다. 식구라는 말의 의미는 깊다. 식구(食口)는 끼니를 함께 하는 사람을 뜻한다. 인류에게 먹는다는 행위는 너와 함께 살아가겠다는 의지와 동의어다.

신뢰와 우정, 그리고 사랑의 관계는 식탁에서 고스란히 드러난다. 생물학적으로 밥을 함께 한다는 것은 전염병의 위험을 기꺼이 함께 감내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심리학적으로 몸이 열리면 마음도 열리게 된다. 행동심리학에서는 식사는 사람을 무장해제 시킨다고 말한다. 같이 음식을 먹는 사람끼리는 동질성과 친밀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이렇듯 몸은 관계의 시작이자 전부다. 프랑스 몸 철학을 대표하는 메를로 퐁티는 “마음은 몸과 무관하게 움직일 수 없다”고 주장했다. 몸이 열리면 마음이 열린다는 게 퐁티의 설명이다. 입을 열고 밥을 목 너머로 넘기는 일은 함께하는 존재를 기꺼이 내 속으로 받아들겠다는 의례 행위라 하겠다.

그래서 식탁은 온갖 종류의 마음이 오가는 관계의 장이다. 정갈하게 차려진 밥상을 통해 우리는 사랑과 우정과 환대의 마음을 확인한다. 새벽 일찍 어머니가 차려낸 밥상 속에 우리는 모성을 배운다. 사랑하는 연인을 위해 분위기 있는 맛집을 찾는 일은 기쁨이다. 건강이 듬뿍 담긴 밥집을 우연히 발견할 때 돌아가신 아버님이 떠오르는 서글픔 또한, 밥이 가진 마음의 힘이라 하겠다.

타인에 대한 존중과 사랑은 식탁으로부터 나오기 마련이다. 공동체를 위해 헌신하는 이들에게 우리가 존경을 보내지 못할 이유가 없다. 얼마 전 미국인이 가장 존경하는 직업 중 하나는 군인이라는 언론 보도를 접했다. 실제로 군인에 대한 미국인들의 존경심은 유명하다. 비행기 탑승 시 프리보딩(우선 탑승) 서비스를 받으며 승객들은 박수로 감사함을 표시하기도 한다. 식당에서 군인의 식사비를 대신 지불해 주는 일도 흔하다. 시민들이 ‘당신의 노고에 감사한다’고 인사하면, 군인은 ‘당신의 지지에 감사하다’고 화답한다. 공공을 위해 헌신하는 이들을 존경하는 사회적 윤리가 미국을 선진국으로 이끄는 힘이 아닐까 생각한다.

밥은 공동체가 관계하는 의례와 관습의 현장이며, 타인과 마음을 엮어내는 역동적인 만남의 장이다. 모든 이들의 밥상이 정갈하고 건강하며, 풍성해질수록 서로에 대한 존경과 사랑, 우정과 연대는 더욱 풍족해질 것이 틀림없다. 군인 밥상에 대한 논란 속에서 선진 사회로 넘어가는 지혜가 발견되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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