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시 서구 도안동에 내려오는 이야기입니다. 옛날 김진사라고 하는 부잣집에 3대독자 외아들과 결혼한 며느리가 있었습니다. 손이 귀한 집이라 남편 건강을 위해 무척 애를 썼습니다. 하지만 하늘도 무심하게 남편을 일찍 데려갔습니다. 며느리는 청상과부가 되었습니다. 이른 나이에 과부가 되었지만, 다시 시집갈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시아버지께서 홀로 사는 며느리에게 금덩어리 하나를 주면서 밤새 길을 가다가 날이 새면 제일 먼저 만나는 사람과 함께 살라고 말했습니다. 개가하라는 시아버지의 배려였습니다.

며느리는 시아버지 말대로 밤새 길을 갔습니다. 한 30리쯤 걸었을 때 어떤 남자를 만났습니다. 남자는 부인을 잃고 두 딸과 함께 살고 있었습니다. 며느리는 시아버지 말대로 그 남자와 재혼을 약속하였습니다.

그런데 며느리는 재혼 약속을 하면서 남자에게 조건을 걸었습니다. 남자의 딸을 먼저 시집보낼 것을 조건으로 내세운 것입니다. 남자가 조건을 들어주자 며느리는 지금 살고 있는 집이 너무 초라하니 큰집으로 이사하자며 갖고 온 금덩어리를 내어주었습니다. 이런 환경에선 딸을 시집보내기 어렵기 때문이었습니다.

큰 집으로 이사한 남자는 며느리에게 이제 어떤 사람을 사위로 맞을까를 질문하였습니다. 그러자 며느리는 여기서 약 30리쯤 가면 김진사라는 70넘은 노인이 있는데, 그 노인에게 딸을 보내라는 것이었습니다. 노인은 매우 부자이기 때문에 노인이 죽는다 하더라도 딸에게 그리 나쁘지는 않을 것이라는 얘기도 전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김진사는 젊은 여인과 새살림을 차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혼인날이 되어 김진사는 장인어른 댁에 가서 인사를 드리는데, 장모가 바로 자신의 며느리인 것을 알고는 깜짝 놀랐습니다. 혼인 잔치가 끝나고 며느리이자 장모가 신부집 후객으로 김진사를 따라가게 되었습니다. 혼례를 치르고 나서 시댁으로 가는 것을 우귀(于歸)라 하는데, 지방에 따라서 당일우귀, 삼일우귀가 있다. 시댁으로 갈 때에는 신부가 앞서고 뒤 따라가는 사람도 있는데, 이를 후객이라 한다.

며느리는 자신이 결혼해서 살던 시댁에 도착하자 예전 자기 방으로 들어가 소복으로 갈아입고 출입하지 않았습니다. 이를 이상하게 여긴 김진사가 장모가 된 며느리에게 사연을 묻자 다음과 같이 대답했습니다.

“제가 처음부터 아버님 새장가 가도록 일을 꾸몄습니다. 남편이 죽었다고 해서 어찌 두 번 시집갈 수 있겠습니까? 저는 아버님 모시고 살고 싶습니다. 다시는 나가라고 말씀하지 마십시오. 밤새 길가다가 만난 남자는 이미 돈을 넉넉히 주었으니 얼마든지 다른 사람에게 장가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와 비슷한 내용을 담은 편지를 남자에게도 보냈습니다. 이후로 김진사는 새 부인과 더불어 아들 딸 삼남매를 낳았고, 장모가 될 뻔했던 며느리는 아이들을 키워주었고, 아이들이 장성하자 장가도 보내주었다고 합니다.

(글= 한국효문화진흥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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