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 유성은 지정학적으로 충청도이면서 경상, 전라도가 만나 한양으로 가는 길목입니다. 특히 방동이 그에 해당하는데 삿갓집이라는 주막은 경상, 전라, 충청 3도 사람이 만나는 곳으로 유명했습니다.

조선 세조 때 벼슬을 한 가문에서 각기 태어난 세 도령이 자라서 한양으로 과거를 보러 가게 되었습니다. 세 도령이 바로 여기 방동 삿갓집에서 만나게 된 배경입니다.

경상도 남쪽 지방에 사는 선비는 할아버지가 이번에 과거를 보러 가는데 꼭 계룡산에 들렀다가 한양으로 올라가라고 당부 하셨습니다. 그래서 경상도 선비는 일찍이 집을 나와 계룡산에 올랐다가 삿갓집에 들어섰습니다.

전라도 선비는 말을 몰고 빨리 달려와서는 하인에게 말을 맡기고는 불쑥 삿갓집으로 들어섰습니다.

이어서 충청도 은진에 산다는 선비는 쉬엄쉬엄 느릿느릿 여유 있게 주막으로 들어섰습니다.

그들은 주모가 안내하는 대로 각기 술상을 받아놓고 앉아 있다가 어떻게 겸상을 하게 되었습니다. 우연히 한자리에서 만난 3도 선비는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꽃으로 시간가는 줄 몰랐습니다. 특히 조카를 몰아내고 왕위에 오른 세조에 대한 이야기가 가장 흥을 돋우었습니다. 세조의 왕위 찬탈에 대한 찬반양론으로 열띤 토론을 하면서 세 선비는 친분을 두터이 하였습니다.

그리고는 “우리 모두 이번 과거 시험에 합격을 하십시다. 그리고 오늘 여기 이 자리에서 만난 것은 비록 우연이지만, 하늘이 준 만남이니 이 정분을 앞으로 누가 큰 벼슬을 하든지 간에 꼭 지켜나가도록 하십시다.” 하고 축배를 들고는 즐겁게 하루 밤을 지새웠습니다.

삿갓집에서 우연히 만났던 그들은 그 뒤 과거시험에 모두 합격하였고, 벼슬살이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충청도 선비는 십년을 채 넘기도 전에 벼슬을 그만 두고 낙향하였고, 경상도 선비는 외직으로 나갔다가 몇 해 안 되어 그만 두고 은거하였습니다.

하루는 순찰사 벼슬을 하고 있던 전라도 선비가 언뜻 삿갓집 생각을 하며 전에 만났던 경상도 선비와 충청도 선비들이 보고 싶어졌습니다. 수소문을 해 보았지만, 그들의 종적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결국 찾지 못하고 고향 전라도로 행차하기 위해 남쪽으로 내려가다가 삿갓집 근처에서 수레를 멈추고는, 삿갓집 사립문 쪽을 바라보았습니다. 거기에는 전에 본 듯한 두 사람이 서 있었습니다. 그는 수레에서 내려 바삐 문 쪽으로 뛰어가서는 그들 손을 힘껏 잡아당겼습니다.

“여보게, 노형들, 그래 어디에 숨어 있었소이까? 한참 찾았습니다.”하고 그들을 바라보자 경상도 선비가 “며칠 전에야 순찰사 대감께서 저희들을 찾는다는 소식을 접할 수 있었소이다. 자, 들어가십시다.” 그들은 삿갓집에서 십여 년 전에 만났던 방을 치우게 하고는 밤새도록 술을 마시며 그간의 사연을 풀어 놓았습니다.

순찰사가 “그래, 두 분께서는 다시 벼슬길에 들어서실 마음은 없으신지요? 제가 미약하나마 힘이 되어 드릴까요?”하고는 그들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때 충청도 선비가 말을 받았습니다. “선비가 벼슬길에 나갈 수도 있고 안 나갈 수도 있소. 우리 이 집에서는 그런 이야기는 하지 맙시다. 하하하.”

이에 경상도 선비는 “이제 벼슬을 그만 두고 나니 더 이상 벼슬할 생각이 없소이다. 자...잔을 드시오.”라고 말하며 술을 권했습니다.

그들은 하룻밤을 지새우고 다음날 뿔뿔이 헤어졌습니다. 그 후 임금이 승하하자, 경상도 선비는 다시 관직에 올라 참판이 되었고, 충청도 선비는 관찰사가 되었습니다. 반면 전라도 선비는 관직에서 물러나 한양에서 몇 해를 더 지내다가 낙향하게 되었습니다. 삿갓집에 들러서 술이나 한 잔 해야겠다고 들어서는데 텅 빈 주막에 두 선비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전라도 선비를 알아보고는 뛰어나오며 반가운 해후를 하였습니다.

“대감, 낙향하시려면 소식을 전해 주셔야지, 벌써 약속을 잊으셨소이까, 하하하.”

“아니, 어떻게 알고 오셨소이까? 대감들 수레도 나졸들도 보이지 않습니다.”

“그야 말 한 필이면 족하지요. 대감이 한양을 떠난 다음날 날을 재촉해서 왔소이다. 자...잔을...”

이렇게 다시 만난 그들은 밤을 새워가며 술잔을 기울였습니다. 그리고 각기 낙향하여 어렵게 산다는 전라도 선비를 죽을 때까지 보살펴 주었다고 전합니다.

삿갓집에서 단 세 번 만나고는 서로가 벼슬길에서 밀려나와 어려운 일이 있을 때는 도와주면서 세상 떠날 때까지 우정과 의리를 지켰다고 합니다. 이후로 삿갓집은 의리를 맺은 장소라 하여 ‘삼남 위인의 집’, ‘삼남 삿갓집’이라 부른다고 합니다. 중국에 ‘도원결의(桃園結義)’가 있다면, 조선에는 바로 여기 삼도 선비가 만나 의를 다진 ‘삿갓집 결의’가 있다고 할 것입니다.

(글= 한국효문화진흥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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