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후로 총각은 자신과 가족의 위험을 무릅쓰고 도와준 처녀가 자꾸 머릿속에 생각났습니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처녀가 황홀하리만큼 아름답게 느껴졌습니다. 이런 생각을 하며 바위에서 마을로 내려가며 나무 사이로 언뜻 보이는 처녀의 집 뜰 안쪽을 살펴보았습니다. 하지만 처녀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다음 날 아침 일찍 여장을 차리고는 한양으로 향했습니다. 한양 근처로 갈수록 그를 잡으라는 방문이 곳곳에 붙어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평택 근처 주막에서는 이상한 소리도 들었습니다. 자신을 두고 생사를 추측하는 소리였습니다.

한양으로 가는 것이 위험하다고 생각한 총각은 금강산으로 향했습니다. 금강산에 들어간 그는 산막을 짓고 나무꾼이 되어 주변 아이들과 함께 나무를 해서 장터에 내다 팔면서 목숨을 유지해 갔습니다.

금강산에 들어온 지도 5년이란 시간이 흘렀습니다. 어느 날 나무를 한 보따리 해 가지고 장터에 나갔다가 깜짝 놀랄 소식을 접했습니다. 세상이 바뀌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입니다. 6년 전 당파싸움에서 이긴 대감들이 쫓겨나고 옛날의 대감들이 다시 조정에 들어섰다는 소식이었습니다.

총각은 소식을 듣자마자 한양으로 달려갔습니다. 부친과 뜻을 같이 했다가 유배되었던 조대감의 행차도 목격하였습니다. 오래 전 자신을 아껴주던 조대감님을 부르고 싶었지만, 아직은 혹시나 하는 생각에서 부르지는 않았습니다. 대신 총각의 발길은 자신도 모르게 충청도 쪽으로 향했습니다. 처녀가 있는 부엉바위 아래 마을을 찾기 위해서였습니다.

유성 부엉바위 아랫마을에 도착한 총각은 제일 먼저 처녀의 집을 찾았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대문은 부서져 있고, 사람의 인기척이 전혀 나지 않았습니다. 총각은 동네 사람들에게 그간의 사유를 물어보았습니다.

한양에서 금부도사가 내려와 역적의 집안이라며 집안을 이렇게 박살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마님과 따님은 극약을 마시고 자살했다는 얘기도 전했습니다. 순간 충격 받은 총각은 잠시 넋 나간 사람처럼 서 있다가, 가매장한 모녀의 산소를 찾아가서는 예를 표했습니다. 그리고 이듬해 과거에 급제하고 다시 내려와 모녀의 묘를 부엉바위 아래로 이장하였습니다.

그는 벼슬길에 들어선 이후 승승장구하였습니다. 도승지, 대사헌, 판서에 올랐고, 그러는 동안 일 년에 한 번씩은 반드시 모녀가 죽은 날 사람을 보내어 묘를 살피고 제사를 지냈습니다. 벼슬을 마치고 기로소 기로소(耆老所): 조선시대 태조이후로 퇴임한 관리들의 예우를 위해 설치한 기구. 임금도 연로하면 참여해 여기에 이름을 올림. 태조, 숙종, 영조가 해당함. 왕이 국가 원로들에게 자문을 구할 때 기로소를 찾았음.
에 들어갔다가 70이 넘어 세상을 떠나면서 부엉바위 아래 묻어 달라 유언하였습니다.

김 판서의 무덤을 쓰던 날 부엉바위에는 어디에서 날아왔는지 부엉이 수놈과 암놈이 찾아 들었다고 합니다. 그 후부터 부엉바위에 둥지를 튼 부엉이 암수는 아랫마을 느티나무까지 날아다니며 운다고 하였는데, 느티나무 근처 대밭은 옛날 김판서가 총각 때 난을 피해 내려왔다가 처녀를 만났던 자리입니다.

숫 부엉이가 길게 부ㅡ엉 부ㅡ엉하고 울면, 암 부엉이는 짧게 부엉부엉 하고 운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죽은 김판서와 처녀가 부엉이가 되어서 부엉바위에 둥지를 틀고 대밭 근처 느티나무까지 날아와서 사랑을 속삭이는 것이라고 합니다.

또 부엉이 한 쌍이 마을을 지켜주며 무사태평을 가져다준다고 해서 그 둥지가 있던 부엉바위에 제사지내며 신앙의 대상으로 삼았다고 합니다.

(글= 한국효문화진흥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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