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성구 금탄동에는 약 200미터 높이 되는 매방산이 있습니다. 이곳은 옛날부터 명당이 있다고 해서 지관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입니다.

바로 여기에 역적으로 몰려 피난 온 선비가 한 사람 있었습니다. 원래 선비가 유배된 땅은 충청도 홍주[홍성]의 결성이란 곳이었는데 나중에 매방산으로 옮겨온 것입니다.

선비는 원래 욕심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집안이 가난해도 욕심이 없다 보니 가난하게 살 수밖에 없었습니다. 유배지에도 값나가는 물건이라곤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래도 책 읽는 것만은 하루도 거르지 않았습니다.

유배생활 삼년 째 되는 어느 날 심심하고 답답하여 큰 먹돌 하나를 구하여 작은 돌멩이로 갈아서 벼루 만드는 일을 시작하였습니다. 그런 가운데 가족에 대한 그리움도 자꾸 커져만 갔습니다.

하루는 꿈속에서 딸아이가 재롱을 떨고 아내가 앉아서 웃고 있었습니다. 꿈에서 깨어난 선비는 꿈이 혹 불길한 꿈이 아닐까 생각하였습니다. 그런데 꿈을 꾼 다음 날 아침 누군가 사립문 앞에서 서성거리는 인기척 소리가 났습니다. 방문을 열고 나가 보았더니 거기에는 뜻밖에도 자기 딸아이가 초라한 행색으로 서성거리고 있었습니다.

선비는 너무 반가워서 딸을 데리고 방안으로 들어가려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딸은 오히려 자기에게 따라 오라는 것이었습니다. 유배지에서는 관의 허락 없이 다른 지역으로 가는 것은 위법이었습니다. 한 발자국도 떠날 수 없었지만, 딸의 행동이 너무도 이상하여 선비는 딸이 가는 곳으로 따라갔습니다.

딸은 어느 깊숙한 산중으로 선비를 안내해서 들어갔습니다. 산속 길로 한참을 가다가 딸은 가쁜 숨을 내쉬며 가슴에 감추어 갖고 온 쪽지 하나를 선비에게 내밀었습니다.

어느 날 나이 많은 한 노승이 자기의 집에 들러서 아버지에게 전하라고 하면서 써준 쪽지라 하였습니다. 선비는 딸아이가 준 쪽지를 살펴보니 ‘공주매방산’이라는 다섯 글자가 쓰여 있었습니다. 노승이 이 쪽지를 주면서 “너는 그곳을 찾아가서 아버지를 도우라.”고 말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러고는 어서 그 곳을 찾아가자고 선비를 졸라댔습니다. 아버지가 여기에 오래 계시면 틀림없이 큰 화를 입을지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때 선비는 자기가 거처했던 집 근처를 살펴보았습니다. 이미 관아에서 포졸들이 떼를 지어 들어와서 집을 뒤지고 있었습니다. 선비는 그 길로 딸을 따라서 도망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노승이 적어준 매방산에 들어온 선비는 대나무 숲에 뗏 집을 짓고 살았습니다. 딸이 밖에 나가 동냥하여 온 것을 가지고 근근이 하루하루를 지냈습니다. 비록 가난했어도 대밭이 무성한 것이 너무도 좋았습니다. 대나무는 선비들이 즐겨 그리는 그림이기도 하거니와 언제든 대나무로 붓을 만들어 쓸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선비는 지난번 홍주 결성 땅에서 만들었던 벼루 생각이 간절하였습니다. 이야기를 들은 딸은 당장 채비를 갖추고 결성 땅으로 갔습니다. 하지만 벼루를 들고 나오다가 딸은 그만 포졸들에게 붙잡혀 관가에 끌려가고 말았습니다. 딸은 모진 매를 맞으면서도 자기 아버지가 어디에 있는지 말하지 않았습니다. 심한 고문을 받던 딸은 그만 죽고 말았습니다.

매방산에 있던 아버지는 아무리 기다려도 딸이 돌아오지 않자 걱정이 되었습니다. 어느 날 꿈속에서 딸이 머리를 푼 채로 포졸들에게 모진 고문을 당하며 아버지 부르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잠결에 아버지도 딸의 이름을 간절히 부르다가 문득 잠에서 깨어났습니다.

다음 날 아침, 멀리에서 꽃가마가 다가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선비는 뗏집에서 얼굴만 내밀고 지켜보았습니다. 나졸들이 대밭을 따라 뗏집으로 걸어오더니 선비이름을 부르며 “대감! 대감!”하는 것이었습니다. 유배된 선비의 신분이 회복된 것입니다. 귀양살이도 해지되었고, 큰 벼슬도 내려졌습니다.

선비는 다시 벼슬살이를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죽은 딸을 생각하면 벼슬살이 하는 게 편치 않았습니다. 결국 선비는 벼슬을 그만두고 결성 땅으로 돌아와 죽은 딸의 넋을 위로하며 몸소 대나무 붓을 벗 삼아 지내다가 죽었습니다.

지금도 매방산에는 명당이 있고, 그 명당자리가 바로 선비의 뗏 집이 있던 자리라고 합니다. 이후로도 이 명당자리에 집을 지으면 크게 성공을 한다는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습니다.

(글·그림= 한국 효 문화진흥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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