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성구 신동 녹골에는 소문산이 있고, 그 위에 소문산성이 있습니다. 여기에 내려오는 이야기입니다.

옛날 이 산 아랫마을에 소씨와 문씨 성을 갖고 있는 사람이 살고 있었습니다. 두 사람은 모두 키가 크고 건장한 청년으로 부지런히 일도 잘하여 부모님은 물론 동네 어른들로부터 칭찬이 자자했습니다. 군에 입대해서도 함께 생활하면서 전보다 더욱 돈독한 사이가 되었습니다.

아쉬운 점은 소씨는 아버지만 계셔서 어머니의 일을 도맡아서 했고, 문씨는 어머니만 계셔서 아버지가 해야 할 일을 감당해야 했다는 점입니다.

어느 가을 날 소씨에게 중매가 들어왔습니다. 상대는 이웃 마을에 사는 이씨 집안의 아름다운 규수였습니다. 용모도 단정하고, 예절도 바르고, 일도 잘하는 처녀라고 소문이 난 색시였습니다. 소씨는 처녀의 됨됨이를 이미 잘 알고 있던 터라 중매쟁이에게 꼭 성사시켜 달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한편 문씨에게도 중매가 들어왔습니다. 중매쟁이는 달랐지만 신부감이 될 처녀는 역시 소씨와 혼인얘기가 오가던 이씨 집안의 처녀였습니다. 문씨도 역시 소문을 들어 이씨네 집 처녀가 아름답고 예절도 바른데다가 일도 잘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혼인이 꼭 이루어지게 해 달라고 중매쟁이에게 신신당부를 했습니다.

소씨와 문씨의 이런 부탁으로 각기 다른 양쪽 집 중매쟁이들은 혼인 성사를 위해 온갖 노력을 다했습니다. 소씨측 중매쟁이는 소씨 같은 총각이 없다고 했고, 문씨측 중매쟁이는 문씨 같은 신랑감이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중매 대상이 같은 처녀임을 알고는 서로 상대방을 비방하기 시작했습니다. 소씨측 중매쟁이는 “귀한 딸을 홀어미만 있는 집에 시집보내서 어떻게 하려고 그러느냐.”고 했고, 문씨측 중매쟁이는 “홀아비 밑에서 배운 것도 없는 집안에 귀한 딸을 시집보내서 어떻게 하려고 그러느냐.”며 서로를 비방했습니다.

와중에 이씨집 처녀는 소씨도 문씨도 아닌 최씨네 집으로 시집을 가고 말았습니다.

이런 일이 있은 뒤로부터 소씨네 집과 문씨네 집은 서로 상종도 하지 않는 원수지간이 되었습니다. 길거리에서 만나도 아는 척도 안했고, 집안간 어떠한 왕래도 하지 않았습니다.

한참 시간이 흘러 몇 대가 지나서 집안간 혼사 이야기가 나왔지만, 두 집 모두 똑같이 펄쩍 뛰었습니다. 초상이 나도 문상을 가는 법이 없었습니다. 그야말로 견원지간이 따로 없었습니다.

어른들이 이렇게 원수처럼 지내자 아이들도 덩달아 서로 멀리하고 살았습니다. 수대에 걸쳐 왕래를 끊고 살아오면서 화해의 조짐은 조금도 없었습니다.

그런 어느 해였습니다. 소씨 집안의 갑돌이와 문씨 집안의 갑순이가 부모들 몰래 사랑하는 사이가 되었습니다. 그들은 집안사람들 몰래 만나 결혼까지 약속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런 사실을 알게 된 양쪽 집안에서는 결사반대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양가 부모들은 그 자녀들의 문밖출입도 금하였습니다.

갑돌이와 갑순이는 각기 죽기를 각오하고 집안 식구들 몰래 빠져나와 뒷산으로 올라갔습니다. 옛 성터가 있는 산 정상에는 마침 둥근 보름달이 높이 떠 있었습니다. 둘은 달을 바라보며 하염없이 울다가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한탄하며 마침내 함께 죽기로 결심했습니다. 산 북쪽 아래에 흐르고 있는 강물에 몸을 던지기로 한 것입니다.

투신하기 전 두 사람은 자신이 만난 그 자리에 조그만 느티나무 한 그루를 심었습니다. 두 사람이 살아서 이루지 못한 사랑을 느티나무를 통해서 영원히 남기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그 자리에서 양가 부모들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양가 부모님들이 서로 화해하고 살거나 아니면 멀리 떠나 서로 원한을 잊고 살기를 바라는 편지였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쓴 편지를 금방 심은 느티나무에 매달아 놓았습니다. 그리고 둘은 손을 꼭 잡고 강물에 몸을 던졌습니다.

그런데 이런 일 이후에도 양가는 화해를 선택하지 않았고, 원한을 잊기 위해 먼 곳으로 떠났습니다. 소씨 집안사람들은 전라도 땅으로, 문씨 집안사람들은 경상도 땅으로 이사를 갔습니다. 그 뒤로 동네 사람들은 소씨와 문씨의 깊은 사랑을 생각하며 이 산을 소문산이라 불렀습니다. 지금도 소문산 꼭대기에는 약 200년쯤 되어 보이는 느티나무 한 그루가 서 있습니다. 갑돌이와 갑순이가 영원한 사랑을 약속하며 심어놓은 사랑의 나무입니다.

(글·그림= 한국효문화진흥원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