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헌태 논설고문

2019년이 이제 저물어 가고 있다. 영원히 돌아오지 않는 2019년이다. 우리는 한해를 마감하며 참으로 많은 회한을 가슴에 남기고 있다. 2019년 기해년 황금돼지 해라고 풍요와 풍성함을 소망했던 때가 바로 엊그제 같은데 벌써 해를 넘기는 시점에 서 있다. 세월이 유수 같다고 하던 옛말이 실감나는 요즘이다. 해마다 이맘 때 쯤 이면 늘 다사다난했던 한해를 보낸다는 말을 하게 된다. 회고하건데 2019년처럼 다사다난했던 때가 있을 까 싶다. 나라는 줄곧 전쟁과 평화의 사다리타기를 해 왔다. 평화의 한반도를 말하던 꿈같던 시간이 금방 지나고 수도 없이 쏘아대던 불상의 로켓들이 평화의 꿈을 앗아가 버렸다. 지금도 북미대화가 언제 있었느냐는 듯이 으르렁대는 모습이 마치 일촉즉발의 긴장감마저 흐르게 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금강산 시설물을 금방이라도 때려 부술 듯이 요란을 떠는 모습에서도 평화를 향한 길이 멀기만 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평화는 결코 구걸이 아님을 깨닫는 마음이 아쉬운 시점이다.

무엇보다 경제난은 국민들을 옥죄는 아픔이었다. 자영업자들이 쓰러지고 길거리에는 청년실업자들이 넘쳐나고 생활고를 견디다 못해 온 가족이 집단자살로 생을 마감하는 안타까운 모습이 12월까지도 이어졌다. 심지어 지난 7월 숨진 지 두 달이 지나 발견된 탈북민모자사망사건은 우리 사회에 충격을 안겨주었다. 복지사각지대에서 고통을 받는 사람들이 아직도 우리 사회에 버젓이 존재한다는 사실 앞에서 모두가 고개를 숙였다. 뒤늦게 법안을 발의하느니 뭐니 호들갑을 떨다가 이제는 시들해져 버렸다. 일가족 집단자살은 올 들어 계속되어 왔다, 사회안전망이 구멍이 뚫려도 뻥둟려 있음을 보게 된다. 송파 3모녀 자살사건이 충격을 주면서 무엇인가 달라지나 싶었는데도 올해 계속되는 일가족 자살사건이 대한민국 사회의 심각성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복지정책은 어디로 갔는지 참으로 고통의 사회이자 비극의 현주소이다. 심지어 유명 정치인과 유명연예인들의 자살마저 잇따라 안타까움을 더해주었다.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대구에서 일가족 4명이 생활고로 추정되는 집단자살사건이 발생했다. 이렇게 이어지는 집단 자살사건이 올 들어 서울, 화성, 시흥, 김포, 대전, 인천, 충북단양, 대구 등 모두 32번째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2019년의 일가족 자살일지를 들춰보면 우리 사회가 지금 어느 정도로 망가지고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길거리에는 노숙자들이 넘쳐나고 심지어 청년들조차 무료급식소를 찾아 이른 새벽부터 나서고 있다는 소식이 우리를 슬프게 한다. 소득주도성장이 무엇인지 국민들을 힘들게 하고 있다. 내년이 더욱 걱정이라고 한다. 생계형 가족들의 집단자살이 풍요로운 말장난을 비웃듯이 다반사로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 사회에 심각한 경각심을 던져주는 대목이다.

무엇이 우리 사회 우리 국민들을 이처럼 극단으로 몰고 가고 있는지를 냉철히 파악해야 한다. 이처럼 비극적으로 삶을 마감하는 일가족들의 극단적인 선택이 무엇 때문인지를 헤아리는 정치를 해야 하는데 이는 안중에도 없는 것 같다. 어느 누구 책임을 통감하는 정치인들이 눈에 보이질 않는다. 아픔을 같이 나누고자 하는 눈물이 보이질 않는다. 오로지 권력욕과 국회의원 자리에만 탐닉하는 정치권의 모습만 보인다. 누구를 위해 무엇 때문에 정치를 하고 국회의원을 하는지를 망각하고 있다. 국민들이 극단적인 선택으로 목숨을 끊고 있는데도 말이다. 그러니 나라마저 등지고 떠나는 이민자들이 급증하고 있는 것이다.

요즘 법치국가인 대한민국에 법마저 이현령비현령으로 적용되고 있다는 비난도 거세다.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는 헌법정신은 온데 간데 없고 교묘한 말장난으로 형평성을 저버리는 이상야릇한 일들이 자주 벌어지고 있다. 서민들은 교통법규 하나면 어겨도 10만원에 가까운 생돈을 물어대고 있는 판국인데도 위법이 드러나도 힘이 있는 자들에게는 솜방망이를 휘둘러 대니 이게 과연 올바른 사법정의를 구현하는 나라인지를 의심케 하고 있다. 언제부터 대한민국의 사법부가 이처럼 오락가락하는 이현령비현령의 법 적용을 해왔는지를 국민들은 묻고 있다. 법관의 양심과 법대로 해야 할 일들이 정의롭지 못하고 ‘가래 끓른 소리’로 들리는 이유는 무엇인지 스스로 통찰해야 한다는 지적이 거세다. 이제는 사법 불신까지 팽배해지고 있다. 이런 2019년을 보내왔다.

올해 우리 국민들은 비정상이 판을 치는 정치판을 목도했다. 국민을 앞세우며 대립과 반목을 부축이고 각종 부정부패의 연쇄 고리들이 구석구석에서 판을 치고 있는 것을 체감했다. 아직도 썩은 부패의 고리를 감추고 분칠을 하며 양두구육의 모습으로 버젓이 행세를 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 참으로 가증스럽기 짝이 없다. 요즘 일본에서도 수뢰혐의를 받는 의원이 체포되고 그 일련의 비리과정을 속보로 전하면서 대서특필하고 있다. 부패정치인은 일본이나 우리나라나 할 것 없이 모두가 사회악임이 틀림이 없다. 법을 어기면서도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갔다고 좋아할 일이 아니다. 언제나 들통이 나면 그 이상 개망신을 당한다는 역사적인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아직도 끝나지 않은 부패한 정치인들의 연결고리가 다 파헤쳐지지 않고 내년으로 넘어갈 공산이 크다. 2019년의 부패 수사는 종료가 아니라 진행형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2019년 한해를 마감하며 느끼는 것은 올 한 해 국민들의 고통지수가 매우 높았다는 사실이다. 광화문에서는 엄청난 인파가 모여 정치구호를 외쳐댔고 서초동 거리에서는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집회 모습도 보았다. 아침이 무서운 자영업자들은 삶이 너무나 버거웠다. 살기 위해 발버둥을 치는데도 적자에 허덕이며 눈물로 폐업을 해야 했다. 국민 불신의 단초를 제공하는 일부 언론들은 불의에 침묵하고 외면하고 호도하고 정치권력에 아부를 하며 정치시녀임을 자임해 왔다. 역대 이런 언론 시대는 없었다. 언론이 정치를 감시하고 비판하며 국민들에게 올바른 지향점을 제시해야 하는데도 정도언론의 길을 망각하며 아직도 매화타령만을 일삼고 있다. 이런 2019년의 언론의 모습도 역사의 심판을 면치 못할 것임을 국민들은 너무나 잘 알고 있다.

2019년의 대한민국은 평화를 외치면서도 늑대소년이 되고 소득주도성장을 외치면서도 생계형집단자살이 잇따르고 사법정의가 무너져 내리고 부패정치인들이 활보하고 권력에 아부하는 치졸한 언론행태가 판을 치고 경제가 추동력을 상실하고 저출산고령사회의 기형적 사회구조가 나라의 근간을 흔들어 왔다. 뭔가 나사가 빠진 형국이다. 곡예를 하는 나라처럼 보인다. 올해 대한민국은 나라 안팎으로 브랜드가치를 스스로 추락시킨 역대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참담한 한 해였음을 회고하게 된다. 그런 점에서 참으로 씁쓸한 한해로 모두가 뼈아픈 자성의 해로 삼았으면 한다. 해왕성 밖에서 보이저 2호가 보내온 사진에 창백하고 푸른 점인 지구 속 대한민국의 2019년은 모두가 참으로 힘든 한해였다. 부디 2020년은 달라지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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