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헌태 논설고문

2019년 12월이 가고 있다. 해마다 이 때쯤이면 다사다단했던 한해를 보내는 마음을 세월이라는 단어에 담아 회고하게 된다. 사건사고로 얼룩진 한해가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길을 가고 있다. 이 기억과 역사 속으로 남겨진 채 말이다. 한해에 세웠던 계획이 잘 성취되었는지 생각해보면 누구나 아쉬움을 토로하게 된다. 세월(歲月)이란 단어는 흘러가는 시간을 일컫는다. "가는 세월 가시로 막고 오는 백발 막대로 치렸더니 백발, 세월이 제 먼저 알고 지름길로 오고 가더라" 고려 말 선비가 세월의 빠름과 나이 듦의 속절없음을 한탄하며 썼다는 시조이지만 예나 지금이나 다름이 없다. ‘세월 앞에 장사가 없다’라는 노년의 자조 섞인 말도 인구에 회자된다.
그래서 그런지 시간은 금이라는 말이 생각난다. 미국 100달러 지폐 속 초상화의 주인공인 벤자민 프랭클린이 서점의 점원 시절에 한 말이다. “Time is money.(시간은 금입니다.)” 이 말은 누구나 알고 있는 명언 중에 명언이다. 하지만 금으로 시간은 사지 못한다. 시간은 그만큼 값진 것이고 우리 삶에 있어 소중하다. 멈추지 않는 시간, 돌아오지 않는 시간, 소중한 시간을 낭비한다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일이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이 순간 이 시간의 의미는 너무나 중요하다. 시간은 우리가 머무는 공간과 더불어 보이지 않지만 엄청난 가치를 갖고 있다는 사실을 그 누구도 부인하지 못한다. 시간을 멈추는 공간인 블랙홀, 빛조차 빠져 나올 수 없다는 블랙홀의 삶이라도 한번 쯤 차원을 달리해 생각해 보지만 부질없음을 느끼게 된다.
지금 정치는 식물정치가 되어가고 있다. 예산은 법정시한을 넘기고도 처리하지 못하여 국회의원들이 불법과 직무유기를 자행하고 있다. 이에 대한 처벌규정은 없는지 모를 일이다. 그런가 하면 내년 4월 15일에 치러지는 21대 총선을 앞두고도 선거법하나 확실하게 마무리 짓지 못하고 있다. 이럴 바에는 그냥 기존대로 선거를 치루는 것이 훨씬 더 낫다. 각종 민생법안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데도 ‘너는 너 나는 나’이다. 민주적인 질서나 협치의 모습은 찾아볼 수가 없다. 세월을 말하는데 쓰는 또 다른 말이 “신선놀음에 도끼자루 썩는 줄 모른다‘라는 말이 있다. 그 많은 국회의원들이 지금 이 순간 무엇을 하고 있는지 국민들에게 알려줄 필요가 있다. 국회의원들의 도끼자루가 썩고 있다. 주인인 국민들이 일꾼인 국회의원들이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를 모른다면 주인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말이다. 그래서 무노동 무임금의 적용을 국회의원들에게 해야 한다는 말이 나오는 것이다. 한번 가면 돌아오지 않는 이 귀한 시간에 민주정치는 어디로 갔고 왜 대립과 반목만 일삼고 있는 지 국민들만 속을 끓이고 있다. ”못된 강아지 콧잔등 아물 날 없다“고 했다. 딱 그 짝이다. 일하기 싫으면 그만 두어야지 왜 세비만 꼬박꼬박 받아먹고 있는지 답을 해야 한다. 주인인 국민을 얼마나 우습게 알기에 이런 행동이 다반사로 나오는지 참으로 후안무치하다.
모든 것이 정상을 벗어나 추악한 모습들이 곳곳에서 터져 나온다. 참으로 다사다난한 한해였다. 이런 가운데도 오히려 서민들이 이웃사랑을 실천하고 있다. 김장김치를 담아서 함께 나누며 어려운 이웃들을 위한 사랑을 펼치고 있다. 역 광장 등지에 설치된 사랑의 온도탑이 온도가 오르고 있다. 구세군의 자선냄비의 종소리도 어김없이 등장해 세밑 분위기가 서서히 고조되고 있다. 곳곳에서 송년모임도 시작되고 있다. 2019년 황금돼지의 해가 이제 서서히 머물고 2020년 기해년 쥐의 해가 다가오고 있다. 이를 송구영신(送舊迎新)이라고 하지만 황금돼지의 꿈을 키우며 풍요로움을 소원했던 서민들의 마음은 한해의 끝자락에 서서 아쉬움만 더해 가는 것 같다.
지혜의 왕 솔로몬의 “이 또한 지나가리라“라는 말처럼 힘들고 고통스러운 상황도 모두 지나가고 모두가 행복하고 즐거운 시간이 찾아오길 소망해 본다. 분명 고통스럽고 어두운 시간은 지나가야 한다. 시간이 멈춘다하더라도 이런 곳과 순간을 원하지 않는다. 국민을 위한 시간을 헛되게 버리는 정치인들, 무위도식하며 시간을 버리는 어리석은 자들, 위선과 거짓으로 혹세무민하는 사기꾼들 등등 모두에게 시간은 지나가고 있다. 다만 그 시간의 가치를 참되고 선하게 활용했느냐 아니면 사리사욕과 양두구육의 표리부동한 삶을 살아가는 데에 쓰고 있느냐 하는 여부에 쏜 살 같이 지나가는 세월의 영욕이 갈린다고 생각한다. 세월이 멈추지 않는다면 아니 멈출 수 없다면 다시 돌아오지 않는 시간을 딛고서 후회없는 삶의 자세로 자신들을 돌아보는 세밑의 자성의 순간을 한번 쯤 가져봄이 어떤지 권면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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