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협 세종교육원 백현종 교수


한달 전 개봉한 82년생 김지영이란 영화가 우리 사회에 던져 준 화두는 젠더만의 문제는 아니다. 거기에 머물렀다면 3백만명은 고사하고 1백만명도 모으기 어려웠을 것이라는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무엇이 더 있었을까 ?
개봉전부터 평점 테러라는 이슈가 있긴 했지만, 젠더 문제외에도 세대간의 갈등, 가족을 대하는 인식의 문제도 함께 다룬것이 많은 관객을 영화관으로 모이게 하지 않았을까 싶다. 빠르게 줄어만 가는 가족의 수는 급기야 1인 가구가 등장하는 시대가 되었다. 영화를 통해서 우리의 가족과 그 안에서 나를 제외한 다른 가족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고민해본다
우리에게는 유달리 빠름의 문화가 있다. 경제 성장도 그렇고 민주화도 그러하다. 빠름의 DNA가 우리 민족에게는 있는 것 같다. 다만 사회 인식이 DNA를 따르지 못한 뿐이다. 세상은 빠르게 바뀌고 있는데 아직 과거의 인식에 머무르고 있는 경우도 있고, 이 부분에서 서로간 갈등이 발생하고 있다
영화속에서 며느리와 시어미니가 대립하는 장면이 그러하다. 아직도 명절이나 신혼여행후에 흔하게 일어나는 풍경이지만, 우리의 인식이란 남자쪽 먼저 방문하고 나서 여자쪽 방문하는 것이 불문율처럼 되어 있는데, 영화 82년생 김지영은 이 지점에서 시어미니와의 갈등이 극에 달한다. 우선순위의 문제를 남자와 여자 관계에서만 본다면 좁게 본 것이다. 남자가 아들이면서도 누군가의 사위이듯, 여자는 며느리이면서 누군가의 딸이기도 하다. 명절에 딸이 시댁에 앞서 친정에 먼저 들르기를 원한다면 며느리도 먼저 보내주는 지혜가 필요하다. 이제는 우선 순위에 대한 부모님들의 인식도 빠르게 바뀌길 기대해본다
우리 사회가 심각한 저출산 문제에 직면하고 있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여러 전문가가 지적하듯이 청년층의 고용률 저하 및 이에 따른 비혼 인구의 증가 등 원인은 다양하다. 신혼 부부의 경우 대부분 맞벌이를 하고 있는데, 출산을 해도 자녀를 맡길데가 없는 것이 저출산의 큰 원인임에 틀림없다. 그래서 남자도 육아 휴직을 하는 경우가 점점 늘어나가는 추세이긴 하지만 보편적이지는 않은 것 같다. 그리고 추세가 더디다.
우리의 인식은 어떠한가 ? 남녀가 육아 문제로 다투는 이유는 인식의 차이다. 나의 ‘일’이라는 인식과 남의 ‘일’이라는 인식의 간극은 큰 것이다.
50대 남자인 나는 그동안 집안일을 도와준다고 표현해왔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가사와 육아라는 것이 아내만의 일은 아니었던 것이다. 나의 일이기도 했다. 도와준다는 표현은 내 마음속 한 구석에 그것이 남의 ‘일’이라는 인식이 깔려있었던 것이다
도와준다는 마음이니 아무리 잘해봐야 나의 일이라고 생각하는 아내의 시각에 보면 만족스러울 리가 없다. 20대인 딸은 영화를 보고서야 그것을 깨달았냐고 핀찮을 주긴 했지만, 영화를 보지 않았다면 여전히 인식의 장벽안에 갇혀있을 터이다
82년생은 그러한 인식의 차이가 없다 한다. 기성세대는 어떠한가 ? 지금에서 육아를 할 나이는 지났겠지만, 가사는 앞으로도 몇 십년동안 해야 할 일이다. 나의 일이라고 생각하면 빗자루를 쥐는 힘이 달라질 것이고, 걸레질의 횟수가 달라질 것이다.
이 영화가 젠더의 문제가 아닌 가족의 관계를 다룬 영화라는 점이 바로 이러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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