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용철 벧엘의집 담당목사

벧엘의집이 대전역 광장에서 컵라면을 나누면서 노숙인들과 쪽방주민들, 정동지역의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연대하며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향한 첫걸음을 디딘지 20년이 흘렀습니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고 하는데 벌써 두 번이나 강산이 변할 만큼 세월이 흘러간 것이지요. 이렇듯 벧엘의집 20년은 세월의 무게만큼이나 많은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먼저 외형적인 변화입니다. 처음 시작할 때는 공간조차 마련할 수 없어 대전역 광장 한쪽귀퉁이에 밤마다 천막집을 짓고 옹기종기 모여 앉아 추위를 녹여가며 밤을 지새웠는데 지금은 남성노숙인 시설 울안공동체, 쪽방생활인을 위한 쪽방상담소, 무료진료소인 희망진료센터, 캄보디아 깜퐁츠낭 지역 해외협력 사업을 하는 사단법인 세계의 심장 등... 비록 자체 건물은 아니지만 제법 규모를 갖춘 사회선교센터로 자리 잡았습니다. 담당인력도 처음에는 북치고 장구 치며 모든 것을 혼자 감당해야 했었는데 지금은 함께 일하는 동역자도 20여명에 가까운 큰 조직이 되었습니다.

내용적인 면에서도 처음에는 그저 새로운 교회를 향한 새로운 목회를 해 보겠노라고 거리 노숙인들에게 잠자리 제공, 먹거리 제공, 일자리 제공, 단순한 무료진료 정도였는데 지금은 거리 노숙인 뿐만 아니라 쪽방생활인, 주거 취약계층 등 대전역 인근 빈곤층 전체를 아우르고 있으며, 빈곤에 대한 근본적인 대안을 찾고, 새로운 사회에 대한 실험을 하고, 지속가능한 사회의 밑그림을 그려보고, 모두가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공동체를 꿈꾸는 등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사회를 향한 다양한 실험과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선교를 통한 사랑과 하나님의 공의를 실현하려고 하고 있으며, 감리교 창시자인 요한 웨슬리의 사회구원을 목표로 삼고 있고, 목원신학의 뿌리인 이호운 신학인 흙에 개어진 말씀인 복음의 대중화와 민중화를 실현하기 위해 달려가고 있으며, 또 하나의 교회가 아닌 새로운 교회의 고백인 빈들 정신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해서 하나님의 인간에 대한 한없는 사랑과 공의를 실현한 사회가 곧 하나님 나라임을 고백하고 그런 사회를 만들려고 하고 있습니다.

20년을 돌아보면 감사와 기적을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먼저 20년을 한결같은 마음으로 함께 해준 동지들이 있습니다. 희망진료센터를 출발시키고 지금까지 함께해준 대전세종충남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동지들, 뒤에서 기도와 후원으로 든든하게 저의 뒷배가 되어준 교회와 목사님들, 성함조차 드러내는 것을 거절하시면서 지금도 묵묵히 후원하시는 후원자님들, 자원봉사자님들, 처음 벧엘을 출발하게 했던 고 이유식 감독님, 정지강 목사님, 벧엘이 힘들 때마다 든든한 지원자가 되어주셨던 권오준 목사님, 40여일간 노숙체험을 통해 이 시대 참 목사의 길을 몸소 보여주시면서 벧엘의 대장정을 출발시키셨던 빈들공동체 남재영 목사님, 초창기 어려운 여정을 함께 몸으로 부딪치며 함께 살아 주었던 후배 동역자들, 그 외에도 이런저런 모양으로 벧엘과 함께했던 많은 사람들.... 이 분들이야 말로 벧엘을 일구고 지켜온 분들입니다. 이분들 모두가 바로 20주년을 맞은 벧엘의 주인공들이기도 합니다. 모든 분들에게 머리 숙여 감사드립니다.

특별히 목사의 길을 제대로 가기 위해 좌충우돌하는 남편을 위해 묵묵히 뒤에서 기도하며 내가 조금만 흐트러지면 따끔한 조언자로, 일이 너무 많아 힘들어 하면 든든한 협력자로, 때론 지치고 이런저런 문제로 괴로워하면 한없는 위로자로, 갈 길을 정하지 못하고 주저하고 있을 때는 분별자로.... 때론 죽비로, 때론 포근한 안식처로 20년을 한결같이 함께 해준 아내에게 고맙다는 말을 꼭 하고 싶습니다.

벧엘의 역사는 기적의 역사였습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무에서 유를 만들어낸 하나님의 기적이었습니다. 매순간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방법으로 벧엘이 가야할 길을 여셨고, 채우셨습니다. 처음 출발도 그랬고, 지금도 하나님은 당신의 방법으로 당신의 길을 갈 수 있도록 이끌고 계십니다. 그래서 저는 종종 벧엘의 역사는 오병이어 기적의 역사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돌아보면 무엇 하나 하나님의 기적이 아닌 것이 없습니다. 우리의 계산법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한 일도 당신이 필요하면 이루게 하셨습니다. 이게 바로 벧엘 20년의 역사였습니다.

그러면 다시 20년은 어떻게 가야할까요? 처음이 그랬듯이 분명 당신이 일하실 것입니다. 벧엘은 남녀노소, 지위고하, 빈부귀천에 상관없이 모든 이들을 하나님의 사랑으로 품고, 하나님의 공의가 하수처럼 흘러넘치는 하나님의 집이기 때문입니다. 아직 무엇 하나 제대로 이루어 낸 것은 없지만 분명 앞으로 20년도 당신께서 이끌어 가시며 당신의 뜻을 이루어 가실 것입니다. 때론 우리의 생각을 통해, 때론 우리의 행동을 통해 처음 고백을 이루어 가도록 하실 것입니다.

그러기에 새로운 20년은 지금까지 다져온 기초위에 하나님의 집을 지어 갈 수 있어야겠습니다. 복음을 흙에 개고, 선한 사마리아 그리스인의 길을 간다면 분명 시편기자의 말씀처럼 주님은 때론 비틀거려도 결코 우리의 손을 놓지 않으실 것입니다. 이제 새로운 20년을 향해 주님이 일하시도록 힘차게 나아갑시다. 끝으로 오늘 벧엘 20년을 축하해 주기 위해 참석하신 모든 분들에게 하나님의 은총이 충만하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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