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헌태논설고문

어학사전에 궁민(窮民)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들이 그다지 많지 않다. 그런데 궁민이란 단어가 있다. 그 뜻은 ‘생활이 어렵고 궁한 백성’을 일컫는다. ‘국가를 구성하는 사람, 또는 그 나라의 국적을 가진 사람‘이 바로 국민(國民)인데 발음도 공교롭게도 ’궁민‘이다. 그러니까 국민(國民)과 궁민(窮民)은 같은 발음선상에 있지만 그 의미만 달리하고 있다. 그리고 매우 ’가난한 사람‘을 세궁민(細窮民)이라 하고 ’세ː궁민‘이라고 발음한다. 중국에서 유래된 것으로 흉년에 궁민을 구제할 목적으로 마련한 비상미 저축제도가 바로 ’의창(義倉)’이다. 여기에 궁민이 등장한다. 춘궁기에 곡식을 빌려줬다가 추수 때 이자를 붙여 거둬들이는 빈민구제 기관이었다. 평년에는 백성으로부터 곡류(穀類)를 여분(餘分)으로 징수하거나 유지(有志)로부터 기부를 받아 곡식을 보관하던 창고(倉庫)이다. 수(隨)나라 때 시작되어 당(唐), 송(宋), 청(淸) 때에도 널리 설치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고려 태조(太祖)가 설치한 ‘흑창(黑倉)’을 고려(高麗) 성종 5년에 ‘의창’으로 개칭(改稱)하는 데서 비롯되었다. 조선시대에 계승되어 16세기 초까지 계속되었다. 궁민(窮民)이 된 국민(國民)을 위한 빈민구호기관으로 사실상 오늘날 복지제도와 국민연금을 연상시킨다. 하여튼 역사적으로 궁민문제는 나라의 큰 구휼(救恤)의 문제였다. 즉 백성들이 흉년 등으로 곡식이 떨어지거나 가혹한 형벌 등으로 어려운 상황에 처했을 때 국가에서 백성들의 처지를 생각하여 구제했음을 엿볼 수 있다.
요즘 대한민국의 국민들은 마치 춘궁기(春窮期)를 맞은 듯하다. 일본의 수출규제, 최저임금 문제, 정치, 경제, 외교, 안보, 남북문제 등 많은 혼돈들이 대한민국 사회를 좌충우돌로 몰고 있다. 이 가운데 경제의 기초체력이 나약해진 한국경제의 대표적 요인의 하나로 지목된 내년도 최저임금의 문제가 우여곡절 끝에 결론이 났다. 살펴보면 2020년에 적용될 최저임금이 8,590원으로 결정됐다. 올해 최저임금인 8,350원보다 2.87% 오른 금액이다. 인상률로는 역대 세 번째로 낮은 수치로 분석되고 있다. 그 만큼 현재 경제상황이 좋지 않은데다, 최근 2년간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으로 부작용이 심각하다는 점이 반영된 것이라는 점이 주목된다. 최저임금위원회가 12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제 13차 전원회의에서 한 결정이다.
내용을 보면 사용자위원이 제시한 최저임금안인 시간 당 8,590원이 최저임금위원 27명 중 15명의 표를 받았다. 근로자위원이 제시한 8,880원(6.3%)는 11표를 받았고, 1명은 기권했다. 최저임금 1만원의 실현을 주장하는 노동계는 노동존중정책, 최저임금 1만원 실현, 양극화해소는 완전 거짓구호가 되었다고 즉각 규탄하고 나섰다. 하지만 사용자측은 최근 2년간 30% 가까이 인상되고 중위임금 대비 60%를 넘어선 최저임금이 큰 폭으로 인상될 경우 초래할 각종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토로한다. 금번 최저임금 결정이 경제 활력을 제고하고, 중소·영세기업과 소상공인들의 어려움을 다소나마 줄일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도 했다.
이런 결정을 볼라치면 그동안 1만 원대를 향해 향하던 최저임금이 경제현실을 무시한 무리한 인상이 아니었느냐 하는 점도 시사하고 있다. 돈을 벌지 못하는데도 돈을 주라는 것은 경제논리도 아니고 시장경제도 아니고 이른바 모순경제, 억지경제에 다름이 아니라는 지적이 강한 이유이다. 그러니 아예 알바생 조차 고용하지 않고 가족들이 나서고 영업시간마저 줄여버린 것이 아닌가 싶다. 요즘 젊은이들에게 아르바이트 일자리는 과거처럼 손쉽게 구할 수 있는 그런 자리가 아니다. 오죽하면 소상공인들과 자영업자들은 내년도 최저임금 결정을 조마조마하면서 지켜보면서 폐업을 하느냐 마느냐를 걱정해야 했는지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240원 2.87%는 지난 해 10.9%가 올랐던 것에 비하면 크게 꺾인 것으로 엄혹한 경제상황을 반영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렇다고 과연 우리나라 경제의 기초체력을 다시 키우고 추동력을 되찾을 수 있을 지는 더 두고 볼 일이다. 이런 저런 경제여건이 생각보다 살벌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은행조차 우리나라 목표 경제성장률을 2.6%에서 2.4%∼2.5%로 낮추고 있고 해외투자은행이나 국제 신용평가사들로 잇따라 전망치를 낮추고 있다. 물론 한국에 대한 일본의 반도체 소재 수출규제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보고 있다. 실제 1분기 경제성장률이 전 분기 대비 0.4%가 하락했다. 전문가들은 경기둔화에 기준금리인하도 기정사실화되고 있다. 또다시 2.5%에서 2.3∼2.4%로 하향 조정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여하튼 정부나 경제전문가들도 현재의 대한민국 경제상황이 녹록치 않음을 여러 가지 액션을 통하여 부정적 메시지로 전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여기에다 일본과의 대립과 충돌이 글로벌 경제시대에 걸맞지 않게 흘러가고 있다. 일본의 반도체 소재 수출규제가 심각 이상이다. 삼성을 비롯해 주요 대기업들이 비상사태이다. 잘 나가던 삼성이 그야말로 발등에 불이 떨어진 듯하다. 재벌 총수들이 일본을 향하고 대책을 숙의하고 있지만 이에 대한 현실적인 뾰쪽한 묘수가 보이질 않는다. 정부의 강경대응과 장단기 대책이라는 것은 공감을 얻지 못하는 메아리처럼 들린다. 기업이 잘못해서가 아니라 정치적 대립과 충돌이 빚은 이번 사태는 결코 간단치 않아 보인다. 새우등 터지는 대립양상이 살벌하다. 일본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칼을 뽑아들고 수출규제의 의지를 불태우고 있다. 일본을 찾아가고 미국을 찾아가도 그 해법은 보이질 않고 있다.
그동안 주요 부품들의 일본의존도가 높다는 사실을 웬만한 국민들은 다 알고 있었다. 심지어 자동차부품까지도 그렇다. 그런데 이 정도일 줄이야 정말 몰랐다. 세계적인 기업으로 대한민국의 상징이 되고 있는 삼성전자의 반도체가 일본의 소재수출규제에 맥을 못 출 정도였다고 생각하니 국민들의 허탈감과 상실감, 심지어 배신감마저 들고 있다. 천문학적인 돈을 벌면서도 그동안 무사안일한 자세로 반도체산업을 이끌어 왔다는 점에서 비난받아 마땅하다. 어찌 보면 자업자득이다. 그동안 미흡하고 부족한 기술에 대한 연구개발을 등한시하고 눈앞에 이득만을 챙기며 장기적이고 지속적이며 안정적인 길을 도대체 왜 외면해 왔는지를 묻고 싶다. 참으로 창피하고 부끄럽다. 만약 앞으로 일본이 소재부품을 계속 대 주지 않을 경우 삼성전자반도체는 문을 닫을 수밖에 없는지를 알고 싶다. 이렇게 허약한 체질로 어떻게 세계적인 기업이 되었는지를 이해할 수가 없다. 영향을 함께 받고 있는 다른 대기업들도 마찬가지이다.
중소기업들이 획기적인 기술을 개발하고 세상에 내놓아도 대기업들은 콧방귀도 안 뀐다는 말은 이미 업계에서도 파다하다. 세계적인 것을 제안해도 그렇다. 이런 풍토에서 중소기업들은 대기업 눈치만 보며 늘 헐떡거리며 달려왔다. 지금도 더 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다고 보고 있다. 우수한 중소기업들을 적극 지원하며 우리가 갖지 못한 기술들을 개발하기 위해 함께 노력해 왔어야 한다는 뒤늦은 후회가 팽배하다. 삼성전자의 올 2분기 영업이익은 6조 5천억 원으로 이는 잠정실적이라고 한다. 하지만 일회성 수익을 빼면 5조원 중반으로 실적은 1분기에 이어 ‘살얼음판’이라는 것이다. 수익성 부진상태를 일컫는다. 한마디로 반도체 위기의 시대를 맞고 있다. 여기에다 일본의 수출규제는 더 심각한 상황으로 몰고 갈 것이 자명하다. 대안부재가 아닐 수 없다. 이렇게 가다가는 무슨 일이 날 것만 같다. 수출로 먹고사는 나라에서 수출품의 핵심이 타격을 입는다면 과연 그 길은 어디로 향할 것인지는 불문가지(不問可知)이다. 국민들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가득이나 서민경제의 활기를 찾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대한민국의 수출경제의 기둥이 흔들리는 모습을 국민들은 보고 있으니 이러다가 일본 발 제 2의 IMF체제 상황이 도래하는 것이 아닌지 시중에서는 불안심리가 작동하고 있다.
반일 감정을 내세우며 대책없이 대립하고 있는 정부의 모습도 참으로 초라하기 그지없다. 무슨 일을 추진함에 장단기적인 계획을 마련하고 대처해야지 ‘막고 품는 식’으로 일본 문제를 접근하는 방식은 너무나 수준이 떨어진다. 우리의 힘, 국력을 키우고 대적을 하던지 해야지 그저 반일감정에만 의존하여 대한민국 경제의 근간을 뒤흔드는 어리석음은 용기도 아니며 지혜도 아니다. 그저 만용이며 허풍일 뿐이다. 어쩌다가 이 지경에 이르렀는지 참으로 안타깝다.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왜 이런 고통과 시련이 닥치는지 알다가도 모를 지경이다. 침체된 경제에서 먹고살기에도 힘겨운 나날을 보내는 국민들의 허탈한 눈망울이 보이지 않는가 묻고 싶다. 무엇하나 제대로 공감대를 얻지 못하고 따로 국밥이 되고 있다.
과연 요즘 대한민국이 ‘정상성’을 갖추고 있는 나라인지 조차 궁금하다. 정치는 무엇이고 국민이 무엇인지를 묻고 싶다. 연일 뉴스를 장식하는 각종 소식들은 국민 가슴을 철렁이게 하는 것들로 넘쳐난다. 때로는 무엇이 가짜뉴스인지 조차 헷갈린다. ‘정직한 나라, 정의로운 나라, 국제적으로 환영받는 나라’의 모습이 보이질 않는다. 피와 땀으로 일군 대한민국이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진다면 이는 국민 모두의 불행이다. 아쉬울 때는 국민들을 위해 낮은 포복도 해야 한다. 그래서 이 어둠의 터널을 벗어나야 한다. 모두가 정신을 차려야 한다. 우리는 지금 ‘대한민국 국민(國民)이 되길 원하는가? 대한민국 궁민(窮民)이 되길 원하는 가?‘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빈대 잡는다고 초가삼간 다 태우는 어리석음‘에서 벗어나야 한다. 한일관계, 심지어 한미관계와 남북관계도 솔로몬의 지혜로 풀어나가는 용단과 혜안이 절실한 시점이다. 우리 국민(國民)들이 춘궁기(春窮期)가 아닌데도 거꾸로 가는 대한민국의 궁민(窮民)이 되길 원치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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