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헌태논설고문

최근 조현병 환자에 의한 각종 사건이 끊이질 않고 이어지고 있다. 발생사건에 따른 충격이 매우 크다. 이런 가운데 강북삼성병원에서 진료를 받던 중 의사를 살해한 30대 남자에 대해 검찰은 1심에서 무기징역과 30년간의 전자팔찌 부착을 구형했다. 사실상 사회단절이자 중형이다. 검찰의 구형이유에는 심신미약이라는 점이 전혀 참작되지 않았다. 검찰은 "박씨는 사람을 살리는 병원에서 환자에게 도움을 주려는 의사를 살해했고 그 죄질이 불량하다"며 "사망한 피해자를 발로 밟고 조롱한 박 씨는 살인 행위를 '사냥'이라고 말하며 죄책감도 보이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어 "박씨가 장애를 앓고 있고 심신 미약이라는 이유로 계획된 범행에 수법까지 잔인했던 이 사건을 가볍게 처리하면 안 될 것"이라며 "잔인하고도 참혹한 박씨의 행위에 대해서는 엄벌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무기징역을 구형받은 박씨 측 변호인은 "박씨가 저지른 범행은 죄가 맞지만, 그가 심신 미약에 이르게 된 것은 자신만의 잘못이 아니라 불우한 성장과정과 가정 폭력, 집단 괴롭힘 등 때문"이라며 선처를 호소했다. 이어 "박씨를 방치한 죄는 그 자신만의 죄가 아니라, 정신질환자를 개인에게만 맡긴 사회의 책임"이라며 "법과 제도 정비해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위험성을 인식하고 조치하는 것이 사망한 피해자가 바라는 일이라 생각한다."고도 말했다. 경찰은 박씨의 주거지 압수수색 및 과거 정신과 진료내역 분석을 통해 범행 동기를 정신질환으로 인한 망상으로 판단했다. 사회적 파장이 컸던 이번 사건이 던져주는 모든 교훈을 그대로 함축하고 있는 구형이유와 변론의 대강(大綱)이다.
연말연시 이 사건으로 사회적 충격 속에 이른바 임세원법을 만든다고 정신분야 및 국회의원들은 요란을 떨었지만 한마디로 문제의 ‘정신건강복지법’은 제대로 손도 보지 못한 채 ‘태산명동서일필(泰山鳴動鼠一匹)’이 되고 말았다. 윤일규 의원 등이 당초 의원입법으로 발의된 초안에는 상당히 고심한 흔적이 보였지만 어찌된 영문인지 막상 본회의를 통과한 법은 주요 쟁점들이 고스란히 빠져버렸다. 쉽게 말해 문제투성인 정신건강복지법의 누더기 조항들을 그래도 존속시켜가겠다는 것으로 임세원법의 취지를 무색하게 해 버렸다. 문제는 이처럼 유야무야하는 사이에 고위험군의 정신질환에 의한 강력 사건사고가 잇따르면서 여전히 사회적 불안감을 더욱 고조시키는 결과를 낳고 말았다는 것이다.
최근의 사건사고일지를 정리해 보면 단번에 알 수 있다. 경남진주에서 발생한 조현병 치료중단 질환자였던 40대가 저지른 행각은 황당하면서도 참혹하기 그지없다. 자신의 아파트에 불을 지르고 대피하는 주민들에게 흉기를 휘둘러 5명을 숨지게 한 안인득에 대해 현주건조물방화·살인 등 혐의로 구속됐다. 5명을 살해하고 16명에게 중경상을 입힌 방화살인범 42살 안인득의 신상공개도 결정됐다. 안씨는 지난 4월 17일 오전 4시29분쯤 진주가좌주공아파트 4층 자신의 집에 휘발유를 뿌려 불을 지른 뒤 대피하던 주민들에게 흉기를 마구 휘둘러 초등학교 6학년 여학생을 비롯해 5명이 숨지게 하고 16명에게 중경상을 입혔다. 그 잔혹한 행각에 국민적 공분을 불러일으켰다.
이 사건에서 더욱 충격적인 것은 조현병의 치료중단이고 주민들의 신고가 묵살되었다는 점이다. 피해자 측에서는 “아파트 주민들이 오랫동안 가해자의 위협적인 행동에 대해 경찰에 신고했다”고 한다. 하지만 “경찰이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또한 “경찰의 조치가 없어서 관할 동사무소와 임대주택 관리사무소에 민원제기를 했지만 묵살 당했다”고 한다. 이번 사건은 “주민들의 수차례 신고에도 국가기관이 방치하면서 벌어진 인재”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한마디로 국가책임이라는 것이다. 대처만 잘했더라면 새벽의 참극을 사전에 예방을 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안타까움을 더하는 사건이다. 임세원교수 살인사건에 이어 벌어진 충격적인 사건이다. 역시 법과 제도가 도마 위에 오르는 순간이었다. 바로 무리수를 두고 있는 탈원화 정책과 입·퇴원 제도이다.
그런가 하면 최근 우후죽순처럼 잇따르고 있는 사건들이 사회 불안을 증폭시키고 있다. 4월 25일 오후 10시쯤 칠곡군 한 병원의 정신병동에 조현병 증세로 입원한 A씨(36)가 '잔소리를 많이 한다'는 이유로 같은 병실의 50대 환자를 둔기로 마구 때려 숨지게 한 사건도 발생했다. 부산에서는 지난 30여 년 동안 조현병을 앓아오던 50대 남성이 친누나를 흉기로 무참히 찔러 숨지게 하고 시신과 함께 집안에서 생활하다 지난 4월 30일 오후 5시50분쯤 경찰에 붙잡혔다. 또 지난 5월 6일 부산에서는 정신질환(조현병) 치료를 받은 전력이 있었던 30대 남성이 흉기로 난동을 부리다가 경찰에 붙잡혔다. 이 30대 남성은 이날 오전 2시 43분쯤 부산 수영구 한 마트에서 흉기를 훔쳐 마트직원과 택시기사에게 흉기를 휘두르며 위협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 조사결과 이 남성은 조현병과 공황장애 치료를 받았던 전력이 있었다. 최근에 교통사고로 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던 중 꿈속에서 누군가 자기를 죽이려고 한다며 병원 밖으로 나와 이런 행각을 벌였다.
또 지난 5월 7일 광주에서는 환청을 듣고 차에 불을 내고 또 다른 차를 훔쳐 달아난 혐의 등으로 경찰이 40대 남성(43)을 붙잡아 조사를 벌였다. 또 충북 충주시 한 원룸에서는 5월 9일 오전 4시 51분쯤 20대 조현병 환자 A씨가 경찰관과 구급대원 등 3명에게 흉기를 휘두르는 사건이 발생했다. 경찰은 이날 A씨의 부모로부터 "아들을 정신병원으로 옮기려고 하는데 도와 달라"는 요청을 받고 출동했다. 경찰과 구급대원은 A씨가 휘두른 흉기에 손과 얼굴 등을 다쳤다. 지난 해 벌어진 일이지만 자택 인근 슈퍼와 편의점에 찾아가 흉기를 휘두르고 난동을 부린 20대 여성에게 인천지법은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하고 보호관찰을 명했다. 재판부는 "알코올 의존증, 우울증, 불면증 등이 이 사건 각 범행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며 "피해자들은 피고인의 처벌을 원하지 않으나, 불안감을 호소하고 있는 점 등에 비춰 형을 정했다"고 판시했다.
최근 진주 방화·살인 사건을 비롯하여 정신질환자의 강력범죄가 잇따라 발생함에 따라 정부가 관련 부처 간 공동 대응체계를 구축해 나가기로 했다. 법무부는 5월 1일 보건복지부와 대검찰청, 경찰청과 실무협의회를 개최하고 이같이 결정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복지부는 정신질환에 의한 범죄위험 가능성을 조기에 발견하는 체계를 수립하고, 범죄 고위험 정신질환자에 대해선 '행정입원' 등 방식으로 적극 대응한다는 방침이다. 행정입원은 강제입원의 일종으로 정신질환자 행동이 자·타해 위험성이 의심되는 경우 이뤄진다. 경찰청은 범행이 중하지 않더라도 재범 우려가 높은 정신질환자에 대해선 응급입원 조치나 감정유치 신청 등을 적극 검토한다. 초동수사단계에서 정신질환 여부나 재범위험성 관련 자료도 수집하기로 했다. 법무부와 검찰은 정신질환 범죄자에 대한 치료명령과 치료감호를 적극 청구할 계획이다. 치료감호 시설을 확충하고 치료감호·명령과 관련한 법제도도 개선할 예정이다. 사실 요즘 진주 쪽에서는 조금만 이상하면 마구 잡아들여 이른바 건달들이 정신질환자로 도매금으로 넘어가고 있다는 해프닝 소식도 들린다.
정신질환자 관리체계 일제 점검 및 대책 마련에도 나서는 모양새이다. 특히 보건복지부는 전국 정신건강복지센터 등록환자에 대해 일제점검을 시행하고, 경찰청의 반복신고사항 일제 점검 발굴에도 적극 협조하여 발굴된 대상자에 대한 사례관리 등 후속조치를 시행한다고 밝혔다. 정신질환 치료 관리도 강화한다고 하지만 문제는 탈원화 정책이 빚고 있는 현 상황에 대한 올바른 인식이 기초하지 않으면 탁상공론에 불가하다는 점이다. 정신건강센터에 관리 책임소재를 두고자 하는 것도 문제이지만 비자의 입원제도에 대한 개선 없이는 사상누각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사건이 발생하면 호떡집에 불난 듯이 난리를 피우면서 임시처방전만 들고 나오다가 잠잠해지면 금방 시들해지고 있는 것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입·퇴원에서부터 주거 및 재활과 사회복귀에 이르는 전반적인 시스템이 효율적으로 관리되고 있는지를 살펴야 한다. 특히 공공의 안전과 정신질환자의 인권문제에 있어 딜레마가 존재한다. 이는 곧 환자가 동의하지 않는 치료는 근절되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바로 솔로몬의 지혜가 요구되는 대목이다. 감기나 질병을 앓고 있는 자식을 부모가 병원에 데려가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다. 그런데 유독 정신질환만 따로 떼어 별개로 생각하는 것은 역차별 발상이라는 지적도 강하다. 입·퇴원을 쉽게 하고 치료를 용이하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자칫 인권만 내세우다 치료를 중단하면 진주사건처럼 사달이 날 수밖에 없다.
지난 4월 19일 제주 메종그랜드호텔 회의실에서 있은 사단법인 대한정신의료기관협회의 한국, 일본, 대만 3개국의 정신건강제도 비교분석 학술포럼이 바로 우리의 정신건강정책이 나가야할 방향을 보여주고 있다. 또 4월 30일 그랜드 하이야트인천 그랜드볼룸에서 WHO(세계보건기구) 제네바 본부 WHO서태평양지역사무소와 용인정신병원 WHO협력센터가 마련한 지역 사회에 기반을 둔 정신건강서비스를 위한 워크숍이 제시한 세계 각국의 정신건강관련 우수사례들이 그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고루한 고정관념을 벗어나야 한다. 4명 중 한 명꼴로 정신질환 유경험자인 대한민국에서 정신건강은 매우 중요한 분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사후약방문이 되어서는 안 된다. 보건복지부 소관을 법무부 소관으로 바꾸는 어리석음을 벗어나야 한다. 이런 실패사례는 이미 미국이 경험하고 있다. 이제 국민정신건강위원회를 발족시켜 체계적이고 과학적이며 효율적인 국민정신건강을 챙겨야 할 시점이 다가왔다는 것이 중론이다. 국민을 위한 올바른 정신건강정책이 너무나 절실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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