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남일 경영학박사

다음달 5월은 가정의 달이고, 6월은 보훈의 달이다. 효와 충을 다시 생각하게 하는 달이다.
문명의 발달과 더불어 인간미가 사라져 가는 삭막한 풍토 속에서 3-4대가 어울려 산다는 이야기는 참으로 신선한 충격이 아닐 수 없다. 더구나 생활이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3대가 어울려 산다는 것은 재산상속에만 눈 먼 일부 부유층들에게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가족사랑에 다름이 아닐 것이다.
중국과 동남아시아를 휩쓸고 있는 한류의 열풍도 다름 아닌 한국 드라마속의 가족주의 때문이라는 그럴듯한 분석이 나와 있다. 3-4대가 한자리에 모여 식사하는 모습이 유교문화권에 살고 있는 동양인들에게 감동을 주고 있다고 한다.
사실 가족은 국가탄생의 기반이었다. 가족이 모여 씨족을 이루고 씨족이 확대되어 부족을 이루었으니 가족은 국가의 출발점이었다. 그러므로 가족주의가 살아 움직인다는 것은 국가의 건강성을 의미하는 것이다. 가족이 서로를 사랑하고 배려하는 풍토가 형성되어 있다면 그런 사회에서는 버림받은 노인이 존재할 수 도 없고, 청소년문제는 물론 심지어 주택과 환경문제까지도 걱정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가정이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면서 사회는 점차 꼬여가고 있다. 사회의 기초질서는 무너져 내린지 오래이고 이웃을 배려하는 이타주의마저 사라져 가고 있다. 더구나 지금의 우리 사회는 세대 간의 갈등을 심각하게 겪고 있고, 저출산 등 저성장사회가 이어지고 있다.
이처럼 자신만을 생각하는 이기주의가 팽배한 사회에서 우리는 미래를 기대 할 수 없다. 양보적 이기심과 협동의 미덕이 살아 움직이지 않는 사회는 민주주의도 기대할 수 없다.
이제 가정이 바로 서야 사회가 바로 설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가족주의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효에 대한 현대적 재해석이 이루어져야 한다. 지금까지는 맹목적으로 부모를 섬기는 것이 최고의 효라고 여겨 왔다. 다시 말해서 자식이 부모에게 향하는 일방적이면서도 수직적인 논리가 효사상의 전부인 것처럼 왜곡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진정한 효란 상호 호혜적이며, 수평적인 관계를 의미한다. 즉, 바른 생각과 행동을 행하시는 부모를 존경하고 그를 본받는 것이 효라고 할 수 있다. 그런 부모와 자식이 3-4대가 어울려 살아야 배울 것이 있고, 사회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
일찍이 효자 가운데 나쁜 사람이 없고, 국가에 충성하지 않는 사람이 없다는 것은 역사적으로 입증되어온 사실이다. 그런 의미에서 자식에게 고통을 주고, 상처를 주는 부모마저 맹목적으로 섬기라는 것은 효의 가치를 퇴색시키는 일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지배층의 사익을 위해 국민에게 희생을 강요하고 고통을 안겨 주는 정권에게는 충성을 다짐할 수가 없을 것이다.
우리가 충성하고자 하는 대상은 민주 국가이고 국가의 의지를 펼치기 위해 정부가 정의를 실천해 나갈 때 그 정권을 지지하고 충성할 수 있는 것이다.
이제 우리 젊은 세대들에게 바르지 못한 부모나 정부에 맹목적인 충효를 강요하지 말자. 충효의 진정한 가치를 훼손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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