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용철 벧엘의집 담당목사

세월이 유수와 같다고 하더니 벌써 대전역 인근에서 가난 때문에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하는 노숙인 등을 위해 무료진료 운동을 시작한지도 올해로 20년이 되었습니다. 빨리 없어지는 기관이 되고자, 국가로부터 모든 국민이 건강하게 살 권리를 보장받는 사회를 만들고자 달려온 희망진료센터가 성년의 나이에 접어들었습니다. 20년을 한결같은 마음으로 함께 하신 모든 동지들께 고개 숙여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그리고 이번 총회를 빛내기 위해 참여하신 회원들과 모든 분들을 환영하며 감사드립니다.

바라기는 이번 총회가 그동안 우리는 무엇을 실현했고, 무엇을 놓치고 왔는지 잠시 멈추어 서서 20년을 돌아보고 다시 새로운 20년을 준비하는 자리가 되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지금 우리는 어떻게 왔고, 어디쯤에 있고,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깊이 있게 성찰하기 위해 잠시 멈추어 보자는 것입니다. 저는 희망진료센터가 15년이 되던 해인 지난 2015년 신년사에서 제대로 가기 위해 잠시 멈추고 돌아보자고 했습니다.

“… 처음 대전역에서 시작된 벧엘사역이 1년여의 시간이 흐른 99년 9월에 우여곡절 끝에 동구 삼성동과 정동에 지금의 울안공동체인 남성노숙인 쉼터와 여성노숙인 쉼터인 한나의집을 마련할 수 있었습니다. 적은 예산으로 급하게 만든 공간이라 비록 협소했지만 다행히 가족적인 분위기를 낼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시작된 울안공동체는 비록 가난하지만 함께 살아가는 새로운 공동체, 서로 나눌줄 아는 공동체에 대한 꿈을 키워갈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건강에 대한 문제는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당시 같은 교회에 출석하던 푸른치과 신명식 원장님과 함께 보건의료단체에 무료진료에 대한 제안을 하기로 했습니다. 처음부터 진료소를 세우자고 하면 부담을 가질 것 같아 우선은 대전역에서 노숙인 건강실태에 대한 조사를 제안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대전역에서 2일 동안 노숙인 건강검진을 실시하게 되었고 그 결과 지금의 희망건강센터를 세울 수 있게 된 것입니다.

희망건강센터는 ‘의료혜택으로부터 소외된 빈민들의 질병치료와 건강하게 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으로 무료진료 활동과 예방활동, 보건활동을 하려고 한다. 또 하나는 빈민들에게 건강하게 살 권리를 찾아주는 운동이다. 이것은 왜곡된 공적 의료 시스템을 본래의 취지대로 되돌릴 수 있는 대안을 찾아보고 만들어가는 운동으로 빈민의료 기관의 확충과 예산의 확충, 사회적으로 의료는 공공성을 가져야 함을 계몽하여 병․의원이 경제논리를 벗어나 모든 사람에게 동일한 치료행위를 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다. 이 일을 위해 의료인의 연대를 모색하고, 의료인과 사회와의 연대를 통해 재원을 만들고 구체적인 진료활동을 통해 모두가 건강하게 살 권리를 찾자는 것이다.’ 라는 고백으로 지금도 모든 사람이 건강하게 살 수 있는 권리를 찾는 운동으로 발전시켜 나가고 있습니다. … 그래서 올해 벧엘의집 목표를 ‘가던 길을 멈추어 서서’라고 정했습니다. 이것은 지금까지 최선을 다해 달려왔던 벧엘사역을 한 번 정리하므로 그동안 창립고백을 얼마나 실천했는지를 평가하고, 부족한 부분은 반성하고, 새롭게 요구되는 비전을 세워 다시 달려갈 15년을 준비하자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창립고백을 담은 비전을 세우는 것도 중요하고 새로운 계획을 세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가던 길을 멈추고 왜 우리는 그런 창립고백으로 지금 이 자리에 서 있어야 하는지를 근본적으로 물어봐야 할 것입니다.

… 벧엘운동은 아파하는 사람들이 왜 아파하는지 묻고, 그 아픔의 근원을 제거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는 운동이 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 주위에는 아픈 곳이 너무도 많습니다. 그러기에 지금 이 자리의 아픔만을 붙잡을 것이 아니라 모든 아픔에 관심을 갖고 함께 그 아픔을 이겨낼 수 있도록 연대해야 합니다. 비를 맞는 사람에게 우산을 받쳐주는 것이 아니라 비를 맞는 자리로 내려가 함께 비를 맞으며 비를 피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할 것입니다.… ”

이렇듯 희망진료센터의 무료진료운동은 단순히 무료진료 활동을 넘어 가난한 사람들의 건강권 지킴이가 되고자 명칭까지도 진료센터가 아닌 건강센터로 바꾸면서(현재는 다시 희망진료센터로 변경) 공공보건의료 확대, 의료 보장성 확대를 넘어 무상의료 운동까지 넓혀 갔습니다. 그 결과 대전에 시립병원 설립 운동에 주도적인 역할을 하여 대전의료원 설립을 목전에 두고 있기도 합니다. 우리 모두는 열과 성을 모아 최선의 길을 달려왔습니다. 진료환자수, 외래환자수, 입원환자수, 예산, 자원봉사자수 등 지표상으로는 눈에 보일 정도로 발전한 것도 사실입니다. 무료진료소가 없는 사회, 경제적인 이유로 치료받지 못하는 사람이 없는 사회가 더 좋은 사회라는 믿음으로 빨리 없어지기 위해 한결같은 마음으로 달려왔습니다.

그런데 없어지기는커녕 규모나 활동면에서 더 커지고 안정되어 가고 있는 것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요? 다시 한 번 초심으로 돌아갑시다. 가난한 사람들이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는 권리를 찾기 위해서는 지금 최우선으로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점검해야겠습니다. 그래서 앞으로의 20년은 우리의 본질에 더 가까이 가는 길이 되도록 합시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혼자서는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혼자 꾸는 꿈은 꿈에 불과합니다. 함께 꿈을 꾸어야 현실이 됩니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세상, 모두가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함께 꾸어 현실로 만들어내는 20년이 되도록 합시다.

지난 20년 동안 함께 달려온 모든분들께 다시 한 번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다시 손을 잡고 출발합니다. 모두가 행복한 세상, 사람다움의 세상을 향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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