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용철 벧엘의집 담당목사

독일의 역사학자 E. H. Carr는 역사란 무엇인가? 란 책에서 과거는 지나간 현재요, 미래는 다가올 현재라고 했다. 즉 현재는 지나간 현재를 바탕으로 이루어져 있고 다가올 현재를 반영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렇듯 과거의 역사는 현재를 조명해 볼 수 있는 근거인 것이다. 또한 미래는 현재의 상황을 통해 예측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지금 살아가고 있는 현재는 바로 어제의 삶의 결과요, 이 삶의 결과들이 미래를 규정짓는 것이다.

또한 역사는 사실을 기록하기는 하지만 사실에 대한 해석이다. 그래서 역사는 당파성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어떤 사건에 대해 사실보다는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역사적 관점이 전혀 다르게 표현될 수 있다. 올해가 3.1운동이 100년이 되는 해다. 지금까지 우리는 대체적으로 3.1만세운동이라고 표현해 왔다. 그런데 일부에서는 3.1만세 운동은 단순히 운동을 넘어 비록 일제에 의해 실패했지만 혁명적 요소를 지닌 3.1혁명이라고 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마찬가지로 우리나라 근현대사에서 많은 역사적 사건이 폭동이나 반란으로 기록되었던 것들이 새로운 관점으로 해석하면서 제주 4.3민중항쟁, 부마항쟁, 광주민중항쟁 등으로 기록되기도 했다.

그렇다면 벧엘의집 역사를 기록한다면 어떻게 기록할 수 있을까? 올해가 벧엘의집이 출발한지 20년이 되는 해로 여기고 20주년 행사를 준비 중이다. 한 기관의 역사를 기록할 때는 당파성이나 사건의 해석보다는 언제를 시작점으로 삼아야 하느냐가 더 뜨거운 논쟁점이다. 벧엘의집도 설립연도를 언제로 할 것이냐가 더 중요한 문제다. 설립을 준비했던 활동을 시작점으로 여긴다면 이미 지난해가 20년이 되는 해였다. 하지만 여러 사항들을 고려하여 당시 활동을 준비기로 여기고 개소식을 기점으로 하다 보니 올해를 20년이 되는 해로 정한 것이다.(아직 논란의 여지는 남아있다. 준비활동을 했던 시기에도 벧엘의집 이름으로 여러 가지 활동을 했기에 99년이 아닌 98년 9월로 보아야 한다는 견해도 여전히 남아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지난 해 말 대전에서 노숙인 추모제를 언제부터 했는지가 하나의 논쟁거리가 되었다. 그동안은 대략 기억을 더듬고 자료들을 찾아 2001년부터 시작한 것으로 정했었는데 당시 주관단체였던 대전충청 인의협의 진료부장과 희망진료센터의 소장을 겸직했던 김주연 선생님이 당신이 소장이었을 때 노숙인 추모제를 했고, 추모제를 하자는 의견이 나왔을 때 상징적으로 밤이 가장 긴 동짓날로 정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김주연 소장이 2001년 여름에 남편을 따라 미국연수를 떠나면서 소장을 그만두었기에 2001년 이전에 시작했다는 결론이 나온다.

그런데 문제는 당시 상황들을 기억에만 의존하다보니 모두 정확하지를 않다. 그래서 과거 자료들을 찾아보니 공교롭게도 사진으로는 2004년부터만 남아있다.(이 때 벧엘의집이 디지털카메라를 구입했기에 사진들이 남아있는 것으로 추정.) 문서는 아무리 찾아봐도 근거가 될 만한 것이 없다. 그렇다면 기억에 의존해야 하는데 그때 함께 했던 사람들도 2000년인지 2001년이지 잘 모르겠다고 말한다. 다만 당시 소장이었던 김주연 선생님만 정확하게 그때 상황을 기억하고 있다.

역사를 기록할 때 근거가 되는 것을 사료라고 하는데 1차 사료는 주로 문서나 사진 등 객관적으로 확인되는 자료들이고 그 다음으로는 2차 사료라 해서 당시의 증언들이다. 이렇게 본다면 1차 사료는 찾을 수 없다고 하더라도 정확하게 당시 상황을 설명하는 증언이 있기에 2차 사료로서 객관성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여러 동지들에게 청한다. 혹시 그 당시 기억을 하는 사람이 있거나 당시 자료나 근거가 될 만한 것들을 가지고 있다면 공개해 주시기 바란다. 그래서 대전에서 노숙인 추모제의 출발점을 언제로 해야 할지 정리하고 갔으면 좋겠다. 현재로서는 당시 소장이었던 김주연 선생님의 증언을 토대로 2000년으로 수정하려고 한다. 또한 이 의견에도 각자의 의견을 주시면 좋겠다. 많은 분들이 의견을 주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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