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소방서 이재호

당신은 히어로물 영화를 좋아하는가? 영화 안에서 다양한 영웅들이 시민을 구하고 지킨다. 하지만 그것은 영화일 뿐이다. 현실에는 날아다니고 떨어지는 구조물을 막아내며 사람을 구하는 영웅은 없다. 그렇다면 정말

‘영웅’ 이란 것은 이 세상에 없을까? 영화처럼 날진 못하고 절대적인 존재는 아니지만, 남들이 도망치는 곳으로 들어가 사람을 구하는 영웅이 있다. 바로 소방관이다. 영웅처럼 위기의 순간 나타나 사람을 구하고 생명을 살린다. 공주소방서 실습 둘째 날인 10월16일 오전 10시경 심정지 환자 구급 출동을 나간 적이 있다. 노령의 남성이었고 구급차가 문을 닫고 출발하는 그 순간 까지 가족들은 제발 살려달라고 부탁하였고 또 부탁하였다. 그분들에게는 우리가 유일한 희망이었고 영웅이었다. 그 부탁을 받는 사람에는 나도 포함됐을 것이다.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실습생일 뿐인데 말이다. 다행히 그 환자분은 소생하셨다. 우리는 요구조자와 그 가족의 영웅이 맞았다.

여기서 참 많은 것을 느꼈다.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단계지만 시민들이 봤을 때는 다 똑같은 소방관이다. 자신이 위기에 처했을 때 무능하고 나약한 소방관은 원하지 않는다. 사람들의 인식 속에는 소방관은 다 해결할 수 있고 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우리는 영웅이어야만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웅이 되었던 출동이 더 있었다. 10월 26일 오전 9시30분경이었다. 흙집을 공사하다가 사람이 매몰된 사건이었다. 요구조자의 머리는 빠져나와 있고 목 아래로만 깔려서 불행 중 다행이었다. 요구조자는 천만다행으로 의식이 있는 채로 구조되어 이송되었다. 새내기가 본 베테랑들의 손놀림은 거침없었지만 정확했으며 신속했다. 필요한곳 필요한때에 필요한 장비를 사용하여 위험성이 적은 방법으로 구조 활동을 펼쳤다. 처음 현장 도착해서 차량에서 장비를 꺼낼 때도 막힘없이 나에게 쥐어주었다. 나도 저들처럼 되고 싶단 생각을 했고, 그러려면 많은 노력과 경험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다. 나에게 이 출동은 매우 흥미로웠고 내가 소방관이 된 것이 잘한 선택이라는 걸 다시 한 번 깨닫게 했다. 그런데 모두에게만 영웅인 것은 아닌 것 같다. 매몰구조를 다녀온 날 오후5시경 문 개방 출동을 나갔을 때 고성과 함께 문전박대를 당한 일도 있었다. 오전과는 정반대의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들도 매우 급한 상황이 되면 태도는 달라지지 않을까 생각한다.

영화이더라도 매일 날아다니고 사람만 구하러 다니는 게 아니다. 현실에서도 똑같다. 영화에서 영웅들은 악당을 어떻게 막고 또 물리칠지 궁리하고 연습한다. 실전을 대비해서 만반의 준비를 하는 것이다. 현실에서도 똑같다. 매일 구급 출동을 나가고 불만 끄는 것이 아니었다. 서류를 작성하기도 하고 시민들에게 화재 예방, 대처 교육을 하기도 하고, 평가하기도 한다. 훈련에 대해 회의하기도 하고 평가에 대비해 연습하며 감각을 잃지 않기 위해 노력하기도 한다. 계속 영웅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정말 느꼈던 것은 행정업무 처리할 것이 너무나 많다는 것이다. 실습 전에도 많이 들었다. 소방관 반 이상의 업무는 문서작성이라고, 학교에서 별 생각 없이 했던 공기통 충전도 여기서는 대장을 작성해야 했다. 출동이 없어도 모두 다 컴퓨터를 잡고 업무를 보고 있었고 다들 바빠 보였다. 한컴이나 엑셀 같은 프로그램이 쥐약인데 큰일이라는 걱정도 했다. 발령받는다면 문서를 많이 작성하고 연습해서 하루빨리 능숙하게 다룰 수 있어야겠다.

나의 2주 동안의 실습만으로도 벌써 A4 용지 한 장을 채울 정도가 되었다. 많지 않은 출동이지만 처음이었다. 그래서 느끼는 것도 많았고 흥미롭고 떨렸다. 더 많은 출동을 나가고 싶었지만 나가면서도 내가 가서 무얼 할 수 있지 라는 자문에 아직은 욕심이라는 생각을 했다. 정식발령 받고 현장에서 내가 뭘 할 수 있을까 라는 자문에 확신 있게 답할 수 있는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 그날을 위해 많이 노력하고 또 익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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