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헌태논설고문

그동안 뜨거운 쟁점이 되어왔던 정신질환의료급여 수가가 드디어 10년 만에 인상되게 되었다.
양질의 진료환경을 저해하는 전근대적인 제도가 꿈쩍도 하지 않다가 개선 쪽으로 방향을 선회했다는데 획기적인 조치로 평가를 받고 있다. 드디어 정신질환 의료급여수가가 물가인상 등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이하 건정심) 상대가치 점수제에 매년 연동된다는 점에서 새로운 전환점을 맞고 있다. 대략 2.27%에서 2.29%정도의 수가가 인상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보건복지부가 그동안 정신분야의 장기과제로 뜨거운 쟁점이 되어 왔던 수가 문제와 식대문제를 해결하는 의료급여수가의 기준 및 일반 기준 일부개정안을 고시하고 오는 8월 1일부터 시행에 들어가기로 한 것이다. 의견도 수렴하고 있다.

이 소식은 그동안 틈만 나면 시정을 촉구하며 장기간에 걸쳐 부당성을 주장해 오던 정신분야 의료기관과 정신보건 가족들이 한꺼번에 체증이 내려가는 듯 일제히 환영하고 나섰다. 의료급여 환자가 정신질환자들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사실 만시지탄의 감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정신질환의료급여 환자들의 차별 진료의 원흉으로 지목된 가장 악랄한 수가제도는 일반 보험환자의 50여% 수준으로 치료를 받으면서 정신의료기관과 당사자 가족, 일반국민에 이르기까지 대립과 반목이 끊이질 않는 갈등요인이 바로 이것이었다. 이른바 정액수가제도이다. 그리고 이는 헌법소원에 까지 이르고 있다. 현재는 헌법재판소에 4년째 계류 중으로 조만간 어떻게든 결판이 날 것으로 보인다.

대한민국의 정신건강 분야는 정신질환자의 치료환경에서부터 자립재활, 사회복귀에 이르기까지 참으로 많은 산적한 문제를 안고 있다. 그래서 정부와 정신병원, 정신질환자, 일반 국민에 이르기까지 정신분야는 아직도 난마처럼 얽혀져 대립과 반목의 끊이질 않는 갈등이 지속되고 있다.

의료급여환자의 정액수가 및 차별 진료 식대문제 등은 의료기관이나 당사자 가족들의 장기 민원을 촉발했고 급기야 복지부 앞에서 대규모 집회까지 열어 성토를 하고 나서기도 한다. 2016년 2월 25일 정신장애인(정신질환환우)의료급여 정액수가 개악시도 규탄대회 및 진료차별철폐 범국민궐기대회, 2018년 6월 5일 정신장애인 인권유린 차별철폐와 정책촉구를 위한 전국가족 규탄대회가 바로 그것이다. 모두가 사상 최초의 집회였다.

이런 일련의 장기 민원을 겪어왔던 보건복지부의 이번 의료급여수가의 개정이유를 보면 나름대로 고심한 흔적이 엿보인다. 합리적인 의료급여 이용을 도모하기 위한 것이라는 점이다. 특히 주목을 끌고 있는 조항은 정신질환의 입원료에 대하여 수가인상과 함께 금액제에서 점수제로 변경하여 매년 건강보험 수가 인상률만큼 반영될 수 있도록 하며 식대수가를 인상하는 한편 정신질환외래 진료시 약제투여에 있어 직접 조제로 한정하는 문구를 삭제하여 건강보험과 동일하게 변경한 것이다. 1976년 10월 28일 정신병구료환자진료의뢰권이란 이름으로 무료진료가 시작된 의료급여가 오늘에 이른 것이다.

정신질환 분야의 주요내용을 보면 우선 정신질환 외래 진료시 약제 직접조제로 한정하는 문구를 삭제하되 장기 과제로 뜨거운 쟁점이 되어 왔던 정신질환 입원(낮병동, 외박수가 포함) 수가인상 및 1일당 정액수가 기준을 금액제에서 점수제로 변경하는 것이 주요 골자이다.

하지만 징벌적인 차별로 불평등과 인권침해논란을 불러왔던 의료급여 식대금액도 인상하는 것으로 되어 있지만 정신질환자의료급여 식대와 타질환 의료급여 식대를 동일시 한다는 것인지 아니면 따로 정한다는 것인지가 불분명한 것이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풀어서 보면 타질환 의료급여 환자들의 식대가 3,740원으로 300원인 8.7%가 인상된 것을 감안하면 향후 의료급여 정신질환자 식대를 현재 3,390원에서 3,740원으로 타 의료급여 환자 식대수준으로 개선하고 의료급여 정신질환 입원환자에게만 차별 적용되어 입원기간별 15%까지 식대가 차감되는 문제가 여전히 미제로 남아 있는 것이다. 이는 아직도 건강보험 환자의 식대에 비하면 역시 터무니없는 수준이다.

우리나라는 정신병원을 찾는 환자들이 200만 명에 달하고 있지만 이것은 20% 정도에 그친 수치이고 800만 명에서 천만 명에 이르는 국민들이 잠재적 증후군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건복지부의 역할 조사에서 나타나고 있다.

전 국민의 20% 이상이 정신적 문제를 갖고 있다는 놀라는 결과이다. 때문에 언제든지 환자가 될 수 있다. 우리나라 정신장애인의 증가 속도는 교통장애인과 더불어 최고로 많은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조현증은 물론 불면, 우울, 알코올 중독, 충동장애, 사이코패스, ADHD 등에 이르기 까지 많은 정신질환의 요인들이 도사리고 있는 것이 바로 우리의 사회이며 정신건강 문제는 비단 환자들만의 문제가 아닌 오늘날이다. 사회적 경제적 가정문제 등의 충격에서 빚어질 수도 있으며 그런 사회에 우리는 살고 있다. 정신질환환우들의 인권은 물론 진료서비스 향상은 시대적인 과제로 대두되고 있다.

정신건강정책연구소가 밝힌 자료에 따르면 2014년 우리나라의 국민 일인당 정신건강에 소요되는 비용은 년 $44.8 로 비교국가 평균 $185.6 의 24% 수준이다. 특히 스웨덴의 $330.9 에 비해서는 13.5%, 미국 $272.8 대비 16.4%, 가까운 일본의 $153.7 비교 29% 수준으로 우리나라의 국민 일인당 정신건강에 투여되는 비용은 대단히 열악한 수준임을 알 수 있다.

국민 일인당 총건강비용 중 정신건강에 투여되는 비용의 수준은 4.01%이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2.38%로 비교국가 평균 대비 59% 수준에 불가함을 볼 수 있다. 우리나라의 국민 1인당 정신건강에 소용되는 비용을 1이라고 할 때 스웨덴은 7.39배, 영국은 6.20배, 미국은 6.09배, 일본은 3.43배 이며 비교국가 평균은 4.14배 높음을 볼 수 있다. 아직도 갈 길이 멀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물론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을 것이다. 그래도 복지부의 이번 조치는 매우 고무적으로 평가되고 있다. 1300여 회원병원을 갖고 있는 사단법인 대한정신의료기관협회는 환영의 뜻을 나타내며 반겨하고 있다. 그동안 경영악화 등 엄청난 어려움에 시달려온 정신의료계의 현실을 감안하면 그 반기는 이유가 충분하다고 본다. 특히 양질의 의료서비스를 제공하여 진료차별문제를 바로 잡을 수 있는 전환점을 맞았다는 점에서 복지부의 이번 조치를 받아들이는 수용자세가 남다를 수밖에 없다. 10년 장기민원이 다소나마 해결되었다는 안도감이 절박한 경영환경에서 나오고 있는 것이다. 나름대로 향후 긍정적인 변화를 모색할 수 있다는 점에서 감동과 안도, 위로, 격려 등의 반응들이 쏟아지고 있는 것도 바로 이런 연유에서 비롯된다.

물론 더 나은 양질의 진료환경 조성으로 모든 국민들이 건강하게 나아가는 것이 기본이 되어야 한다. 같은 국민으로서 정신질환자라는 이유만으로 불평등과 차별 진료의 굴레를 씌우는 것은 지난 해 5월 30일부터 시행된 정신건강증진 및 정신질환자 복지서비스 지원에 관한 법률 (약칭: 정신건강복지법)이 추구하는 이상향이 아니다.

다시 한 번 살펴 보건데 정신건강복지법의 기본이념은 “첫째가 모든 국민은 정신질환으로부터 보호받을 권리를 가진다. 둘째가 모든 정신질환자는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보장받고, 최적의 치료를 받을 권리를 가진다. 셋째가 모든 정신질환자는 정신질환이 있다는 이유로 부당한 차별대우를 받지 아니한다.”라고 분명히 명시되어 있다. 차별 없이 최적의 진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는 법이다.

지난 6월 5일 복지부 앞에서 사상 최초의 집회를 가진 전국정신장애인가족연대는 “만시지탄의 감은 있으나 진료환경개선과 진료차별을 해소한다는 측면에서 적극 환영하며 앞으로 정신질환자들의 진료차별과 인권 그리고 정책참여를 위하여 목소리를 계속 낼 것이다.”라고 밝히고 있다. 특히 이들은 치료와 재활, 사회복귀에 이른 과정에서의 정책 참여를 강력히 요구하고 있다. 단순히 치료차원에서 벗어나 당당히 사회일원으로 나설 수 있도록 정책적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는 주장으로 국가와 사회 모두가 공동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점이 초점이 되고 있다.

이번 복지부의 의료수가 인상 결정은 정신질환자들을 위한 정책적 배려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이런 차원에서 정신의료기관이나 가족들의 크게 환영하며 반기는 이유이기도 하다. 특히 복지부의 열린 행정이 시작되었다는 점에서도 국민정신건강의 새로운 전환점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제 시작이다. 복지부나 관련 기관, 당사자들이 정신분야에 산적한 많은 문제들을 함께 고뇌하고 해결한다면 그동안 쌓였던 묵은 적폐들이 모두 청산되고 국민정신건강의 새로운 시대를 맞을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차원에서 복지부와 의료기관, 당사자 가족들 모두에게 상생과 화합의 신호탄이 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충만한 것도 그 의미가 매우 크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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