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헌태 논설고문

이번 6.13지방선거를 보면 언제나 그랬듯이 유권자들을 헷갈리게 하는 투표양태가 거듭되고 있어 안타깝다. 무려 7장의 투표용지를 받아든 유권자들이 기표소의 체류시간이 생각보다 길다. 그만큼 신중하다는 것이 아닐 수 없다. 많게는 지역에 따라 9장도 있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까 누군지도 모르는 이름에 기표를 하고 나서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이른바 ‘깜깜히 선거’다. 누구를 찍을지 전체적으로 생각을 하지 않고 주요인물만 머리에 담고 있다가 줄줄이 찍어대는 ‘묻지 마 투표’ 양태가 재현되고 있다. 여기에는 인물검증이나 정책은 보이질 않는다. 그저 번호만 기억하고 같은 번호만 찍는 사람에서부터 이 사람저사람 찍어대는 사람에 이르기까지 그 양태도 다양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특히 기득권정당들의 프리미엄 선거가 예나 지금이나 그대로다. 이것이 마치 정책이 잘되고 정치를 잘해서 찍는 것으로 착각하면 안 될 정도이니 민주선거의 기본이 아닌 것 같다. 최선이 아니면 차선이라고 했지만 그래도 이런 선거로는 진정한 지방자치와 풀뿌리 민주주의를 성숙시킬 수 없다는 점은 분명하다. 어쩌다 이 지경이 됐나 모르겠다.
혹자는 차분한 가운데 질서있게 투표가 진행되고 있다고 할지 모르지만 이것은 분명 국민들의 올바른 선택에 걸림돌이 되고 군소정당들의 후보들에게는 자괴감이 들지 않을 수 없는 ‘묻지 마 선거’ 양태임은 분명하다. 거대정당들의 중앙정치에 흔들리며 지방자치 선거가 ‘묻지 마 선거’가 된다면 그것은 분명 문제가 있는 것이다. 이런 선거는 진정한 일꾼을 뽑는데 분명 걸림돌로 작용하고 그 피해는 결국 주민들에게 돌아갈 뿐이다. 이는 과거의 사례에서도 여실히 교훈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투표율을 높이기 위해 지난 지방선거부터 사전투표제가 도입되었지만 한 묶음을 받아든 투표용지가 버겁게 느껴지는 유권자들의 모습들을 보면 과연 올바른 선택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는지 우려스럽기 짝이 없다.
지방자치제가 도입되어 주민들의 손으로 지방을 다스리는 시대가 7회째를 맞고 있지만 과연 진정한 지방자치가 뿌리를 내렸는지는 의문이다. 독일의 지방자치가 무보수 명예직으로 마지막으로 지역사회에 봉사하기 위해 나서고자 하는 그야말로 인생의 마지막 봉사자 일꾼들이 많다는 사실이 부럽기만 하다. 우리의 지방자치는 일꾼과 머슴이라기보다 감투싸움을 벌이는 이전투구의 장을 방불케 한다. 봉사해야 할 사람들이 서로 나서서 난리법석이 아니다. 정당에서도 제대로 검증되지 않은 후보들을 내세워 놓는 바람에 선거기간 내내 갖은 의혹이 증폭되고 피곤한 논쟁이 지속되는 현상은 가히 전쟁터를 방불케 한다. 거짓과 허상의 인물들이 그럴듯하게 포장되어 유권자들을 기망하는 사태가 이번 선거에서도 어김없이 벌어지고 있다. 그래서 우리나라 정치는 국민들의 지탄의 대상이 되어오고 있는 모양이다. 그런데도 선거철이면 양분화 되어 이분법 사회의 악순환이 거듭되고 있으니 지방선거 이후가 더 더욱 걱정된다.
이제 정식 투표일이 2일 앞으로 다가왔다. 사전투표제가 20.14%로 지난 4년 전보다 8.65%p 높은 투표율을 보이고 있다고 한다. 투표율만을 갖고 유·불리를 따질 일이 아니라 이번 선거가 진정한 민주주의의 꽃을 피우는 축제가 될 수 있도록 막바지 더욱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70∽80%의 투표율도 중요하지만 과연 이번 선거가 얼마나 ‘묻지 마 투표’나 ‘깜깜히 투표’로 이름도 정책도 파악도 되지 않은 사람들에게 표를 던졌는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실제 이름도 모르고 투표장에 들어가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한다. 그냥 투표용지를 받아들고 현장에서 투표를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하니 어르신들의 투표가 제대로 이뤄지고 있는지도 걱정이 앞선다.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이라고 했다. 지금 이 순간 현장을 누비면서 이 무더위에 굵은 땀방울을 흘리는 후보들도 결코 실망하거나 좌절하지 말고 마지막까지 정정당당하게 최선을 다하길 바란다. 우리 유권자들에게 끝까지 이름을 알리고 인물과 정책을 보고 뽑을 수 있도록 해야 ‘묻지 마 투표’, ‘깜깜히 투표’를 막을 수 있다. 이런 선거는 민주주의의 해악일 뿐이기 때문이다. 유권자들의 올바른 선택이야 말로 지방자치를 더욱 성숙시킬 수 있는 것이다. 그렇지 않을 경우 선거이후 엄청난 후폭풍으로 지방자치가 요동칠 수 있다. 바로 요즘에 이런 조짐들이 곳곳에서 보이고 있다. 선거이후 등장할지 모르는 반대파들에 대한 보복성 행정이나 불이익이 분명히 이어질 것을 우려하는 시각도 팽배하다. 이런 지방자치는 스스로 발등을 찍는 어리석은 우(愚)에 지나지 않지만 말이다. 진정한 민주주의의 축제가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어야 한다. 지방자치 선거는 일꾼을 뽑는 것이지 입신양명 (立身揚名)의 인물이나 주민위에 군림(君臨)하는 인물들을 뽑는 선거가 아님을 분명히 직시해야 한다. 우리나라 헌법 제 1조에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며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을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라는 조항을 상기해야 한다. 투표를 하는 주민들이 곧 이 땅의 주인이라는 사실을 한순간도 잊어서는 안 된다. 주인이 일꾼을 함부로 뽑으면 더 더욱 안 되는 것이다. 지방자치 일꾼들은 더욱 겸손하며 봉사정신이 투철하고 근면성실해야 할 것이다. 어느 누가 주인의 선택을 받더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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