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재룡 경희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고질적 ‘갑질’ 문제가 최근 대한항공 오너 일가의 막말로 인해 또 다시 세상의 공분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정신심리 전문가들은 갑질하는 그들의 행태를 두고 ‘분노조절장애’라는 진단을 내린다. 이들이 화가 나는 상황에서 감정조절 능력이 떨어져 주변인들에게 정신적, 신체적, 물리적 피해를 주게 되었다는 것이다. 맞는 말이다.

그동안 문제가 되었던 다양한 갑질의 행태를 보면 적어도 그 갑질하는 자들이 보통 사람들이 갖고 있는 역지사지의 공감능력을 갖지 못하고 있는 듯이 보인다.

하지만 그들의 갑질 행위의 대상이 자신들보다 사회적 지위가 낮은 사람들에게 맞춰져 있다는 점에서 우월적인 사회위계의 힘을 이용한 차별적 횡포임을 알게 된다. 이 점에서 갑질은 결코 개인 차원의 심인성적 문제가 아닌, 사회 구조적이고 집합적인 문제로 이해된다.

최근 한 리서치기관의 조사에 의하면, 조사 대상자의 95.1%가 우리 사회의 갑질 현상이 아주 심각하다고 보고 있다. 이 사실은 갑질 현상이 우리 사회의 조직과 집단 도처의 일상 속에 편재해 있다는 것을 말해 준다. 그 예는 부지기수다.

대한항공 오너 일가가 보여준 갑질은 직장의 ‘상사-부하’간 갑질의 전형이지만 예컨대, ‘발주회사(직원)-수주회사(직원)’, ‘고객-직원(판매원, 승무원)’, ‘(군대, 체육인)선임자-후임자’, ‘영화감독(PD)-(여)배우’, ‘교사(교수)-학생’, ‘남자-여자’, ‘어른-어린이’ 등과 같은 차별적 위계의 이항대립의 관계 상황이라면 언제 어디서든지 발생한다. 하다못해, 택배기사와 아파트 주민들 사이에도 갑질 시비가 일어난다.

심정적으로 소위 ‘갑질’을 하는 갑–개인이나 집단–의 횡포를 비난하고 그 갑질에 고통당하는 희생자 ‘을’을 일방적으로 동정하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그래서 마치 ‘갑’과 ‘을’은 전혀 서로 다른 별종의 사람들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특정 맥락에서 ‘을’의 위치로 인해 고통과 서러움을 당했던 어떤 개인이나 집단이 다른 맥락에서 ‘갑’의 위치가 되어 또 다른 ‘을’에게 ‘갑질’의 횡포를 가한다는 점에서 우리는 ‘을’인 동시에 또한 ‘갑’으로 살아간다.

예컨대, 발주회사 담당자(갑)의 갑질에 치를 떠는 수주회사 담당자(을)도 정작 자신에게 납품하는 또 다른 수주회사 직원(을)에게 이른바 ‘갑질’을 행사하기도 한다. 또는 대한항공 오너 일가의 ‘갑질’에 분개하는 이들 중에 자신을 대하는 (음식점)종업원에게 곱지 않은 반말을 써가며 온갖 진상(갑질)을 떠는 ‘갑’이 되기도 한다.

이 사실은 우리 사회의 ‘갑질 문제’가 개인 차원의 심리·정서적 태도나 자질의 문제가 아닌 ‘문화적 경향성’의 문제라는 것을 말해 준다. 어떤 이들은 우리의 갑질 문화의 뿌리가 근대화(경제적 고도성장) 과정을 거치며 자리 잡은 금권(만능)주의적 자본주의의 규범에 있는 것으로 진단하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의 ‘갑질 문화’의 뿌리는 역사적으로 그 보다 훨씬 깊다. 길게 말할 수는 없지만 무엇보다도 그 뿌리는 유교의 차등적 윤리규범에 기초한 형식·위계적 권위주의 문화에 있다. 이 위계적 권위주의 문화는 우리 사회 속에 차별·억압적이고 권위주의적인 위계적 지배구조의 일상화를 형성하는 데에 큰 영향을 미쳤다.

예컨대, 연공서열, 직업귀천, 남녀차별, 노소차별 등과 같은 강력한 위계·차별적 문화적 경향성이 그것이다. 이 문화적 경향성은 침투적이고 아주 완강하게 작용하기 때문에 아무리 경제가 발전하고 제도적 민주화가 이뤄져도 그 추세와 항존성은 크게 바뀌지 않는다.

이 문화적 경향성은 오늘의 한국인들이 왜 그렇게 권위와 권력, 곧 힘의 우열과 서열, 그리고 그와 관련된 문화적 자본의 획득에 강박적으로 집착하는지에 대한 이유와 배경을 말해준다. 한국학자 최봉영은 이와 같은 차별·위계적 문화적 토대에서 세계적으로 유별난 존비어 체계가 한국 사회에서 발전했다고 본다.

우리는 언제나 존대 받지 않으면 하대 받아야 하는 극단의 선택을 강요받는 까닭에 모두들 존대 받는 사람이 되려고 목숨을 걸고 권력, 출세, 학벌, 권위에 매달리게 된다는 것이다. 때문에 우리는 타인을 나와 동등한 인격체로 바라보지 않는 경향에 익숙해져 있다.

부지불식간에 우리는 자기 스스로를 자신보다 지위가 낮은 다른 사람과 구별하고 내가 그(들) 보다 우월하다는 것을 드러낸다. 이른바 ‘차별적 과시’를 통한 ‘구별 짓기’를 한다. 곧, 위계적으로 우월한 나를 증명하고 견지하기 위해 낮은 지위의 사람(들)을 무시하고 비하하고 조롱하며 때론 막말을 하기도 한다.

사회학자 김찬호는 이 무시와 비하와 조롱의 문화가 한국인의 일상을 지배하고 있다는 점에서 한국 사회를 ‘모멸감의 사회’로 규정한다. 이 모멸감의 사회에서는 모멸당하지 않기 위해 모멸을 서슴치 않는 자기모순의 ‘모멸의 정치학’이 일상적으로 작동한다. 어느 조직이나 집단에서든지 또는 모임에서든지 경중의 차이는 있지만, 그 모멸감을 주고받으며 살아가게 된다는 것이다.

갑질의 횡포는 이와 같은 한국 사회의 위계·차별적 문화의 집합적 경향성을 반영하는 행태이다. 한국인이라면 그 누구도 이 문화적 경향성의 자기장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하지만 한 사회의 문화적 경향성이 쉽게 바뀌지 않는다는 점에서 우리 사회의 ‘갑질 문화’가 그렇게 쉽게 사라질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우리의 상식과는 다르게 이른바 제도·정책적 해법만을 가지고는 결코 갑질문화를 근절할 수 없다. 이보다 훨씬 근본적이고 중요한 것은 문화적 해법 그리고 이와 연결될 수 있는 지역 사회적 해법이다. 이를 차례로 얘기해보자.


먼저, 제도·정책적 차원의 해법은 즉각적·가시적으로 실천될 수 있는 방법이다. 무엇보다도 갑질을 폭로·고발하는 ‘을’을 보호하고 또한 ‘갑’에 대한 처벌을 실효적으로 분명하게 하기 위한 관련법과 규정들을 마련하거나 보완해야 한다.

특히 갑질 폭로 이후에 폭로자나 배신자로 낙인(오명)찍히며 2차적으로 피해–주로 정신심리적 고립 및 법적쟁송에 빠지는 어려움-를 입게 되는 ‘을’에 대한 직장 보호·위안 체계 및 법률적 지지·후원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이렇게 되면 수면 밑에 가려져 있는 더 많은 갑질들의 실체가 드러나게 될 것이다.

다음으로 문화적 해법은 ‘갑질’의 사회적 문제점과 그 비인권적 및 범법적 문제점을 경고하고 토론하는 시민문화 의식과 태도를 형성(함양)하는 것과 연관된다. 이를 위해 과거처럼 00캠페인을 한다든지 00발대식 행사를 벌인다든지 하는 것은 구시대적 발상이다.

대신에 시민사회 또는 공(공)적 영역에서 이른바 ‘反-갑질’ 문화담론을 형성해 이 담론에 대한 서사와 쟁점들이 (지역)사회 및 일상적 삶의 영역에서 다양하게 지속적 작동되도록 하는 방법–논의, 토의, 회의, 강연 등-을 강구해야 한다. 온오프라인을 두루 활용해 세대별 지역별 직능별로 각 장의 특성과 연관되는 구성 방식이 필요할 것이다.

이 ‘반-갑질’ 문화 형성의 해법 및 실천과 밀접하게 연결되는 영역이 시민(사회)단체들이다. 시민단체를 활용하는 과제는 사실 지역사회(지방자치단체)의 몫이다. 위에서 언급한 갑질 폭로자인 ‘을’에 대한 보호뿐 만아니라 그 이전에 갑질의 횡포를 감내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폭로하도록 지지하고 후원하는 일은 지역사회의 차원에서 이뤄질 때 가장 효과적이다.

폭로를 앞두고 고민하는 ‘을’이 사전상담을 할 수 있도록 하여, 예컨대 폭로 이후의 벌어지게 될 정신 심리적 상처(고립) 치유라든지 혹은 (강제)퇴직으로 인한 경제적 어려움, 그리고 폭로이후 겪게 될 수 있는 법적쟁송의 대응방법 등을 도와주는 방법 등이 해당된다.

이와 같이 제도·정책적 차원의 해법과 더불어 문화적 차원의 해법이 장기 지속적으로 추구될 때 서서히 갑질과 관련된 우리의 시민의식과 태도의 변화가 일어나게 될 것이며, 이를 통해 ‘갑질 문화’를 낳아 온 전근대적 뿌리를 갖는 문화적 경향성이 ‘反-갑질’ 문화의 경향성으로 서서히 전환되어 갈 것이다.

저작권자 © 대전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