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남도서천교육지원청 교육장 신경희

올 봄엔 유난히 비가 잦았습니다. 해서인지 주변의 연두들이 초록 옷으로 갈아입는 시간도 앞당겨진 느낌입니다. 쑥쑥 자라난 후박 잎이며 감나무 잎에 비가 내리면, 파문처럼 레코드판처럼 회전하며 젖은 소리들이 들려옵니다. 그칠 줄 모르는 소리에 주변이 눅눅해지고 나도 이유 달지 않고 함께 젖습니다.

침묵하고 서 있는 젖은 초록들의 무게로 어깨가 무거운 날이면, 그리움이 도진 참죽나무 숲처럼 마음도 아파옵니다. 이슬을 털며 산길을 내려오는 여승의 설움에 진 머루 빛 눈동자, 창백한 얼굴처럼 너무 애지고 막막해집니다. 바쁘게 돌아가던 물레방아가 멈춰진 듯 갑작스레 여유로운 시간이 생기는 날이면 더욱 그렇습니다.

인간사 원래 그런 것인지 늘 부산합니다. 내 마음도 내 마음대로 되지 않습니다. 누군가 바쁜 내 마음을 잠시 ‘멈춤’ 해주었으면 좋을 때가 있습니다. 어느 날인가는 이런 날도 다 있나 싶었습니다. 최근 종영된 드라마 <나의 아저씨> OST(오리지널 사운드트랙 Original Soundtrack) ‘내 마음에 비친 내 모습’을 십 수번을 들을 수 있었으니까요.

<나의 아저씨> 드라마는 삶의 무게를 버티며 살아가는 아저씨 삼형제와 거칠게 살아온 한 여성이 서로를 통해 삶을 치유하게 되는 이야기를 그린 드라마로 매주 수요일과 목요일 밤이면 우리 부부를 꼼짝없이 TV 앞에서 젖어들게 만들었답니다.

화려한 영상도 없고 트렌드 한 설정도 없었습니다. 화면은 흑백사진에 가까우리만치 어두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젖어들게 만든 건, 보는 이들에게 사람 사는 냄새를 풍겨준 탓이라 여겨집니다. 회가 거듭되면서 중간 중간 무심코 흐르던 OST가 귀에 익어 갈 때쯤 막을 내리니 무척 아쉽기도 했습니다. 들을 때마다 부르는 이와 노랫말이 궁금했고, 한 번쯤은 처음부터 끝까지 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렇지 못하던 차였습니다.

일터에서 일정대로 움직이다 갑작스레 살아나는 시간은 덤인 듯 고맙기 그지없습니다. 큰 맘 먹고 드라마 OST를 찾아보니 곡목은 <내 마음에 비친 내 모습> 노랫말을 처음부터 끝까지 듣고 나니 들을 때마다 왜 그리 가슴 속 깊은 곳까지 절절히 파고들며 연말같이 허전했는지를 새삼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어쩌면 꽃과 같은 삶과 꽃일 수 없는 삶과의 갈등 사이 길 위에서 쩔룩거리며 서 있는 내 모습이 클로즈업 되어 더 절절하게 마음이 애 졌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짜여 진 일정 속에 묻혀버리지 않고 덤으로 살아 난 시간, 오랜만에 영혼까지 흠뻑 젖을 수 있어 얼마나 편안하고 행복했는지 모릅니다. 이런 것이 바로 작지만 확실한 행복(소확행)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어느새 유월이 코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세상이 온통 새파란 젊음으로 뒤덮였습니다. 초록 옷을 입고 빨간 립스틱 짙게 바른 덩굴장미들이 참으로 황홀합니다. 유월엔 본래 마음의 자리로 돌아가는 일에 더 중심을 두고 살아 야겠다 생각합니다. 본래 마음의 자리는 깨끗하고 맑고 밝습니다. 닥쳐오는 일의 고비나 곤란함을 넘기기도 하면서, 조금은 과장되게 씩씩하고 호방한 체도 하면서 그렇게 젊은 유월을 맑고 밝게 살아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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