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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읽는다는 것충남 서천교육지원청 교육장 신경희
이정복  |  conq-le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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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5.13  17:3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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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록을 바라다보면 내가 살아 있다는 사실이 참으로 즐겁다. 내 나이를 세어 무엇하리. 나는 지금 오월 속에 있다. 연한 녹색은 나날이 번져 가고 있다. 어느덧 짙어지고 말 것이다. 머물 듯 가는 것이 세월인 것을~ (중략)’ 피천득 시인의 <오월> 시(詩)를 다시 읽습니다. 비 그치고 난 오월의 둘째 주일 오후, 바로 지금 딱 어울리는 그런 모습입니다.

내친 김에 읽은 책들을 다시 뒤적뒤적 읽었습니다. 밑줄을 그어 두었던 문장들은 모래화석이 되어 있습니다. 그 것들을 소리 내어 읽었습니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저자가 만들어 놓은 방으로 들어가는 것과 같습니다. 그 방을 구경하면서 전에는 생각지 못한 현상이나 사실을 보고 느끼고 경험을 하게 됩니다.

나는 두꺼운 책을 읽을 때는 소리 내어 읽지 않습니다. 두꺼운 책을 소리 내어 읽는 것은 책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적혀있는 것 같아서입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는 두꺼운 책은 앙다문 입술 같아서입니다. 앙다문 입술에서는 소리가 나올 수 없으니까요. 내 머릿속으로 구르는 검은 잉크의 언어 알들이 지칠 줄 모르는 고뇌의 물살에 휩쓸려 내가 그냥 책 속으로 들어갑니다. 그런데, 모래화석이 된 문장들을 소리 내어 읽으니 좀 색 다릅니다.

더욱이 이상한 건, 처음 읽을 때 책을 읽다 끌어안고 같이 죽고 싶은 글귀를 만났다 싶어 밑줄 쫘~아악 하고도 모자라 노트를 펼치고, 단숨에 필사를 했던 문장들이 아무렇지 않게 다가오는 것이었습니다. 책은 그대로인데, 다시 읽으니 정말 그렇습니다. 가끔씩 찾는 산사도 그렇습니다. 다시 찾아가면 새로운 것들이 보입니다. 다시 읽고, 다시 찾으면서 잠자던 눈이 깨어납니다. 읽은 책을 다시 읽으니 같은 책, 다른 행복을 만날 수 있는 시간이 만들어집니다.

‘책을 다시 읽는 일은 오래전에 갔던 산사를 다시 찾아가는 일과 같다. 전에는 안 보이던 빛바랜 단청이며 뒤뜰의 부도 탑이 어느덧 들어온다.’던 어느 작가의 글귀가 불현 듯 떠올랐습니다. 자연스레 조선시대 독서광 김득신의 억만제(億萬齊) 일화까지 딸려 나옵니다. ‘억만제’는 김득신이 한 책을 선택해서 만 번을 넘지 않으면 글 읽기를 멈추지 않았다는 데서 그의 집(서재)에 붙여진 이름입니다.


그는 사마천의 사기 중‘백이전’을 특별히 좋아해 1억 1만 3천 번을 읽었다고 합니다.
그 당시에는 10만을 1억으로 계산하였다고 하니 지금으로 따져 봐도 11만 3천 번을 읽은 셈입니다. 또한 한유의 <사설>도 1만3천 번, <노자전>은 2만 번을 읽었다고 하니 그의 독특한 독서법에 그저 놀랍기만 합니다.

요즘 같은 시대에 책을 그렇게 읽을 수는 물론 없습니다. 그렇지만 한 권의 종이책이라도 읽기를 권하고 싶습니다. 디지털에선 종이가 바삭거리는 지, 반들 하게 윤이 나는지, 표지의 촉감은 어떠한지 그런 것들을 절대 느낄 수 없으니까요. 책을 열어 종이를 한 장씩 손으로 넘기는 일, 다음 장을 넘기기 위해 책장 모서리 위에서 머뭇거리고 있는 시간, 그런 것들이 진정 여백이 있는 삶으로 인도해 주리라 믿습니다.

몇 년 전, 김영하 작가 북잼콘서트가 열렸습니다. ‘읽는 것’ 우리가 책을 읽는 진짜 이유라는 주제로 토크콘서트가 있었습니다. 김 작가는 “꿈은 깨고 난 뒤 다음날 이어서 꿀 수 없는데, 책은 가능하다는 것. 책은 특히 남과 다른 생각을 하게 만든다. 이러한 불온함은 지배자들이 책을 금지한 이유와도 맞닿아 있다. 결국 책을 읽는다는 것은 독서를 통해 자아가 분열되고 해체될 것을 예감하면서도 용감하게 책장을 펼치는 것이며 그 과정에서 비롯되는 괴로움과 싸우면서도 오히려 즐기는 행위라는 것” 이라고 책읽기의 즐거움을 꿈에 빗대어 설명했습니다.

눈부신 색의 몸살로 스스로 깊어지는 초여름의 문(門) 오월, 초록의 길 위에서 아카시아 꽃 다문다문 물고 용감하게 책장을 펼치며 한 잎 한 잎 마음의 안채에 수를 놓고 싶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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