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부 김민선 기자


당나라가 멸망하고 오대십국의 혼란을 겼었는데 이 혼란을 북송(北宋)이 정리한다. 북송은 당문화를 수용했고, 경제와 문화는 당나라 때보다 더 발달하게 된다. 농업, 수공업, 방직, 야금, 석탄과 도자 공예가 빠르게 발전하였다. 또한, 인쇄술, 화약, 나침반의 3대 발명품은 북송 시대의 과학발전의 모습을 보여준다. 송나라의 사문학인 송사(宋詞)도 발전을 하였다. 그리고 이 당시에 차문화가 발전하여 차가 생활의 필수품이 되었다.
경제와 문화에 대한 발전이 한창 이뤄지던 때, 여진족이 세운 금(金)나라가 쳐들어왔다. 북송은 금나라에 의해 멸망하게 되고, 휘종의 아홉째 아들이 남쪽으로 옮겨 송나라를 재건했는데 역사적으로는 이때의 송나라를 남송(南宋)이라고 부른다. 남송 역시 경제적, 문화적 발전을 이뤘다. 도자기업, 제지업, 인쇄업, 조선업, 방직업이 발전했다. 그리고 남송사(南宋詞)는 당시(唐詩)와 함께 중국 고대 문학사의 양대산맥 중 하나가 되었다. 하지만 칭기즈 칸의 원(元)나라에 의해 중국 역사 최초로 한족의 나라를 뺏기게 되었다.
원나라의 문화통치는 실패해 중국 문화에 동화되게 된다. 몽골족에게 뺏긴 나라를 주원장의 명(明)나라가 되찾게 된다. 명나라 때는 경제, 문화가 발전하였지만 과학 기술은 서양에 한참 뒤처진 상태였다. 명나라는 이후에 여진족 누르하치가 세운 청(淸)에 멸망하게 된다. 청은 중국대륙의 마지막 왕조이다. 청은 원나라처럼 중국문화에 동화되지 않기 위해 변발 등 문화를 강요하게 된다. 그래서 한족과 여진족 사이는 안 좋아지고 끊임없이 전쟁이 벌어지게 된다. 하지만 이후로 원나라는 내란을 평정하고 안정기를 맞게 된다.
강희, 옹정, 걸륭제 3대에 걸쳐 청나라 문화가 최대로 발달하게 된다. 이때가 청나라의 전성기였다. 이때 중국 고전 소설의 최고봉을 손꼽히는 조설근의 ‘홍루몽’이 쓰였다. 조설근은 열 살 때쯤 부유했던 집이 몰락했는데 이때의 극단적인 경험을 가상의 가씨집안의 영광과 몰락에 빗대어 쓰게 된다. 하지만 이 문학적 환상세계와 호응이라도 하게 된 것인지 이후에 청은 백련교도의 난을 시작으로 각지에서 민중 반란이 더욱 극성을 부리면서 통치력이 약화되었다. 이후 서양세계로부터 웨스턴 임팩트를 맞이해 아편전쟁이 발발하면서 혼란의 시기를 맞게 되었다.

저작권자 © 대전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