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부 김민선기자


위, 촉, 오 세 나라가 각축전을 벌이다 위나라의 문중 사마 씨가 천하를 통일하고 진(晉)나라를 세우게 된다. 하지만 천하를 통일한지 40년이 안돼 유목민의 침략으로 수도 낙양이 몰락하게 되고 남경으로 수도를 옮기게 된다. 수도가 낙양일 때를 서진(西晉)으로 부르고 남경으로 옮겼을 때를 동진(東晉)이라고 부른다.
진나라가 수도를 남쪽으로 옮기면서 남북 분열의 혼란기를 겪게 된다. 북쪽에는 흉노(匈奴) ·갈(羯:흉노족) ·선비(鮮卑:몽골계에서 온 돌궐족이라는 설이 있음) ·저(氐:티베트계) ·강(羌:티베트계)의 5호가 나라를 세웠다. 그 나라의 수가 16개국 정도 된다고 하여 이 시기를 5호 16국의 시기라고 칭한다. 중국 대륙에서 최초의 이민족들의 지배기가 시작이 되었다. 당시 남쪽에서는 한족 정권이 변천하고 있었다.
이후 출신이 미천한 유유는 세력이 약해진 동진을 격파하고 송(宋)나라를 세운다. 이후 반세기 동안 남쪽에는 제(齊), 양(梁), 진(陳)나라가 등장하게 되는데 이 4개의 나라를 남조(南朝)라고 부른다. 같은 시기 북방에는 북위(北魏)와 북제(北齊), 북주(北周)가 출현하는데 이를 합하여 북조(北朝)라고 부른다. 그래서 이 시기를 남북조 시기라고 한다.
581년에 북주의 양견이 정제를 폐위하고 스스로 황제가 된 후 국호를 ‘수(隨)’라고 했다. 양견이 바로 수나라 문제文帝이다. 그는 중앙집권을 강화하기 위한 정책들을 많이 폈다. 그 후 589년 남쪽에 남아 있던 진나라를 무너뜨리고 남북을 통일했다. 이후 수나라 양제(煬帝)는 큰 공을 세우는 것을 좋아해 큰 공사도 일으키고, 고구려를 침략하기도 했다. 하지만 고구려 침략은 을지문덕에게 패하면서 실패하게 된다. 그리고 이때의 전쟁을 살수대첩이라고 한다.
전쟁을 자주하다보니 수나라 곳곳이 황폐화되어 봉기가 일어나게 되고 점점 세력은 약해지게 된다. 이연이라는 사람이 황실을 몰아내고 당(唐)나라를 건립한다. 그 후 아들 이세민이 당태종이 되어 수확이 풍성하고 백성이 안락한 생활을 누리게 하였다. 당나라 때 중국문화가 가장 발달하면서 이태백의 시도 이때 등장하게 되고 문학, 종교, 예술은 오랫동안 전성기를 누렸다.
하지만 현종 때부터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그는 양옥한이라는 아들의 부인을 뺏는다. 그녀의 미모에 반해 먼저 절에 보내 비구를 만들고 후궁자리를 준다. 후궁자리는 현비, 매비, 숙비, 귀비 자리가 있는데 귀비 자리가 비어있어서 양옥한에게 귀비 자리에 앉혔다. 그래서 그녀는 양귀비라고 불리게 되었다. 귀비는 이름이 아니고 직위이름이다. 이때 안록산의 난이 발생하고 결국 오대십국의 난이 발발해 그 화려하던 당나라의 망조가 보인다.
당나라 말기 당나라의 선무절도사 주전충이 후량(後梁)을 세우고, 이어 후당(後唐), 후진(後晉), 후한(後漢), 후주(後周)가 등장하여 이를 오대(五代)라고 부른다. 그외의 지역에서는 전촉(前蜀), 오(吳) 등 10국이 등장하는데 역사에서 십국(十國)이라고 부른다. 그래서 시기를 5대 10국의 시기로 지칭한다. 960년 후주의 조광윤이 군대를 이끌고 공제에게 선양을 강요해 후주의 정권을 엉고 국호를 송(宋)으로 바꿔 5대 10국의 시기를 마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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