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부 김민선기자

문화부 김민선기자


중국의 시조라고 일컬어지는 인물은 바로 황제(皇帝)이다. 그는 우리나라의 단군처럼 중국 문명을 시작한 사람으로 추앙받고 있다. 황제 이후 성군 중의 성군으로 칭송받는 요임금과 순임금의 태평세대가 이어진다. 태평성대가 이루어질 수 있었던 것은 황하 강이 35년 주기로 범람을 하는데 요순시대 때는 범람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순임금 말에 6년 동안 홍수가 내려 누가 물을 다스릴 사람이 없을까 살펴보다가 우에게 물을 다스려보라고 한다. 이에 우는 13년 동안 연구한 끝에 물을 다스리는데 성공을 하고 순임금은 우에게 왕위를 물려주게 된다. 여름에 왕위를 물려주어 ‘하(夏)’나라라고 불리게 되었다. 하나라 때부터는 자손에게 왕위를 물려주게 되었다.
하나라는 결국 걸왕의 포압정치로 민심을 잃고 결국 상(商)나라에게 멸망하게 된다. 상나라의 마지막 왕인 주왕은 중국의 미녀인 달기에 마음을 빼앗기고, 주지육림(酒池肉林), 술로 채운 연못과 고기를 열매처럼 매단 숲을 만드는 등 사치와 포압정치를 하였다. 주(周)나라의 무왕에 의해 상나라는 멸망하게 된다. 이때 주요 공신 중 한 명은 강자인데 이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강태공이다.
주나라의 12대 왕인 유왕은 포사라는 미인에 빠지게 된다. 포사는 잘 웃지 않아 유왕은 그녀를 웃게 하려고 노력한다. 당시 위급함을 알리는 봉화가 있었는데 봉화에 연기가 나게 해 여러 신하들이 달려오는 것을 보고 포사가 웃었다. 그래서 유왕은 자주 봉화에 연기를 피웠고, 진짜로 필요할 때 신하들은 오지 않았다. 결국 다른 제후국의 침략을 받아 유왕은 죽게 되었다.
이후 평왕이 수도를 낙양으로 옮김으로써 동주(東周)시대가 열렸다. 동주시대는 전반기를 춘추(春秋), 후반기를 전국(戰國)시대라고 부른다. 주나라의 정치적 통치가 무너지면서 여러 지방 세력과 계층이 각자의 세력을 발전시켰다. 그 중 가장 세력이 강했던 7개 국가가 있었는데 진(秦)나라가 가장 세력이 셌고, 그 다음이 연(燕)나라였다. 그리고 이 당시의 제자백가라고 해서 공자, 노자, 묵자 등 다양한 학파와 학자들이 등장한다. 한편 연나라의 태자 단이 신하를 시켜 진나라의 왕을 암살하려하나 실패로 돌아간다. 이걸 계기고 진나라가 연나라를 침략하고 여러 국가를 통일한다.
이 때, 통일한 왕이 우리에게 익히 알려져 있는 시황제이다. 시황제는 여러 국가를 통일하면서 문자, 화폐, 도량형을 통일한다. 그리고 유학이 사람의 마음을 분열시킨다고 책을 태워버리고 제자백가를 다 묻어버린다. 이를 분서갱유라고 한다. 시황제를 위해 병마용을 만들고, 아방궁을 지으면서 백성들의 민심을 잃게 되고 농민의 반란이 일어나게 된다. 농민봉기로 국력이 약해진 상태에서 초(楚)나라의 유방의 공격으로 진나라는 멸망하게 된다.
이후에 초나라 출신 유방과 항우는 세력다툼을 한다. 항우는 수차례 유방을 없애려 했으나 장량과 한신 등 훌륭한 신하를 둔 유방은 신하들 덕분에 목숨을 구한다. 한신은 배수진을 처음으로 전략을 쓴 사람으로 초나라 출신의 병사들을 뽑아 초나라 노래를 부르게 해 적의 마음을 흔들어 놓았다. 이때 사방에서 초나라의 노래가 들린다고 하여 사면초가라는 성어가 등장하게 된다. 항우는 결국 자결하고 유방은 한(漢)나라의 개국황제가 된다.
한나라는 중간에 잠깐 생겼던 신(新)나라를 기준으로 서(西)한과 동(東)한으로 나눌 수 있다. 동한 후기에는 환관(내시)들이 득세하게 되고, 질병이 돌면서 그 질병을 치료해주던 태평도의 교주가 인기가 많아지게 된다. 어느새 신도가 30만명을 넘어 전국에서 동시에 반란을 일으키게 된다. 반란을 제압으로 조조가 대두되기 시작한다. 그리고 동시에 동탁은 대권을 장악하게 된다. 왕윤이 거짓조서를 꾸며 여포가 동탁을 죽인다. 그리고 동한 말기에 각지에서 세력이 들고 일어나 서로 천하를 놓고 쟁탈전을 벌이게 되는데 그 분쟁이 어느 정도 마무리되면서 조조의 위(魏), 유비의 촉(蜀), 손권의 오(吳), 세 나라로 정리되고 삼국시대를 맞이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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