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투데이
기획특집교단에세이
봄바람 타고 날아 온 책충남 서천교육지원청 교육장 신경희
이정복  |  conq-lee@hanmail.net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18.04.16  14:41:50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요즘 네이버 구글 msn
   
 

모든 것들을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고, 판단해야 하는 새 자리에서 새봄이 몹시 바빴습니다. 산수유와 진달래가 오고, 벚꽃이 지나가는 햇빛 좋은 어느 날. 봄바람에 곰살가운 시인의 <시집> 한권이 홀연히 날아들었습니다. 순간 시인의 마음에 울컥하고는 바쁘다는 핑계로 사무실 책상에 그대로 눕혀 놓았습니다.

새 터에서 한동안 글쓰기는커녕 시(詩)한 수 읽질 못했습니다. 지난 주 바쁜 시간을 갈라 숨을 크게 내쉬며 창밖을 한참동안 바라보았습니다. 청사 내 덩그레 서 있는 목련은 우유 빛깔 꽃을 내려놓은 지 오래 이고, 한 잎 한 잎 순한 아기 잎새를 틔우고 있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어느새 4월도 중순 능선을 넘어가고 있습니다. 밤은 짧아지고 낮은 꽤나 길어졌습니다. 마치 함박눈이 내리 듯 벚꽃이 눈처럼 내리는 길을 거닐 여유를 부리지 못한 채, 이 봄을 보내야 한다 생각하니 괜스레 우울해졌습니다.

한동안 책상에 누워 있던 시집을 일으켜 세웠습니다. 노란 표지가 봄스럽고 맘에 쏘옥 들어옵니다. 손안에 꽉 차 오릅니다. 수더분한 시인의 얼굴이 떠오릅니다. 자세히 보니 여느 시집과는 결이 정말 다릅니다. 내용도 사전처럼 가나다라 순으로 배열돼 있습니다. 동시처럼 쓰인 시어들이 순진하고 기발하기 그지없습니다. 순수한 언어의 마음이 가슴에 착 달라붙습니다.


짧은 내용 몇 편 골라 읽었습니다. 책장 넘기는 소리, 손가락에 느껴지는 종이의 촉감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습니다. <구슬땀>, “땀 흘려 일할 때/ 몸은 보석 상자가 되지/ 구슬구슬 송알송알/ 구슬이 쏟아지지” <어금니>, “어금니는 엄니다/ 맛 중의 맛, 씹는 맛까지 알려 준다/ 이 중의 이, 가장 일을 많이 한다/ 집안의 엄니처럼 입안의 엄니다/ 일하기 좋아해 쉬 망가진다/ 일복으로 황금을 선물 받는다/ 엄니는 금니가 많다” 입안의 엄니, 어금니, 기발한 발상이 참으로 인상적입니다. 봄밤을 세우며 읽고 싶어지는 그런 시집입니다.

몇 년 전에 저자의 시(詩) <의자>를 만난 후, 단박에 팬이 돼버렸습니다. 그 후로 교육청 업무를 하면서 시인을 만날 기회가 서너 번 주어졌습니다. 수더분하니 곰살가운 살내가 수북하니 풍기는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어느 잡지사 인터뷰에서 시와 삶의 거리를 18.44미터라고 했더군요. 18.44미터는 투수판에서 홈 플레이트까지의 거리랍니다. 그 거리가 곧 너와 나, 사랑과 이별, 탄생과 죽음의 거리라고 시인은 말하고 있습니다. 내가 만난 그의 시는 언제나 삶에 근거해 삶의 현장에서 구수하게 팝콘처럼 꽃을 피워낸 것들이었습니다.

사십대 후반 들어서면서 ‘나는 왜 그런 시(詩)가 안 되는 걸까’ 한동안 자괴감에 빠진 적도 있습니다. 이제는 그 꿈을 살짝 접었지만 사랑이 깊으면 상처도 깊은가 봅니다. 시집을 읽노라니 다시 내 안에 짙은 신열의 꽃 멀미가 일었습니다. 문장 속 동사, 불꽃안의 심지, 혈관안의 맥박, 봄바람이 가슴을 쓸어갔습니다.

생각을 끌고 가면 땅속에서도 길이 생겨 숨통이 생긴다고 했던가요. 온몸에 열리는 숨구멍, 대숲 사이로 옛사랑이, 옛 문장이 스미어 붉은 노을로 번지는 그런 날이 있습니다. 바로 그런 날인가 봅니다. 바람 지나간 뒤에도 신우대를 흔드는 것이 바람이듯, 가슴에 와 닿는 뻐근한 글과 시(詩)들은 시간이 흐른 뒤에도 내 삶을 흔드는 불꽃일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짧아져서 더욱 귀해진 봄. 사월의 허공에 꽃잎이 흩날립니다.


< 저작권자 © 대전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이정복의 다른기사 보기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요즘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확인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 / 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가장 많이 본 기사
1
대덕구, "신대 베이스볼 드림파크 야구장 건설 돼야"
2
“사랑의 땔감으로 따뜻한 겨울나세요”
3
“농업인이 안심하고 농사지을 수 있도록 준비하자”
4
충남 도민의 사랑 모아 사랑의 온도 100도 달성한다
5
대전도시철도 ‘역사 화재대비 불시 비상훈련’실시
6
아산무궁화프로축구단 존치위해 총력 대응
7
태안군, ‘부동산정보. 연속지적도 완료
8
“상생을 위한 발걸음, 당진화력이 함께 합니다!”
9
행복청장·세종시장, 일자리 창출 합동점검 나서
10
대전시, 시민이 안전한 겨울철 도로 결빙·제설 대책 추진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고충처리인
대전광역시 유성구 유성대로 26-20 태동빌딩 7층  |  대표전화 : 042-538-3030  |  팩스 : 042-538-2211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성구
업체명 : 대전투데이  |  사업자번호 : 314-81-93275  |  정기간행물ㆍ등록번호 : 대전 가 00017  |  대표자명 : 김현정  |  발행인 : 김현정  
Copyright © 2011 대전투데이. All rights reserved. mail to djtoday@djtoda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