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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단상(斷想)김헌태 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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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4.02  13:2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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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이 찾아왔다. 흔히 4월을 잔인한 달이라고 한다. 사실 4월에는 역사적으로도 많은 사연들이 넘치는 달이기도 하다. 잔인한 달이라는 말은 우리에게는 젊은 학생들이 많이 죽고 다쳤던 4·19 혁명. 수만 명이 희생당했던 제주 4·3 사건. 세월호의 황당한 참사도 4월에 일어났기 때문은 아닐까 생각된다. 아름다운 신록의 4월과 너무나 대비되는 사건사고들이다. 역사적인 사건과 오버랩이 되는 4월이 그래서 잔인한 달이라 일컫고 있지만 이 말은 사실 그 출처가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한 편의 시 구절에서 비롯되고 있다. 미국 태생의 영국 시인 T. S. 엘리엇(Eliot)의 유명한 시 “황무지(The Waste Land)”가 바로 그 출처이다. 433행이나 되는 긴 시이기도 하다. 그 시의 시작은 이렇다. “4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 기억과 욕망을 뒤섞고 봄비로 잠든 뿌리를 뒤흔든다. 겨울은 따뜻했었다 대지를 망각의 눈으로 덮어주고 가냘픈 목숨을 마른 구근으로 먹여 살려 주었다.” 엘리엇의 “황무지”는 20세기에 들어서 삶의 목적과 의미를 잃고 생명력을 가진 것을 생산해내지 못하는 서구인들의 정신세계를 묘사한 시이다. 삶의 방향과 의욕을 잃은 채 살아 있으면서도 죽은 것이나 다름없이 사는 현대인의 정신적 황폐를 보여 주려고 한 것이다. 비록 당초 맥락과 동떨어진 의미가 되어버렸지만 이 시대에서도 수많은 사람들의 정신상태를 함축하고 있다는 점에서 여전히 유효하다 할 것이다.
그래도 올 4월의 벚꽃은 어김없이 꽃망울을 활짝 터트리며 화사함을 한껏 뽐내기 시작했다. 이에 질세라 목련꽃과 개나리도 동시에 그 자태를 드러내며 예년과 다른 순차적인 기다림을 벗어나고 있다. 일교차가 심한 날씨에 미세먼지까지 극성을 부리는 사이 어느덧 4월 꽃들은 봄의 향연을 그려내고 있다. “아! 벌써 벚꽃이 활짝 피었네!” 그렇게 감탄사를 자아내고 있다. 잔인한 4월이라는 말도 잊은 채 4월을 맞이하고 있다. 하지만 감탄사를 연발하기에는 서민들과 자영업자들의 마음은 무거워 어쩌면 잔인한 4월을 맞고 있지는 않은지 모를 일이다. 물가는 천정부지로 치솟고 대출이 규제되어 은행문턱은 하염없이 높아지고 상점과 식당마다 손님들의 발길이 뚝 끊어져 자영업자들이 아우성이다. 공무원들도 법인 카드를 회수하여 씀씀이가 달라져 세종 청사 주변에는 활기를 잃어가고 있다고 한다. 높은 임대료에 장사까지 되질 않으니 이를 견디다 못해 줄줄이 문을 닫고 있다. 어디를 가나 장사가 되질 않는다고 아우성이고 인플레이션을 점점 더해가고 있어 직장인들의 봉급도 앉아서 줄어드는 격이 되고 있다. 주부들의 장바구니도 예전같이 못하다. 그전처럼 마음 놓고 물건을 사지 못한다. 국민소득 3만 불이니 뭐니 하지만 서민들의 체감경기는 그야말로 ‘죽을 맛’이다. 너무나 경직된 서민경제는 좀처럼 나아질 기미를 보이질 않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다 눈만 뜨면 금오타이어 사태와 한국GM의 만신창이 된 뉴스를 접하고 사는 국민들의 심경이야 오죽하겠는가 싶다.
그래도 역사적인 일들은 잇따르고 있다. 오는 4월 27일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평양예술 공연단이 평양을 찾아 '남북 평화 협력 기원 남측 예술단 평양 공연'을 두 차례 갖는다. 평창동계올림픽에서부터 이어지는 남북의 해빙무드는 겁이 날 정도로 속도가 붙어있다. 한마디로 일사천리로 모든 일이 진행되고 있다. 한반도 전쟁설에 위기감이 증폭되던 얼마 전까지의 기류와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 지금까지 이런 남북관계는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국민들은 열광하지 않고 있는 듯하다. 다소 감흥이 떨어지고 있다. 남북의 평화무드에도 불구하고 일부에서는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고 있는 이유가 어디에서 비롯되는 지를 알다가도 모를 정도이다. 마치 일본 아베총리를 비롯하여 일본이 보이고 있는 ‘몽니부림’과 닮아 있다. 그러나 남북관계, 북미관계의 역사적인 순간의 시계는 카운드 다운에 들어갔다. 올 4월이 그려내는 역사적인 사건의 전개가 자못 궁금하다.
그런가 하면 6·13 전국지방자치선거와 보궐선거를 앞두고 각 정당들은 물론 예비후보자들의 행보도 한층 빨라지고 있다. 곳곳에 내걸린 대형 걸게 그림들이 선거철임을 말해주고 있다. 선거차량들도 거리를 활보하고 있다. 하지만 중앙정치와 지방정치의 괴리감이 너무 커서 예비후보자들이나 탈락자들의 반발도 만만치 않은 선거판이 되고 있다. 이른바 전략공천이 중시되면서 경선을 준비하던 에비후보자들의 낙마사태가 줄을 잇고 있다. 이들에게는 이 4월이 무척 잔인한 달이 되고 있다. 지방일꾼들을 뽑는 선거인데도 중앙정치의 어수선함 때문에 선의의 피해마저 우려되는 선거판이다. 중앙의 막말정치나 꼼수정치가 여전히 활개를 치고 있으니 정치만큼은 아직도 후진성을 면하지 못하고 있다는 질책이 쏟아지는 것도 당연하다 싶다. 신당들의 출연도 그다지 호응을 받지 못하고 있다. 어느 광역시 시당 창당대회에 200여명만이 참석하여 썰렁한 분위기까지 연출하는 바람에 중앙정치인들이 이런저런 핑계를 대고 자리를 일찍 떠버리는 사태까지 빚었다. 자신들의 주장과는 달리 외면당하는 현실 앞에서 한마디로 머쓱해진 것이다. 현실정치의 잔인성을 여실히 보여주는 한 단면이다. 선거철을 앞두고 신당을 만들어 국민 앞에 내놓아봐야 한마디로 잘 먹히질 않고 있는 것이다. 이들에게도 잔인한 4월이 될 모양이다.
그러나 4월을 어김없이 가고 있다. 벚꽃과 개나리가 흐드러지게 만개하고 탐스런 목련꽃이 곳곳에서 그 자태를 뽐내고 있다. 올 4월은 어느 새 핀지 모르게 다가선 봄꽃의 향연으로 평화로움이 넘친다. 미세먼지가 하늘을 뒤덮고 일상을 힘들게 하지만 그래도 봄은 역시 봄이다. 어김없이 파릇파릇 돋아나는 초목들의 모습에서도 자연의 순리를 보게 된다. 이런 4월을 맞아 힘든 일상을 벗어나 잠시 억지로라도 여유를 부리며 우리네 주변을 다시 찾아온 벚꽃과 개나리, 목련꽃, 복사꽃 향기에 취해 보는 것도 좋을 듯싶다. 잔인한 4월을 평화롭고 화사한 4월로 만드는 것은 팍팍한 현실에 안주하지 않는 삶의 여유와 과유불급(過猶不及)의 우리네 마음가짐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다시 찾은 이 4월은 우리 모두가 삶의 방향과 의욕을 잃지 않으면서 정신적인 황폐감으로부터 과감히 탈출하는 4월이 되었으면 한다. 그래서 영국 시인 T. S. 엘리엇(Eliot)의 “황무지(The Waste Land)”가 그려내는 잔인한 4월을 “옥토(玉土)”라는 시로 다시 쓰며 ‘인정이 없고 아주 모진 4월’이 아닌 ‘아름답고 행복한 4월’로 바꿔보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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