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복 정치행정부장

해마다 연말이 되면 가장 많이 회자되는 고사성어가 있다. 다사다난(多事多難) 이라는 표현이다. 다사다난을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면 ‘여러 가지로 일도 많고 어려움도 많다’라고 되어 있다.

2017년 정유년(丁酉年) 올해도 이제 일주일도 채 남지 않았다. 한국 현대사(現代史)에서 올해만큼 다방면에서 다사다난했던 때가 있을까 싶다. 여러 사건 가운데 정치사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은 대통령 탄핵에 따른 정권 교체다. 지난해 말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이 불거지면서 촉발된 자발적인 민중의 촛불 집회는 결국 헌법재판소의 현직 대통령 탄핵이라는 결과를 이끌어냈고, 마침내 세계 민주주의 역사상 가장 평화로운 방법으로 정권 교체가 이루어졌다. 9년만에 보수정권을 종식하고, 진보정권인 더불어 민주당 소속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면서 그동안 우리 사회를 병들고 썩게 했던 적폐세력들의 청산이 본격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문 정부 출범이후 적폐청산 작업에 이어 가장 큰 화두는 에너지 정책 변화였다. 문 정부는 핵심 과제로 탈(脫)원·탈(脫)석탄을 정하고, 경제성 중심의 국내 발전체계를 환경·안전성으로 무게를 이동시키는 작업을 본격화했다.

이 과정에서 정부는 신고리 5·6호기 건설재개를 놓고 찬반으로 나뉜 민심을 달래기 위해 공론화위원회를 만들었고, 그 결과 지난 10월 20일 현재 공사가 일시 중단된 신고리 5·6 호기의 건설 재개를 정부에 권고한다고 발표했다. 공론화위원회에 따르면, 시민참여단 471명에 대한 최종 조사 결과 59.5%가 건설재개 쪽을, 40.5%가 건설 중단을 선택했다. 또 모든 연령대에서 건설재개의 비율이 증가했고 20대, 30대에서 증가 폭이 더 큰 것으로 나타났다. 공론화위는 아울러 원자력 발전을 축소하는 방향으로 추진하는 정책 결정을 해달라고 정부에 권고했다. 원자력 발전을 축소하는 의견은 53.2%, 유지는 35.5%, 확대는 9.7%로 나타났다.

또 우리나라 식탁의 즐길거리인 계란 살충제 파동도 온 나라를 시끄럽게 했다. 지난 7월 벨기에와 네덜란드 등의 유럽 계란에서 독성물질인 피프로닐이 발견됐다. 뒤이어 국내 계란에서도 이 같은 성분이 검출됐다. 벼룩이나 진드기 등 해충을 제거하기 위해 쓰이는 피프로닐은 맹독성 물질로 사람이 섭취하는 동물에 사용이 금지돼 있다.

지난 8월 경기도 남양주와 광주 산란계 농장 계란에서 피프로닐과 허용 기준을 초과한 비페트린 등 농약성분이 검출됐다. 정부는 살충제 성분이 나온 계란을 전량폐기하고 안전인증을 받은 계란에 한해서 유통을 재개했지만 지자체별로 이뤄진 전수조사 과정에서 일부 지자체가 27종의 농약 표준시약을 모두 갖추고 있지 않아 검사 항목이 누락되는 등 부실조사 논란이 일었다.

또 인재로 드러난 동탄메타폴리스 화재와 인천 낚싯배 전복, 반복된 타워크레인 사망 사고, 또 최근 발생한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 참사 같은 안전불감증 사고도 잊을만하면 터져 우리 국민의 마음을 안타깝게 했다.

또 연이은 북한의 핵 미사일 위협으로 인해 한반도가 최고의 군사 긴장상태로 몰아갔고, 사드배치로 인한 한·중 간의 첨예한 대립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이렇듯 국내외적으로 어수선한 가운데, 충청권 역시 올 한해 격동의 시기를 보내야만 했다.

특히 지난달 권선택 대전시장과 이승훈 청주시장이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낙마함으로써 중부권 중핵도시들 양 수장이 모두 공백상태가 된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두 시장의 낙마로 향후 충청권 각종 현안문제 해결의 원동력을 상실하게 됐다.

대전시는 당장 권 시장이 역점시책으로 추진한 ‘도시철도 2호선 트램건설’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이 사업 필수 법안인 도로교통법 개정안이 국회에 표류 중이기 때문이다. 또 일부 시민들사이에서 트램의 효용성에 대한 논란이 계속돼 사실상 향후 도시철도 2호선 사업은 민선7기 시장에게 넘길 가능성이 커졌다. 대전시로서는 도시공원 민간개발특례사업과 도안 갑천친수구역 조성사업 등 각종 개발사업에서 찬반으로 첨예하게 대립한 시민 갈등을 봉합하지 못한 점도 아쉬운 대목으로 남게 됐다.

또 권 시장이 공약으로 내건 대전의료원 역시 주관 부처인 보건복지부가 큰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고 기획재정부는 예비타당성조사 신청을 받아들이지 않아 사실상 사업 추진이 어려울 전망이다.

충남은 청양 강정리 석면광산 사태, 내포신도시 열병합발전소 관련 문제, 충남 인권선언문 동성애 옹호 논란 등이 여전히 해결되지 못한 현안으로 꼽힌다.

세종시는 행정수도 완성을 위한 현안들을 마무리 짓지 못하고 해를 넘기게 됐다. 국회 세종분원 설치를 위한 국회법 개정안이 국회 운영위에 계류돼 있지만 논의 조차 되지 않고 있다. 세종시법 개정은 국회 소관 위원회가 당초 행안위에서 정개특위로 바뀌면서 기약이 없어졌다.

충북은 청주국제공항 활성화를 위해 유치하려던 모(母)기지 저가항공사(LCC) 문제를 결국 풀지 못해 내년을 기약하고 있다. 오랜 숙원사업이었던 중부고속도로 남이JCT-호법JCT 확장사업도 예산확보가 충분치 않아 어려움이 예상된다.

어느해보다도 우리국민은 올 한해 변혁의 중심에 서 있었다. 현직 대통령이 탄핵당한 뒤 교도소에 수감되는 참담함을 느꼈고, 촛불혁명이 일궈낸 새 정권 출범으로 희망도 맛봤다. “이게 나라냐”며 촛불을 들고 광장에 나온 주인공은 바로 민초(民草)들 이었다. 소시민인 그들이 우리나라를 바로세우는 주춧돌 역할을 한 것이다.

대한민국 전체로 보나 충청권으로 보나 올해는 정말 힘겹고 버거운 한해였음은 틀림없다. 하지만 어려움 속에서도 꿋꿋이 이를 슬기롭게 극복하고 새로운 희망의 길로 나아가는 모습은 너무나 닮은 듯하다.

내년 무술년(戊戌年)은 우리나라의 운명을 결정짓는 큰 이벤트가 준비돼 있다. 88올림픽, 2002월드컵, 2011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에 이어 2018평창동계올림칙이 개최될 예정이다. 대한민국은 이번 평창동계올림픽으로 세계에서도 몇 안 되는 4대 메이저 스포츠대회를 개최하는 선진국으로 발돋움하게 된다. 또 내년에는 6·13지방선거가 치러진다. 지난 촛불집회에서 보여준 성숙한 우리 국민들의 민주주의 의식이 내년 지방선거에도 반영돼 진정한 지방자치가 뿌리내리길 기원해 본다. 정유년이 서서히 저물고 있다. 우리 모두 올 한해 지닌 앙금과 갈등이 있다면 훌훌 털어버리자. 그리고 새해 무술년에는 희망을 얘기하고 이렇게 외치자. “대한민국 파이팅”

저작권자 © 대전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