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투논단
김헌태논설고문

묵은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는 세밑의 분위기가 참으로 어수선하다. 들뜬 분위기는 찾아볼 수 없다. 국민들도 차분함을 넘어 은인자중하며 연말을 보내고 있다. 29명의 목숨을 앗아간 충북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참사가 가득이나 위축된 사회분위기를 암울하게 만들고 있다. 어처구니없는 화재로 인해 소중한 인명을 앗아간 화재는 세월호 참사만큼이나 황당하여 국민들의 말문을 막히게 하고 있다. 안전 불감증을 여실히 보여주는 현장이 아닐 수 없다. 포항지진의 상처가 채 아물기도 전에 국민들을 충격으로 몰아넣었다. 초동조치 미흡으로 인한 인명구조 실패에도 국민들의 질타가 쏟아지고 있다. 전국 사우나탕에도 화재 트라우마가 당분간 휩쓸 것은 자명한 일이다. 사후약방문격인 대책도 벌써부터 요란하다. 포항지진에서도 보았던 준비가 안된 바로 그런 우왕좌왕의 답답한 모습이다.
정부가 일자리 위원회까지 만들어 고용창출을 꾀하고 있지만 역부족인 모양이다. 이른바 청년백수 시대를 맞았기 때문이다. 일할 능력이 있음에도 일하지 않고 쉰 20대 백수 인구가 지난달 월별 기준으로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고 한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11월 비경제활동인구 중 '쉬었음'으로 분류된 이는 172만3천 명으로 1년 전보다 21만9천 명 증가했다. 이는 통계 작성이 시작된 2003년 이후 11월 기준으로 가장 많은 수준으로 20대 중 이러한 인구는 28만4천 명으로 동월 기준 역대 최대 규모라고 한다. 전반적인 청년고용 상황이 좋지 않아 구직하다가 아예 포기해 버리는 것이다. 당연히 청년층 실업률도 높아지고 있다. 걱정이 아닐 수 없다. 이런 현상을 매년 지속되고 있다. 2018년부터 시작되는 최저임금은 올해 6,470원보다 16.4%나 오른 7,530원이 적용된다. 최저임금상승에 부담은 느낀 사업주들이 벌써부터 가족경영체제를 선언하는 등 일자리를 줄이려고 하고 있어 새해에는 아르바이트마저 손쉽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 섞인 목소리도 나온다. 경제 동력이 떨어지고 있는 것이다.
세밑의 우리 사회를 슬프게 하는 것들 중의 하나는 인기연예인의 자살 사건이다. 세간을 깜짝 놀라게 한 인기 아이돌 그룹인 샤이니의 멤버 종현 사망 소식은 28세의 젊은 청년가수의 자살이어서 사회적 충격을 컸다. 아무 문제가 없고 잘 나가던 가수라는 점에서 주변의 비통함과 안타까움을 더했다. 연예계는 충격에 빠졌고 팬들은 믿기지 않는다는 반응이었다. 한국은 지난 14년간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중 자살률 1위, 평균 자살률의 두 배라는 불명예를 안고 있다. 스트레스와 우울의 이중고를 앓고 있는 대한민국 사회의 극단적인 단면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2003년 이후 15년 동안 줄곧 1위이다. 인구 10만 명당 28.7명이다. 18.7명인 2위 일본과도 차이가 크다. 노인자살률도 1위 국가이다. 어쩌다가 이런 지경에 이르렀는지 알다가도 모르겠다. 국민의 삶의 질이 크게 떨어지고 행복지수가 최악을 걷고 있다.
사회적 불신도 커지고 있다. 연말연시 이웃돕기 성금이 걷히지 않고 있다고 한다. 사랑의 온도탑이 오를 줄을 모르고 식어가고 있는 것이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최순실 국정농단사태와 관련하여 기부금에 대한 부정적인 기류가 기업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기 때문으로 분석되고 있다. 기업들의 기부가 급격히 줄어들어 모금에 상당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한다. 여기에다 황당한 이영학 사건까지 터지면서 국민들의 기부문화에 대한 불신이 커진데도 또 다른 원인이 있다. 연말연시 이름 없는 천사들의 기부소식으로 훈훈함을 더하던 예년의 분위기와는 사뭇 다른 세밑이라 씁쓸하기만 하다. 사랑의 온도탑이 식어가는 모습에서 대한민국 사회의 진통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구세군의 자선냄비와 종소리도 거리를 공허하게 하고 있다. 유난히 춥고 눈비가 많은 이번 겨울이 더욱 을씨년스럽기만 하다.
적폐청산의 칼날아래 고위층들이 줄줄이 교도소에 가고 정치인들이 줄소환되는 것을 보면서 그동안 얼마나 국민들이 속아온 것인지 도무지 종잡을 수가 없을 지경이다. 썩어도 너무 썩었다. 사회 지도층이자 지도자들이 국민고통은 안중에도 없고 권력을 무소불위로 휘두르며 시대착오적인 행태로 살아온 것을 이제야 알아야 하니 속상한 것은 국민들뿐이다. 철저하게 속아왔던 것이다. 이들이 바로 국민행복이나 서민복지, 창조경제 등을 주장하며 국민을 기만한 것이다. 요즘도 정치자금법이나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대법원 확정 판결을 받으면서 국회의원직을 상실하는 의원들이 줄을 잇고 있다. 지방기초자치단체나 광역자치단체장도 예외가 아니다. 국정원 특수활동비 상납과 관련되어 한때 잘나가던 정권실세 국회의원들과 비서실장들도 조사를 받거나 법적 조치를 기다리고 있다. 어찌 보면 참 추한 모습을 국민들은 접하고 있다.
평창동계올림픽을 앞두고도 한반도의 긴장을 조장하는 언행이 끊이질 않고 있다. 심지어 틸러슨 미국국무부 장관마저 좌충우돌하는 발언을 쏟아내 놓으며 노골적으로 긴장을 조성하고 있다. 물론 유사시를 대비하자는 뜻과 북한이 대화의 장으로 나와 외교적인 해법으로 문제를 풀어가자는 의도는 있지만 세계적인 행사를 치러야 하는 우리로서는 그다지 탐탁하지 않을 수밖에 없다. 미국과 중국, 일본, 러시아의 주변 열강들 사이에서 우리 대한민국은 늘 그래왔듯이 고군분투하고 있는 듯하다. 그래서 우리 국민들은 2017년 세밑의 대한민국을 걱정하며 나름대로 자강의 의지를 불태우고 있기도 하다.
2017년 정유년은 대한민국이 말 그대로 격동의 한해였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구속으로 이어지는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 등은 대한민국 치욕의 역사로 기록될 것이다. 여전히 진행형이지만 전 정권의 실세들이 추운 겨울 교도소에서 옥고를 치루고 있는 것은 비극이 아닐 수 없다. 어쩌다가 대한민국이 이 지경이 되었나를 우리 모두는 자성해야 한다. 특히 눈만 뜨면 국민을 부르짖던 정치인들이 그러하며 환골탈태해야 한다. 아직도 이전투구에 혈안이 되어 국민불신의 단초를 제공하는 정치권은 이 모든 대한민국 불행에 책임을 져야 한다. 그래서 올해의 송구영신은 썩어빠진 구태를 벗어던지고 새롭고 희망찬 2018년 무술년 황금 개띠 해를 맞이하는 혁신적인 변화의 세밑이 되어야 한다. 그래서 2018년은 그야말로 희망과 행복, 평화, 축복이 가득한 새로운 대한민국 사회가 되길 소망한다.
저작권자 © 대전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