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헌태 논설고문

정부가 지난 12일 이낙연 국무총리 주재로 국무회의를 열고 제주 강정마을 주민 및 단체 등을 상대로 제기한 구상권 청구 소송을 취하하기로 했다. 법원의 ‘강제조정안’을 수용한 것이다. 34억 4800만원의 이 구상권 청구 소송은, 1년 9개월 전인 지난해 3월 해군이 서울중앙지법에 시민들의 반대시위로 해군기지 건설 공사가 지연돼 손해를 봤다며 주민 116명과 5개 시민단체 등을 상대로 제기한 소송이었다. 청구 대상은 강정마을 주민 31명 그리고 외부 활동가 85명 등 개인이 총 116명이다. 그리고 강정마을회, 생명평화결사 등 5개 단체이다. 정부는 입장자료를 내고 “갈등 치유와 국민통합을 위한 대승적 차원에서 법원의 조정안을 수용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공사 지연에 따른 피해금액 무려 273억 원이나 정부가 삼성물산에 지급하기도 했다. 구상권 청구 소송 취하에 이어 앞으로 사면도 이뤄질 전망이다. 물론 불법행위에 대한 면죄부를 주었다며 찬반양론이 있기는 하지만 사회적 갈등을 해소하기 위한 대승적 결단으로 평가된다.
여기에서 주목할 점은 문재인 대통령이 항소권을 남용하지 말라는 주문이다. 이는 참으로 중요한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이에 항소권 남용으로 사회적 약자들이 고통을 겪는 경우가 다반사이기 때문이다. 이런 차원에서 "국민을 상대로 한 국가의 항소 권리를 남용하지 말라"는 문재인대통령의 지시는 가슴에 와 닿는다. 박수현 청와대 대변인에 따르면 문 대통령은 "국가는 막강한 권력과 정보가 있고, 국민은 그런 국가를 상대로 한 소송에서 이기기 쉽지 않다"며 "1심에서 국가가 패소했으면 이유가 있을 텐데 항소하는 자체가 비용을 낭비하는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지난 7월에도 환경부가 용산 미군기지 환경오염 조사결과 공개 여부에 대한 소송에서 패했다는 보고를 받고 "패소 판결에 대한 항소를 자제하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국가권력이 이러한 행보를 보이고 있는 것은 작금에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기 위한 진일보한 배려라는 점이다.
하지만 일부 지방자치단체들은 아직도 전근대적인 관료의식에 매몰되어 구태의연한 역주행 행정행위를 서슴지 않고 있다. 때문에 집단 저항을 불러일으키며 사태의 본질을 키우며 소모적이며 낭비적인 행태를 보여 빈축을 사고 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대전에서 벌어지고 있다. 바로 대전광역시 중구청의 항소권 남용 사례가 바로 그것이다. 대전 중구청 앞에는 지난 5일 규탄집회를 시작으로 중중장애인들인 척수장애인들의 릴레이 시위가 연일 벌어지고 있다. ‘대전광역시 중구청 조세행정 규탄집회’이다. 첫날 집회부터 혹독한 한파가 몰아닥쳤지만 강추위도 아랑곳하지 않고 중중장애인인 척수장애인들의 규탄 함성은 하늘을 찌르는 듯 했다. 릴레이 시위도 계속 되고 있다. 이들의 주장은 대전척수장애인협회에 부과한 주민세부과처분 취소 소송에서 패한 중구청이 행정재판에 불복 항소해 사회적 약자인 중중장애인단체를 궁지에 몰아넣으려 한다는 것이다. 이 같은 처사는 졸속행정으로 즉각 취하하라는 것이다. “중중장애인 피고름 짜서 세금 만드냐, 재판패소 불복하는 중구청은 각성하라”,“중구청의 무모한 재판 불복, 중중장애인 괴롭히는 중구청을 규탄한다!”, “ 중구청 행정재판 1심 불복 누구를 위한 불복인가, 1심 재판 승복하고 혈세낭비 줄여라!”라는 구호가 이들의 절절한 마음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막강한 권력을 대상으로 행정재판 1심을 승소한 것은 사회적 약자인 척수장애인들로서는 정말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중구청은 이에 불복하여 항소했다. 항소권을 남용하지 말라는 대통령의 의식과는 천양지차가 아닐 수 없다.
그 대상인 대전척수장애인협회는 현재 장애인활동지원에 관한 법률에 따라 활동지원기관으로 지정되어 있다. 그동안 면제 단체인데도 중구청이 사회복지사업 목적을 매우 한정적으로 해석하여 주민세를 부과 처분하자 열악한 재정상황에도 불구하고 2017년 11월까지 총 2526만 1,190원을 납부했다. 하지만 협회는 부과처분을 납득할 수 없다며 조세불복절차에 의거 행정소송을 진행하였다. 2017년 11월 8일 대전지방법원에서 “2017년 11월 8일 2016년 10월 5일 처분목록기재 각 처분을 모두 최소하고 2017년 5월 29일 주민세 1118만 1970원에 관한 경정청구에 대한 거부처분을 취소하며 소송비용은 중구청에서 부담한다.”라는 승소판결을 받았다.
그러나 대전광역시 중구청은 행정재판에서 패소했는데도 불복 항소했다. 이에 중중장애인인 척수장애인들의 분노가 폭발했다. 한마디로 항소권을 남용하여 혈세를 낭비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실 사회적 약자가 막강한 국가권력을 대상으로 행정재판에서 승소했으니 참으로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중구청은 사회적 약자인 중중장애인인 척수장애인들을 향한 항소를 제기했다. 중중장애인들에게 세금을 걷어 내겠다는 것이다. 장애인재활과 장애인복지발전은 아랑곳하지 않는 막가파식 행정행위로 비난이 쏟아지는 이유이다. 장애인복지법 제 63조 1항에는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장애인의 복지를 향상하고 자립을 돕기 위하여 장애인복지단체를 보호·육성하도록 명시되어 있다. 더욱이 제 6조에는 중중장애인에 대한 보호 규정이 더욱 명쾌하게 규정되어 있다. 즉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장애 정도가 심하여 자립하기가 매우 곤란한 장애인(이하 ”중중장애인이라 한다.“)이 필요한 보호 등을 평생 받을 수 있도록 알맞은 정책을 강구하여야 한다.”라고 되어 있다. 그러나 대전시 중구청은 이에 아랑곳 하지 않고 있어 장애인의 복지와 사회활동 참여 증진을 통하여 사회통합에 이바지해야 할 책무를 저버리고 있다는 비난에 직면하고 있다. 당연히 당사자들의 저항도 거세지고 있다.
변호사 출신인 문재인 대통령마저 나서 항소권을 남용하지 말라며 주문했다. 나아가 불법시위로 엄청난 손실을 입힌 강정마을과 사회단체에게도 34억 4800만원 구상권 청구소송까지 취하했다. 사회적 갈등을 봉합하기 위한 대승적 결단이고 심지어 이들에게 사면도 검토하여 일상으로 되돌리려는 행정행위도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이와는 대조적으로 대전광역시 중구청은 중중장애인들에게 행정재판에서 패하고도 승복하지 않고 있다. 하물며 이들 사회적 약자를 이기려고 혈세를 낭비하며 모기 잡는데 도끼자루 흔드는 행위를 서슴지 않고 있다. 항소하면 이긴다고 생각하는지 그래서 항소해서 이긴다 한들 중중장애인들의 피고름을 짜서 세금을 만드는 것이 과연 올바른 일이고 과연 이것이 아름다운 조세행정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장애인복지법 어디를 뒤져보아도 장애인의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무시하거나 차별하라는 조항은 찾아볼 수가 없다. 오히려 정책과정에서 장애인이나 보호자 등에 대한 의견을 수렴하도록 되어 있다. 법을 다루는 법원이 약자의 손을 들어줬다는 것은 분명 이유가 있는 판결이다. 이를 뒤집겠다고 항소권을 남용하는 대전광역시 중구청은 무엇인가 1인치가 부족하다. 정부조차 분명히 승소할 수도 있는 불법행위에 대한 항소권을 취하하는 마당에 지방기초자치단체인 대전광역시 중구청은 항소권 남용으로 역주행을 하고 있으니 참으로 역설적이다. 행정행위도 분명 객관성과 합리성을 갖추어야 한다. 중중장애인들을 위한 재활자립에 적극 나서 예산도 지원하고 법적인 모순점을 개선하여 도와주어야 할 곳이 바로 행정기관이다. 그러나 사회적 약자를 짓밟고자 조자룡 헌칼 쓰듯이 혈세를 낭비하며 항소권을 남용한다면 이는 자가당착에 빠지는 길이다. 돕지는 못할망정 쪽박을 깨지 말아야 한다.
연일 계속되는 강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휠체어에 의존하여 불편한 몸을 이끌고 중중장애인들이 절규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장애인복지를 외면하는 대전광역시 중구청은 누구를 위한 구청이고 무엇을 위한 행정이며 누구를 위해 세금을 쓰는지를 밝히라고 외치고 있다. 무모한 항소권 남용은 이젠 멈춰야 한다. 대전광역시 중구청은 이들의 정당한 요구와 몸부림을 외면하지 말고 즉각 항소를 취하하여 사회적 약자들을 보호하고 사회적 갈등을 해소하는데 적극 나서야 한다. 이는 장애인복지법에 명시된 지방자치단체의 책무이자 열린 복지행정을 향한 시대적 소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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