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헌태 논설고문

우리나라는 민주주의를 표방하는 나라이면서도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참으로 형극의 길을 걸어온 나라이기도 하다. 이른바 군부독재와 국정농단 사태에 이르기까지 부정적인 모습들을 너무나 많이 경험하고 있다. 아직도 진행형이다. 이른바 적폐청산과정에서 드러나는 일련의 비정상의 과거행적을 접하면서 국민들의 눈과 귀를 어둡게 하며 속여 왔던 지도층들의 거짓이 어디까지인 종잡을 수 없다. 사안의 경중에 따라 구속 수감되고 후속 수사가 계속 펼쳐지며 그 진상이 드러나고 있지만 의외로 국민들의 무감각증은 생각이상이다. 국정농단을 비롯하여 각종 정치비리를 너무나 많이 접해서인지 웬만한 사건에는 만성화되어 있다. 국민들만 우롱 당했다는 생각만큼은 한결 같다. 철저하게 국민들을 속여 왔던 것들이 이른바 적폐청산이라는 이름으로 드러나고 있다.
최근에는 공직선거법 위반이나 정치자금법 위반 등으로 국회의원은 물론 지방자치단체장들마저 중도 낙마가 줄을 잇고 있다. 내년 6.13지방선거에서는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의 규모도 커질 전망이다. 의원직 상실 형을 받아 낙마를 하는 국회의원들이 계속 줄을 잇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대법원에 계류 중이면서 1,2심에서 의원직 상실형을 받은 국회의원들도 상당수에 달하고 있다. 여기에다 자치단체장 선거에 나서는 국회의원들까지 포함하면 미니총선이 될 공산이 크다는 분석이 나온다. 문제는 이와 같은 악순환이 거듭되며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의 몫으로 남는다는데 있다. 국회의원이나 자치단체장의 선거를 다시 해서 새 인물을 뽑는 문제의 차원을 넘어선다. 선거비용을 비롯하여 국민들은 황금 같은 시간을 버리는 결과를 낳고 행정공백에 따른 추진동력을 상실하는 부작용이 크다는 지적이다.
4년마다 치러지는 선거는 사실 2년 주기로 반복되고 있다. 지방선거는 민주주의의 꽃이라고 하지만 공직자들의 줄서기나 편 갈이가 상상을 초월한다. 줄을 잘못서고 처신을 잘못하면 자치단체장 선출이후 찬밥신세 내지는 인사 불이익이 수반되어 고통을 겪는 일이 다반사이다. 그러니 공직자들이 말로만 중립이지 내용을 들여다보면 참으로 가관이 아니다. 그러나 애써 이를 드러내지 않고 있을 뿐이다. 기득권을 갖고 있는 일부 자치단체장들은 행정조직의 프리미엄을 갖거나 비선 단체들을 끌어들여 교묘하게 이용하는 경우가 다반사라는 사실은 이제 웬만한 관계자들은 다 알고 있다. 이런 악순환 속에 누가 선출직 지도자가 되느냐는 결과 여부에 따라 인생길이나 공직의 길이 갈라지는 황당한 상황도 연출된다. 심지어 장애인단체들도 줄을 잘못서면 지원에 불이익을 당하고 외면당하는 현실임을 익히 잘 알고 있다. 이런 선거판과 공직사회의 자화상을 부정하지 못하리라고 본다. 말로만 민주주의의 선거이지만 기실 그 결과를 통한 포용은 찾아보기가 힘들고 보복과 불이익의 공직사회 분위기가 악순환처럼 반복되고 있다. 그래서 기초자치단체장은 정당공천을 배제하자는 대안이 제기되었던 것이다. 물론 지금은 쏙 들어갔지만 말이다. 공천을 둘러싸고도 얼마를 주었느니 하면서 이른바 돈 공천 이야기가 끊이질 않고 실제 일부는 이런 대가성 공천으로 인해 낙마하는 사례도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아무리 감추어도 비밀은 언제가 드러나는 것이다. DJ비자금 제보자가 뒤늦게 밝혀지듯 말이다. 댓글 사건의 실체가 결국은 드러나듯이 그렇다.
선거철이 되면 각 정당들은 최상의 인물을 선정한 듯이 호들갑을 떨지만 나중에 보면 선거법 위반이니 얼마를 받았느니 하면서 함량미달이 속출하고 있다. 불법비리 혐의로 검찰에 오가며 수사에 성실하게 임하겠다는 말들을 무수히 남기며 헷갈리는 화법을 구사하는 국회의원들의 모습을 지겹게 보고 있는 것이 우리 국민들이다. 검찰이 할 일이 없어 아무런 죄도 없는 사람들, 그것도 국회의원이나 고위직의 인물들을 피의자 신분으로 수사를 하겠다며 검찰에 불러들인다고 생각하는가 묻고 싶다. 일일이 관련 사례를 열거하지 않더라고 작금에 우리 대한민국 정치판을 보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국민들도 익히 잘 알고 있다. 그리고 이런 재판의 최종 결과가 너무 ‘세월 따라 노래 따라’이다. 임기가 거의 끝날 무렵에 대법원 판결이 나오니 봐주기 재판인지 아니면 검토를 그렇게 오래 해야 하는 사건인지 도무지 알다가도 모르겠다. 선거사범에 관한한 기간을 정해 마무리하는 대안과 해법이 나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의 몫으로 남는다. 만약에 이것도 전근대적인 관행이라고 한다면 청산해야 할 적폐가 아닐 수 없다. 민주주의가 가야 할 길이 아니다. 공직선거법이든 정치자금법이든 공명정대하게 신속하게 판결을 종결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는 국민을 무시하는 반민주적이며 전근대적인 행위이자 자가당착에 빠지는 행위임을 직시해야 한다.
우리나라 정치와 선거사범에 대한 재판이 묘한 엇박자의 화음을 내면서 갈지자 걸음을 걷고 있다는 비난도 거세다. 100만 원 이상의 벌금 데드라인에 정치생명의 희비가 엇갈리는 정치판의 재판을 볼라치면 때론 현실정치가 역겹기까지 하다. 선거철만 되면 국민행복, 청년실업해소, 복지국가, 서민경제, 민생, 아동 및 노인수당, 장애인 재활, 반값 장학금 등등 무수한 공약들이 어김없이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그러나 이를 제대로 실천하며 국민들의 진정한 행복을 위해 노력한 인물들은 얼마나 될까 자못 궁금하다. 왜냐하면 국민들이 행복을 체감하고 기뻐할 정도로 강퍅한 삶이 나아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국민들이 노력을 하지 않아서도 아니고 도무지 나아지거나 활력을 찾지 못하는 사회적 분위기는 도대체 누구를 탓해야 할지 모를 일이다. 그래서 인터넷 댓글에는 늘 부정과 비판의 글이 난무하며 사회적 물의를 빚는 사람들은 네티즌의 공격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시대가 되었다.
2017년 연말을 맞아도 정치는 여전히 다람쥐 쳇바퀴 돌듯이 좌충우돌하는 장면들만 보이고 있다. 정치적인 신망을 잃어버린 인물들의 퍼레이드를 보는 듯하다. 중량감도 떨어지고 믿음직한 구석이 보이질 않는다. 신선하면서도 새로운 인물의 등장은 보이질 않다. 늘 골난 표정으로 가시물고 말하는 정치인들 뉴스가 넘쳐난다. 검찰을 들락거리는 인물들은 과연 국민행복을 위하여 무엇을 했는지를 묻고 싶다. 무엇 때문에 공인의 길에 들어섰는지도 묻고 싶다. 탐관오리들이 판을 치고 정치판에 정상모리배(政商謀利輩)들이 난무한다면 민주주의는 그 진정한 꽃을 피울 수 없다. 그것은 국민행복이 아니라 국민불행의 단초가 되기 때문이다. 행복을 추구하는 국민들도 이제는 선거철만 되면 정치판에 부화뇌동(附和雷同)하는 의식을 버려야 한다. 그 길이 진정한 헌법적 가치인 국민을 지키는 길이다. 이 연말에 길거리마다 넘쳐나는 자화자찬 현수막들을 보면서 우리 국민들은 무엇을 생각할까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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