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헌태논설고문



부산여중생 폭행 사건의 파장이 일파만파로 커지고 있다. 피투성이가 된 피해학생이 무릎을 꿇고 있는 사진이 이번 사건의 잔인성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국민들은 분노와 함께 허탈감에 빠져있다. 온라인 커뮤니티인 SNS에 가해사실을 자랑하는 돈키호테 같은 황당한 행위까지 서슴지 않았다. 상식수준을 벗어나고 있다. 사이코패스의 전형이다. 어쩌다가 이 지경에 이르렀는지 참으로 안타깝다. 이들은 불과 14살의 중학생들이다. 그것도 여학생들이 상상도 못할 폭력을 행사하며 이를 자랑했다. 폭행사건을 CCTV영상으로 접한 국민들은 그야말로 경악을 금치 못했다. 소셜미디어를 통해서도 급속도로 퍼져나가고 있다. 가해학생은 피해 학생을 골목 안으로 끌고 가 한 시간쯤 집단 폭행하다가 피범벅이 된 학생을 지나가던 행인이 발견해 119에 신고자해 구급차가 나타나자 구경꾼 행세까지 모른 척 했다고 한다. 공장주변의 철골자재, 소주병, 의자 등으로 무차별 폭행을 당한 피해학생의 모습은 처참할 정도였다. 가해학생들이 보인 인면수심의 잔악한 행동에 울분과 분노가 치미는 것을 참지 못하는 사회적 분위기이다. 범행직후 SNS에 무용담을 올리고 경찰서에 자수하는 대담함까지 보여 경악하게 했다. 흉포해져 버린 무서운 아이(enfant terrible)들이다. 프랑스 작가인 장 콕토(Jean Cocteau)의 소설 제목 ‘앙팡테리블’(enfant terrible) 이다.
더욱 가관인 것은 강릉, 서울, 아산, 세종 등 전국 각지에서 비슷한 사건이 잇따르고 있다는데 있다. 부산여중생 폭행사실이 알려지자 강릉에서도 여고생과 여중생 6명이 여중생 1명을 7시간 동안이나 무차별 폭행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져 충격을 더하고 있다. 또 서울 은평구에서는 여중생집단 폭행 사건의 가해자가 자신의 SNS에 자랑처럼 게시물을 올리고 주먹사진과 함께 ‘불주먹’이라는 글도 올렸다. 심지어 폭행 장면을 촬영하여 다른 학생들과 돌려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피해학생은 불안과 우울을 호소하며 자살까지 언급할 정도로 충격에 빠져있다고 한다. 이들은 상습범이었던 것 같다. 피의자 3명은 이미 다른 폭행사건에 연루되어 보호관찰 상태였다고 한다. 잔악하고 흉포해지는 청소년 범죄를 다루기 위해 현행 소년법을 폐지해야 한다는 청원도 시작되고 있다. 청소년이란 이름아래 저질러지는 성인 못지않은 흉악한 범죄를 단죄하자는 것이다. 소년법은 10세미만은 아무책임을 묻지 않고 보호처분을 하고 14세부터 19세 미만까지는 형사 처벌이 되긴 하지만 감형되고 최장 20년까지만 받게 되자 일부 국회의원은 사형까지 처할 수 있도록 법안을 발의한다고 나서기도 했다. 어떤 식으로든 후속조치가 뒤따르지 않을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이 같은 잔인한 폭력성은 과연 어디서부터 출발하고 있는지를 우리 사회는 반성해야 한다. 부모의 그릇된 보호주의에서부터 학교에서의 방관, 사회적 무관심, 그리고 폭력성이 난무하는 게임물 등이 이들의 인성을 인면수심으로 탈바꿈 시킨 것은 아닌지 살펴보아야 한다. 어린 시절부터 타인을 괴롭히는 것이 만성화된 청소년들이 10대에 들어서 그야말로 흉포한 무서운 아이들 ‘앙팡테리블’이 되어 버린 것이다. 여기에다 영웅심을 조장하는 각종 폭력성 게임들이 온오프라인에서 넘쳐나면서 청소년들의 행동에 악성종양이 되고 있다. 부산여중생 폭력사건이 드러나자마자 전국적으로 유사한 폭행사례가 봇물 터지듯이 알려지고 있다. 이것은 이런 사건들이 전국에서 무수히 발생하고 있으나 그동안 ‘쉬쉬쉬’ 하면서 덮어버렸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학교나 피해학부모들조차 이를 감추고 있는 것이다. 사회문제와 보복이 두려운 것이다. 이는 생각보다 더 심각한 양태로 전국에서 빚어지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심히 우려되는 대목이다. 자살을 생각하는 학생까지 나오니 피해학생이나 부모들이 받은 정신적인 충격과 불안이 얼마나 큰지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이대로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음을 보여준다.
사실 이러한 문제는 비단 어제 오늘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동안 사건을 숨기며 임시방편으로 순간만을 모면하며 대충 넘겨버린 책임도 있다. 만약 이번 사건이 돈키호테 같이 무용담을 SNS에 알리는 대담성과 가해학생들의 후안무치한 행동이 없었다면 세상에 드러나지 않고 또 감춰졌을 수도 있다. 왜냐하면 강릉의 사건도 이 사건 때문에 뒤늦게 알려졌기 때문이다. 심지어 학생이 교실에서 빗자루로 교사를 때리고 학부모가 교감을 흉기로 위협하는 충격적인 교육현장의 소식도 전해지고 있다. 최근 5년간 교권침해사례만도 무려 2만4천 건에 달하고 있다. 작금에 전국의 일선학교 현장에서 가장 힘들고 무섭고 엉망인 현장이 ‘바로 중학교 현장이다’라고 고백하는 일선 교사의 하소연이 결코 허언이 아니다. 말을 듣지도 않고 통제도 되지 않으며 무슨 일이 발생하면 학부모들이 등장해 난리를 피운다는 것이다. 그래서 일선 교사들도 아이들이 무엇을 하던 간섭을 하지 않고 방임하게 된다는 것이다. 교직생활에 가장 힘든 곳이 바로 중학교라는 사실 앞에서 오늘 10대들의 일탈이 어느 정도일지를 가늠하기가 어렵지 않다는 것을 다시금 확인하게 된다. 교권까지 무너져 내린 오늘날의 모습 앞에서 참으로 씁쓸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이번 사건이 던져주는 충격파는 엄청나다. 어떤 식으로든지 이런 악랄하고 잔인한 10대 청소년 범죄에 대한 단호한 후속조치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들 청소년들의 그릇된 정신상태를 뜯어고치기에는 생각보다 간단치 않고 너무나 무모하고 대담하다는데 그 심각성이 있다. 이런 무서운 아이들이 전국의 중·고등학교에서 잔인한 폭행을 상습적으로 일삼고 있다면 피해학생들은 정상적인 학교생활이 거의 불가능하다고 보아야 한다. 나아가 정신적 외상(트라우마)으로 평생을 고통에 시달릴 수 있다. 학교에 가기가 불안하고 두려워 공부조차 제대로 할 수 없을 것은 명약관화하다. 우리는 지난번 살충제계란 파동 때에 전국 양계농장을 대상으로 이른바 전수조사를 실시하여 살충제계란을 속아내고 이를 폐기처분하였다. 마찬가지로 살충제계란보다 더한 악랄한 폭행사건의 주동자들은 찾아내어 두 번 다시 이런 악행이 이뤄지지 않도록 단죄를 해야 한다. 차제에 전국 중·고등학교를 대상으로 한 ‘학교폭력 전수조사’를 실시해보는 것도 비록 늦었지만 절실하다고 본다. 이런 유사한 폭행으로부터 고통받는 학생들을 보호하고 건전한 성장을 도와야 할 책임이 국가나 사회가 갖고 있기 때문이다. 차제에 일선교육청을 중심으로 전국의 각급 학교에 대한 폭력실태 점검에 나서야 한다. 경찰과 검찰, 유관부서들과 합동으로 악랄하고 독버섯이 된 흉포화한 학생범죄를 가려내야 한다. 이를 미루면 부산과 강릉 서울 등지에서 자행되어 온 이런 폭력의 악순환은 거듭될 수밖에 없다. 당장 전수조사를 벌여야 한다. 폭력으로부터 고통받는 학생들을 구제해야한다.
우리는 이번 폭행사건을 통해 이들의 도덕불감증과 그 잔인성이 사이코패스이상의 상상을 초월하고 있다는 사실에 경악하고 있다. 그것도 14살밖에 되지 않은 여학생들이 말이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고 했다. 이들의 불량한 행위가 성장한 이후에도 습성이 지속되어 배가된다고 하면 생각만 해도 참으로 끔찍한 일이다. 엄청난 사회적 희생도 뒤따를 수도 있다. 사후약방문이 되어서는 안 된다. 사회적 격리가 필요할 경우 이들에 대한 적절한 조치가 수반되어야 한다. 감춰진 일이지만 야밤에 대로변에서 청소년들로부터 집단 구타를 당한 파출소 경찰관도 있다. 성인들도 이른바 청소년들을 잘못 건드리면 크게 당한다는 사실을 웬만한 사람이면 잘 알고 있고 간섭하지 않으려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사회의 기본을 무너뜨리는 상상을 초월하는 청소년 범죄의 심각성은 이제 방치할 수준을 넘어섰다. 우리 사회가 정치, 경제, 안보, 인구문제 등으로 초점을 모으고 있을 때 다른 한편에서는 이처럼 무서운 독버섯이 자라고 있었다. 흉포해지는 아니 이미 흉포한 무서운 아이(enfant terrible)들로 인한 직·간접적인 고통의 벽이 너무 크다. 국민적 해법이 절실한 시점에 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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