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의 공공기관 인사역량으로는 블라인드 채용이 어렵고 오히려 청탁과 같은 부정에 노출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정부가 정책적으로 시행하는 블라인드 채용이지만 국책연구기관에서조차 부작용에 대한 우려를 감추지 않고 있는 것이다.

한국조세재정연구원의 박한준 연구위원은 ‘공공기관 채용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소고’를 통해 순환보직과 연공서열식 인력운영을 해온 현재의 공공기관 인사역량으로는 블라인드 채용을 성공시키기 어려우며 오히려 필기시험 성적에 과다하게 의존할개연성이 높다고 진단했다.

그는 또 ”블라인드 채용은 개별 고용주체인 공공기관의 사회형평에 대한 자율적인 진정성이 확보돼야 한다“며 ”방침을 지키지 않는 기관에 페널티를 부과하는 방식은 정부 주도의 통제 중심적 접근방식의 한계를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블라인드 채용을 무차별적으로 밀어붙이기 보다는 공기관의 자율성을 어느 정도 보장해야 한다는 의미다.

정부는 블라인드 채용이 차별과 기득권을 없애고 ‘정의로운 사회’로 나아가는 계기가 되리라고 주장한다. 우리 사회가 능력과 상관없이 출발선이 어디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는 불평등 구조인 것도 사실이다. 그런 점에서 블라인드 채용은 의미 있는 시작이다. 하지만 문제는 부작용이다. 이미 많은 우려가 제기되어 왔다. 그간 채용기준으로 삼았던 출신학교ㆍ학점 등을 배제하는 대신 실력만으로 뽑을 ‘새로운 평가 잣대’에 대한 연구나 검토가 전혀 없었다는 것이다. 경험 역량이 부족하다는 얘기다. 그래서 자칫 외모와 첫인상이 최고의 능력이 되는 ‘운에 의한’ 채용으로 전락하거나 서류전형 대신 필기시험이 사실상 ‘1차 관문’으로 자리잡을 것이라는 예측도 나온다.

하지만 이같은 우려에 대한 정부의 대응은 부족하기 그지없다. 행정안전부는 지난 7월 블라인드 채용 가인드라인(지침)을 배포했지만 시행시기와 편견 개입 항목 배제 등 원칙과 기준만 제시했을 뿐 방법에 대한 것은 없다. 이달에도 전국 공기관 인사담당자를 대상으로 교육을 실시했지만 지방공기업 도입 과정에서 제기된 질의·응답 사례 소개를 통해 이해도를 높이는 수준에 그쳤다.

놀런 부시널이란 탁월한 채용 안목을 지닌 인물이 없었다면 스티브잡스의 첫 직장은 달라졌을지 모른다. 아예 취업이 불가능했을 수도 있다. 블라인드 채용이 스티브잡스를 골라낸 것이 아니다.

공기관의 채용역량 강화가 먼저다. 그건 최소한의 자율성 부여로 시작된다. 당위성이 충분해도 준비가 부족하면 쉬어가야 한다. 부작용과 역효과는 최소화해야하기 때문이다.

저작권자 © 대전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