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429조원짜리 새해 예산안을 짰다. 올해보다 7% 이상 많다. 그 중에서도 일자리를 포함한 복지예산이 13% 가까이 늘었다. 전체 예산에서 복지가 차지하는 비중이 처음으로 34%를 넘어선다. 반면 사회간접자본(SOC) 예산은 20%나 팍 깎였다. 복지를 중시하는 문재인정부의 정책기조가 뚜렷하다. 예산에서도 '토목'을 중시한 보수정부 10년의 색채가 싹 사라졌다.

전체적으로 방향은 옳다. 한국은 양극화가 가장 심한 나라에 속한다. 소득계층 간 갈등은 우리 사회를 갈기갈기 찢는다. 어떤 이슈든 죽기 살기로 상대방을 할퀴고 찌른다. 그 밑바닥에는 양극화가 똬리를 틀고 있다. 이 갈등을 줄이려면 사회안전망을 넓히는 게 필수다. 사회안전망이란 곧 복지다. 아동수당을 주고, 최저임금을 높이고, 청년 일자리를 창출하고, 기초연금을 더 줘야 한다. 이게 다 돈이다. 문재인정부는 이런 데 쓰는 돈을 아까워하지 않는다.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경제 패러다임 변화를 위해 (돈을) 쓸 곳에는 써야 한다"고 말했다. 이는 J노믹스의 밑바탕을 이루는 소득주도 성장과도 일맥상통한다.

문제는 재정이 화수분이 아니라는 점이다. 재정을 흔히 깡총한 이불에 비유한다. 어깨를 덮으면 발이 시리고, 발을 덮으면 어깨가 시리다. 새해 예산안을 보자. SOC 예산은 복지 확충의 희생양이 됐다. 이불을 복지에 덮었더니 SOC가 시린 꼴이다. 이게 어떤 부작용을 낳을까.

당장 성장률이 걱정이다. 정부 전망대로 올해 3% 성장률을 이룰 수 있을지 불투명하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지난달 '건설투자 의존형 경제구조의 문제점'이란 보고서를 냈다. 여길 보면 건설투자가 성장률에 기여한 비율이 5분기 내리 50%를 넘었다. 이는 SOC 예산이 줄면 성장률에 타격이 불가피하다는 얘기다. 연구원은 건설투자가 평년 수준으로 돌아오면 성장률이 연 0.5%포인트 떨어질 걸로 추산했다.

이미 조짐이 심상찮다. 북핵 리스크 속에 8월 소비심리는 한풀 꺾였다. 특히 부동산 쪽이 심각하다. 정부가 고강도 8.2 대책을 내놓은 뒤 시장이 꽁꽁 얼어붙었다. 한국은행이 29일 발표한 부동산.임대업 업황 기업경기실사지수(BSI)는 74로 전달보다 4포인트 하락했다. 작년 5월 이후 1년3개월 만에 최저치다. 문재인정부는 성장률 수치에 집착하지 않겠다고 말한다. 그러나 성장률이 떨어지면 가장 먼저 타격을 입는 계층은 바로 서민들이다. 복지를 늘리는 것도 좋지만 무엇보다 경기가 살아야 서민 입가에 미소가 돈다.

SOC 예산 축소는 일자리에도 나쁜 영향을 미친다. 건설 현장은 투입한 돈만큼 일자리가 나오는 곳이다. 단기 일자리 창출엔 건설만 한 곳이 없다. 물론 정부도 일자리에 큰돈을 쓰고 있다. 새해 일자리 예산도 12% 넘게 늘렸다. 하지만 효과는 의문이다. 일자리 관련 예산을 매년 수십조원 쏟아부었지만, 특히 청년실업은 나아질 기미가 없다.

중구난방 일자리 예산 집행도 고쳐지지 않았다. 현재 일자리 사업은 25개 부처가 185개 사업을 펼친다. 중앙부처만 그렇다. 지자체 일자리 사업을 모두 합치면 4100개가 넘는다. 이달초 일자리위원회는 일자리 사업을 효율적으로 정리하겠다고 했지만 어떻게 했다는 소식은 들리지 않는다.

새해 예산안은 방향은 맞지만 지나치게 한쪽으로 쏠린 느낌을 준다. 성장률이 절대선은 아니지만 그 중요성을 가볍게 봐선 안 된다. SOC 예산 감축은 '일자리 정부'라는 국정 방향에 역행할 수도 있다. 국회 심의 과정에서 손질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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