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정보원이 이명박 정부 때 전담 기구를 만들어 대통령 선거 등에 광범위하게 개입했음이 사실로 드러났다. 지난 3일 국정원 적폐청산 태스크포스(TF)에 따르면 국정원은 원세훈 전 원장이 재임 중이던 2009년 5월부터 2012년 12월까지 민간인 ‘사이버 외곽팀’을 동원해 각종 여론조작을 저질렀던 것으로 밝혀졌다. 안보 수호의 최일선에 있는 국가조직이 특정 정권을 위해 이 같은 어처구니 없는 행동을 했다는 것에 대해 참담한 심정을 감추기가 어렵다.

적폐청산 TF가 내놓은 자료를 보면 기가 막힌다. 국정원은 보수·친여 성향의 예비역 군인, 회사원, 주부, 학생, 자영업자 등으로 구성된 이른바 ‘댓글부대’를 통해 네이버와 다음 등 국내 4대 포털 사이트에 정치 및 대선 관련 글을 올렸다. 내용은 정부 정책을 교묘하게 옹호하는 한편 반정부 여론에 대해서는 ‘종북세력이 국정을 방해하기 위한 책동’이란 굴레를 씌우는 쪽에 맞춰졌다. 2012년 4월 이후 30개 팀, 3500명까지 확대된 사이버 외곽팀에 들어간 예산만 해도 한 해에 수십억 원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정원은 또 지난 2013년 검찰의 국정원 댓글사건 수사가 시작되자 원 전 원장의 ‘전 부서장 회의 시 지시강조 말씀 녹취록’ 가운데 36곳을 삭제한 뒤 검찰에 제출한 것으로 밝혀졌다. 국정원이 조직적으로 댓글 사건의 진실을 은폐하려 했다는 명확한 증거가 아닐 수 없다. 삭제된 자료는 보수단체 결성·지원·관리, 정부 비판 언론보도 통제, 자유무역협정(FTA) 관련 언론홍보,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압박 등으로 확인됐다.

민간인 댓글부대를 이용한 국정원의 파렴치한 여론 조작은 전례 없는 국기문란 행위임이 분명하다. 있어서는 안되는 국가기관의 정치개입이다. 당연히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일벌백계가 이뤄져야 한다. 따라서 검찰은 적폐청산 TF의 고발 또는 수사의뢰 요청과 관계없이 즉각 조사에 들어가는 것이 옳다. 또 필요하다면 국정원과 이전 정권과의 관련 여부까지 수사를 확대해 위법사안이 적발되면 책임을 물어야 한다. 국정원의 비호 아래 수년에 걸쳐 대규모로 진행된 여론조작이 원세훈이라는 개인의 맹목적 충성심에서 비롯됐다고 믿는 국민은 거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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