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헌태 논설고문

정신질환자의 인권을 강화하는 정신건강복지법이 시행 한 달을 넘겼다. 우여곡절 끝에 지난 5월 30일 전격적으로 시행된 이 법은 심사관련 인력부족 등을 이유로 이른바 추가진단 전문의 예외규정 시행방안까지 만들어 한시적으로 운영되는 기형형태를 띠고 있다. 그만큼 촉박한 일정에 쫒기면서 시행되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진단 전문의 부족도 현실이 되고 있다. 국립병원 전문의 한사람이 하루 30∽50명 꼴, 많게는 180명 정도를 보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한마디로 졸속진단의 우려가 제기된다. 일선 정신의료기관들도 입·퇴원과 관련 철저하게 법을 준수하지 않을 경우 자칫 벌금형을 선고받은 의정부사태가 재발하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다. 복지부가 중점을 두고 있는 '국가 입·퇴원 관리시스템'을 통하여 진단요청도 제때 이뤄지지 않고 있어 다소 혼선도 빚고 있다.
일선 현장에서 우려의 목소리도 잇따르고 있다. 국립병원 진단으로부터 알코올 환자 전원을 내보내라는 통보를 받고 황당하다는 민원이 발생한 지방의 의료기관도 있다. 절차상의 문제를 엿볼 수 있다. 국립병원 측의 고압적인 자세가 도마 위에 오른 사례이다. 지금 복지부는 「정신건강증진 및 정신질환자 복지서비스 지원에 따른 법률」 시행 한 달 간 현장에서의 문제점 등을 파악하고 있다. 전국적으로 갖가지 민원들도 제기되고 있다. 복지부도 법 시행에 따른 문제점이나 현장상황이 걱정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신중모드를 보이고 있다. 한마디로 비상상황으로 주시하며 대처하고 있는 모양새이다. 강제입원으로부터의 인권보호, 탈원화를 통한 사회복귀 등 장밋빛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 왜 우려하고 걱정이 큰 지 알 수가 없다. 참으로 이율배반의 모순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우려되는 이유는 분명하다. 치료를 다 받지 못한 채 사회로 대거 쏟아져 나와 무슨 부작용과 사회적 파장이 발생할지 모른다는 이른바 화약고 같은 잠재상황 때문이다. 법무부 법무연수원이 발표한 ‘2016년 범죄백서’가 이런 우려를 뒷받침한다. 정신질환자에 의한 범죄 통계이다. 이 백서에 따르면 2014년 6천301명이던 정신질환 범죄자가 2015년에는 7천16명으로 전년 대비 11.3%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연도별로 보면 2011년 5천357명, 2012년 5천378명, 2013년 5천937명이다가 2014년 큰 폭으로 증가했다. 특히 정신질환자 범죄 중 절도, 폭행, 상해 등의 비중이 높은 것은 분석됐다. 기존 상황에서 이런 데이터가 나왔는데 새 법 시행으로 앞으로 정신질환자들이 대거 사회로 쏟아져 나올 경우 문제는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는데 그 심각성이 도사리고 있다. 강제입원이 줄고 탈원화가 늘어나는 것이 바로 이들의 인권을 확실하게 보장하느냐는 순기능 장치로 성과를 올릴 수 있느냐는 것이다. 이와는 상반되게 문제발생에 대비해 행정입원, 사법입원 제도가 맞물려 돌아가고 있는 것이다. 이른바 강제입원의 역기능 장치이다. 하지만 미국의 사례처럼 탈원화로 쏟아져 나온 정신질환자들이 행여 다시 감옥에 들어가 있다면 이는 강제입원 불용, 탈원화를 통하여 인권이 보호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불행과 고통이 될 수 있다. 물론 앞으로 이런 문제점은 장단기적으로 살펴보아야 할 사안임에 틀림이 없다. 다시 말해 긴장의 연속선상에 놓여 있는 것이다. 무조건 퇴원시켜 놓고 보자는 식은 안 된다. 그러나 앞으로 지역에 따라 입원환자의 10∽30%가 퇴원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문제는 사회적 인프라 구축이다. 개정된 법이 잘 시행되려면 정신질환자들을 제대로 관리해야 할 인프라가 구축되어야 하는데 병실에서 나와 갈 곳이 없다는데 문제가 많다. 전국에 정신재활시설은 서울 57, 경기 31, 충남 22, 대전 21, 경북 8, 기타 33개 등 모두 301개소에 불과하고 수도권에 편중되어 있다. 지난 5월 발표한 경기연구원의 '정신보건법 개정으로 인한 정신질환자 탈원화, 지역사회 유입에 대한 대책보고서'에 따르면 전국 중증정신질환자수는 51만5,293명인데 반해 국내 사회복귀시설의 수용정원은 7천여 명으로 1.4%에 불과해 사회복귀시설이 매우 부족하다고 분석했다. 특히, 재활서비스가 필요한 중증정신질환자 약 43만여 명 중 실제 지역사회 정신보건기관에 등록⋅관리되는 수는 7만 9천여 명으로 18.4%에 불과해 수많은 정신질환자들이 지역사회에서 아무런 보호 없이 방치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지자체는 벌써 비상이다. 의료계 및 학계 전문가들은 개정법의 내용이 현실적으로 실행이 불가능하다며, 사회적인 준비가 갖추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개정법의 시행으로 인해 대규모로 정신질환자들이 지역사회로 유입될 경우 사회적 혼란이 야기될 것이라고 매우 우려하고 있다. 이런 지적과 우려는 사안의 심각성을 대변하고 있다. 한마디로 유비무환의 자세가 결여되어 있는 것이다.
중앙정신보건사업지원단이 내놓은 '정신질환자 서비스 구축 전략 보고서'에 따르면 개정 정신건강복지법에 따라 퇴원하는 중증 정신 질환자(조현병·조울증·우울증)를 돌보려면 주거 치료 서비스 시설을 지금의 3배 이상 늘려야 하는 것으로 지적하고 있다. 보고서는 올 2~3월 전국 정신병원 7곳과 기초정신건강증진센터 5곳 실태 조사를 통해 '비(非)사회적 입원' 환자가 25.9%에 달할 것으로 추정했다. 보건복지부는 이들을 위한 사회 복귀와 치료 시스템 연계를 준비하고 있다고 밝히고는 있지만 이미 시작된 퇴원대란에 대비하는 행정은 늑장행정이 불가피해지고 있다.
그러나 앞으로가 더 큰 문제이다. 복지부의 2016년 정신질환실태 역학조사의 주요내용을 보면 주요 17개 정신질환에 대해 조사된 정신질환 평생유병률은 25.4%(男 28.8%, 女 21.9%)으로, 성인 4명 중 1명이 평생 한번 이상 정신건강문제를 경험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지난 일 년 간 정신건강 유병률은 11.9%로 정신건강 문제를 경험한 사람이 무려 470만 명으로 추산되고 있다. 국민정신건강이 심각성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정신질환자 탈원화시대를 맞아 이에 적극적으로 대비하고자 하는 더욱 체계적이며 합리적인 접근법이 요구되고 있다. 인권보호와 복지를 내세운 새 법이 시행됐지만 차별 받지 않는 평등한 의료서비스 (건강보험과의 차별)가 보장되고, 인권보호라는 미명 하에 사회에 방치되는 정신장애인이 없어야 하며, 그리고 당사자와 가족에 대한 현실적인 대안 (정신장애인 자립 생활 지원센터, 직업재활시설)이 마련되어야 한다는 가족들의 목소리가 더욱 절실하게 다가서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나아가 치매를 넘어 정신질환도 국가책임제가 도입되어야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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