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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복  |  conq-le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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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7.01  16:2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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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뭄에다 때 이른 무더위로 농작물은 물론이고, 온 세상이 지쳐 있습니다. 소나기가 몇 차례 다녀갔지만 갈증은 여전합니다. 태양은 무신경한 듯 뜨겁게 타오릅니다. 연 초부터 달려 온 몸과 마음이 지쳐 있습니다. 그럼에도 일은 끊임없이 밀려듭니다. 눈앞엔 책임이란 놈이 큰 바위 덩이로 버티고 서 있으니 난감합니다.

반년을 쉼 없이 달려왔건만, 결과는 어쩌면 이리 보잘 것 없는지요. 두려움은 마음을 오그라뜨리고 선택과 집중 앞에서 서성거릴 때마다 얼굴은 점점 붉게 부풀어 오릅니다. 요즈음은 저 지대의 맨홀이라도 된 듯, 온갖 나쁜 상황들이 빗물처럼 몰려드는 그런 기분입니다.

새벽부터 서둘러 걷고 뛰어야 열심히 사는 거라 믿었습니다. 그런데, 거리의 철학자 에릭 호퍼는 말합니다. “서두른다는 느낌은 보통 인생을 충실하게 산다는 증거도 아니고, 시간이 없어서 생기는 결과도 아니다. 그 반대로 자기 인생을 허비하고 있다는 막연한 두려움에서 생겨난다. 자기가 해야 하는 일을 하지 않을 때, 다른 일을 할 시간은 전혀 없다. 그러니 우리는 세상에서 가장 바쁜 사람이다.”라고요. 지나온 삶들이 모두 허무해집니다.

누구나 인생의 허무를 느낄 때가 있듯이 이유 없이 슬프고, 까닭 없이 모든 것을 벗어버리고 싶은 날이 있습니다. 마음이 베인 날은 누구도 믿을 수 없고, 어디도 의지할 데가 없어집니다. 단단하던 마음은 비누방울보다 가볍게 부유(浮流)합니다. 무심히 부는 바람까지도 씁쓸합니다.

문득 정해진 스케줄, 끊임없이 반복되는 일상을 벗어 버리고 싶습니다. 누군가 나를 낯설고 달콤한 장소에 데려다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모든 일과 관계로부터 벗어나서 멋대로 울거나 쓸쓸해하거나 그 무엇이라도 취할 그런 장소로. 세상 속에서 허겁지겁 헛배만 불렀던 삶을 따뜻하게 어루만져 줄 그런 곳으로 말이죠.

토끼풀꽃, 애기똥풀꽃이 지나가더니 어느새 엉겅퀴꽃, 망초꽃도 끝물입니다. 달빛 아래의 삶이 아무리 노곤해도 구름처럼 지나가겠지요. 문득 어제도 가고, 오늘도 갈 나의 길을 망연히 바라봅니다. 사람에게보다는 하늘에 떳떳하게 살고 싶다는 마음이 구겨진 종이처럼 점점 더 비좁아집니다. 한 때, 손이 닿던 기억들은 별자리 속에 나뭇결만 남은 것처럼 높이, 어두운 채로 반질거립니다.

변함없이 하늘도 산도 나무도 자기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자기 자리를 지키는 모습은 아름답습니다. 어둠이 두런두런 밀려옵니다. 오늘하루도 내 마음 어디쯤에 불이 나고, 구멍이 뚫렸는지 모른 채 흘렀습니다. 타 버려 재로 남겨지고, 구멍이 뚫린 마음을 찬찬히 살펴서 토닥임으로 제 자리를 반듯하게 지켜 나가야겠습니다. 믿음은 힘을 주고, 힘은 다시 믿음을 가져다 줄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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