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연 한국워킹맘연구소 소장

“아이를 봐주던 친정 엄마가 아프셔서 더 이상 아이를 맡길 수 상황이 안돼요. 일을 그만두고 제가 아이를 돌보는 게 맞겠죠?”

아쉬움과 불안감이 잔뜩 배어있는 목소리로 워킹맘들은 하루에도 수십 번 상담 전화를 해온다.

현실을 너무도 잘 알기에 당장 그만두고 남편이 벌어다 준 월급으로 아껴서 살아보라고 말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힘든 시기는 곧 지나가니 직장에서 무조건 버텨보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데 우리나라는 두 여자의 희생인 ‘엄마’ 와 ‘친정 엄마’(시어머니)의 희생이 없으면 도저히 일하면서 아이를 키울 수가 없으니 잘못 돼도 한참 잘못됐다.

문제는 아무리 능력 있는 여성이라고 할지라도 한 번 집에 들어가면 다시 사회에 발을 내딛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현실이 이렇다보니 어느새 경력단절여성은 200만명이 넘어섰고, 어찌어찌 재취업에 성공했다고 하더라도 저임금과 고용불안에 시달리는 비정규직에 내몰리고 있다.

올해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은 53%로 사상 최고라고 한다. 하지만 일·가정 양립 지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0개 회원국 중 최하위인 28위다. 일·가정 양립 지수가 오르지 않는한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은 더 이상 오르지 않을 것이다.

일자리 문제를 최우선 과제로 삼겠다는 새 정부의 특단의 조치가 필요한 이유다.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과 일·가정 양립 지수를 높이기 위해서는 말뿐인 일·가정 양립 지원이 아니라 ‘육아’에 대한 국가의 역할을 확대하고, 적극적으로 나서서 양질의 보육인프라를 구축해야 한다.

현재 우리나라의 국공립 보육의 비율은 전체 어린이집의 7%로, 50% 이상의 국공립 어린이집 비율을 자랑하는 선진국과 큰 차이를 보인다. 10가구 중 6가구가 맞벌이 가구인 이 시대에 국공립 어린이집에 들어가기가 로또 당첨보다 어렵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

믿고 맡길 수 있는 국공립어린이집만 늘어도 능력 있는 여성들이 집으로 들어가는 비율은 훨씬 줄어들 것이다. 다행히 문재인 대통령은 임기 내에 국공립어린이집·국공립유치원·공공형유치원에 아이들의 40%가 다니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이 약속이 꼭 지켜질 수 있도록 전국의 지자체에서도 힘을 보태줬으면 한다.

더불어 일과 가정을 양립하는데 있어서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기업의 조직 문화가 변화될 수 있도록 정부에서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몇년 전, 여성가족부에서 전국 5인 이상 사업체 1000개소를 대상으로 ‘일·가정 양립에 대한 기업의 인식’을 조사한 결과를 보면 90% 이상은 일·가정 양립 제도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만 기업 내에서 적극 실시하겠다는 의견은 30% 내외에 불과했다. ‘인력공백’과 ‘급여지급·대체인력 채용 등에 따른 비용 증가’ 등의 이유에서다.

이제라도 기업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지원책을 마련해줘야 한다. 그래야 일·가정 양립에 필수적인 ‘육아휴직 제도’, ‘유연근무제’ 등의 시행도 가능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아빠들의 육아 참여를 위한 ‘아빠의 달’ 시행도 좋지만 그 보다 먼저 ‘아빠들을 위한 교육’이 선행되어야 한다. 방법을 몰라 참여하지 못하는 아빠들에게 의무만 강요하기보다는 차근차근 방법을 알려줘 스스로 참여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직장 내 성희롱 예방 교육처럼 직장 내 ‘아버지 교육’도 의무화 시켰으면 한다.

새 정부는 해야 할 일이 많겠지만 ‘저출산 고령화’를 해결하는 가장 좋은 해결책이 ‘여성인재활용’이라는 것을 염두해 두고 이를 위한 해결 방안들을 우선적으로 모색해주길 바란다. 일하면서도 아이를 잘 키울 수 있는 세상은 ‘나라다운 나라’라면 반드시 가능한 일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전국의 많은 맞벌이 가정에서 ‘살맛나는 세상’이라 외치는 그 날이 올 수 있도록 신뢰 가득한 행보를 보여주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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